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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특집1 셀럽작가 전성시대/윤석정/하상욱 시인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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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65회 작성일 18-12-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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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셀럽작가 전성시대


윤석정



하상욱 시인 아시죠?
― 독자와 SNS로 소통하는 시인들


2014년 1월 16일 방영된 SBS <컬처클럽>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컬처클럽>은 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여러 방식들을 다뤘다. 나는 시가 음악이 되고 움직임이 되는 공연을 소개했다. 2007년 결성해 지금껏 내 곁에 있는 ‘트루베르’도 함께했다. 그런데 <컬처클럽> 방송 내용보다 담당 작가의 섭외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하상욱 시인 아시죠?
나는 누군지 몰랐다. 잠시 머뭇거렸다. 불쑥 아직 등단 못한 대학동아리의 하상욱 선배가 떠올랐다. 그가 언제 등단했을까, 어리둥절했다. 담당 작가는 내가 당연히 알 것이라 물었지만 대답이 없자 ‘SNS 스타 시인’이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함이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를 쓴다고 시인을 붙인 것이 생경했고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활동하는 시인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해 가을, 몇몇 시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하상욱’을 두고 갑론을박을 했다. 우리는 결론 없는 논쟁을 시작했고 각자의 입장을 피력했다. 끝내 긍정적인 입장과 부정적인 입장으로 나뉘었다. 대중이 시를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입장이었고 시 본연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원론적으로 시는 무엇이고 숭고한 시의 정신, 치열한 등단 제도 등이 어떻다고 운운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수의 대중이 선호하고 선택 받는 SNS 시인이 언어유희나 말장난 같아 가볍게 느껴진다 해도 시의 형식을 빌려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봤다.
트위터는 글자 수 140자로 제한돼 시처럼 응축된 짧은 글을 자주 게시하기에 용이하다. 그래서 트위터를 이용하는 시인도 적잖다.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글보다 이미지로 일상을 공유하는 젊은 세대가 선호한다. 페이스북은 글자 수 제한 없이 긴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공개범위 설정에 따라 ‘좋아요’와 ‘공유하기’ 기능으로 수많은 친구User들에게 게시물을 노출시킬 수 있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이 선호하며 사용자층이 폭넓다. 이들 SNS 플랫폼들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파급력이 더 커졌다. 우리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소셜 친구를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고 그 친구의 친구와도 친구를 맺을 수 있다. 모두가 연결된 초연결 사회가 구축된 것이다.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언제 어디서나 SNS로 친구와 소통하고 개개인이 일상생활과 생각을 공유하니 시인들도 SNS 세상에 합류했고 독자와 한층 가까워졌다.

셀럽과 시인
소셜 미디어가 발전하고 활성화되면서 ‘셀럽 작가 전성시대’가 왔음을 체감한다. 하지만 유명인을 뜻하는 셀럽Celebrity과 작가(시인)는 거리가 있다. 셀럽은 연예인처럼 인지도를 얻은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SNS 스타 시인은 셀럽에 가깝지만 전문적으로 시를 쓰는 유명 시인을 셀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몇몇 시인들이 SNS로 대중에게 인지도가 생겼지만 기본적으로 시 작품과 애독자들을 전제로 한다. 단순히 SNS 활동만으로 시인들은 대중에게 인지도를 얻었다기보다 독자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은 ‘자신의 독자를 스스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등단하자마자 독자를 확보하고 시집을 출간하면 출판사에만 홍보를 맡겨두지 않고 시인이 적극 시집을 홍보한다. 그들은 소셜 미디어로 독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팬덤을 형성했고 오프라인 행사를 열기도 한다.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형식으로 강연회, 낭독회, 바자회, 전시회 등을 기획하고 실내외 소규모 공연장뿐만 아니라 카페나 독립서점 등에서 독자들을 만난다.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고 대중 매체에 노출되어 유명해진 젊은 시인들이 있다. 황인찬, 박준 시인이 대표적이다. 황인찬 시인은 2013년 트위터에 ‘엑소’ 팬 인증한 것이 화제가 될 정도이고 YTN은 ‘100년 뒤에 사라질 단어’로 황인찬 시인이 추측한 ‘오빠’를 소개했다. 그는 MBC <문화사색> ‘책 읽는 풍경’에 출연했다. 박준 시인은 O tvN <비밀독서단>에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소개되면서 시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그의 인지도는 최근에 펴낸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으로 이어졌다. 지난 9월 9일 나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여러 독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때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들고 있던 한 독자에게 구매 동기를 물었다. 그 독자는 “박준 시인이 산문을 어떻게 썼는지 SNS에서 우연히 접했고 그 배경과 과정을 알고 나니 산문집 내용이 궁금해져서 구입했다”고 말했다.
중견 시인들의 SNS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2012년 트위터를 시작한 안도현 시인은 2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안도현 시인은 트위터에 게시한 글을 모아 지난 2015년 『안도현의 잡문』을 펴냈다. 또한 그의 인지도만큼 전국 각지에서 초청 강의를 마련하여 독자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다. 김주대 시인은 페이스북 스타이다. 1만 명의 친구를 보유했고 페이스북 특성상 그의 게시물을 감상할 수 있는 친구들이 수십만 명일 수 있다. 그는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문인화를 페이스북에 공유했고 풍자와 위트 있는 글을 게시해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는 2015년 문인화 시화집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냈고 독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문인화전을 열기도 했다.

소비되는 시, 그럼에도 시인은
독자들은 실시간으로 시인들이 소셜 미디어에 게시한 글을 읽으면서 자신과 비슷한 일상을 사는 시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하트’, ‘리트윗’, ‘좋아요’, ‘공유하기’ 등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쇼설 미디어는 시집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쇼설 미디어로 친구들에게 시집을 직접 판매하는 시인이 있었고 출판사에서 시집을 몇 쇄 찍는다고 밝히는 시인이 있었다. 시인의 왕성한 소셜 미디어 활동만큼 시집 판매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트위터에는 시인 봇이 있다. 좋은 시 한 구절을 발췌하여 자동을 시를 게시한다. 시를 접하지 못한 대다수의 대중에게 시구가 전달될 수 있지만 한 편의 시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닮은 듯하다. 나는 일회성 온라인 장식품처럼 시가 소비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시가 대중과의 접점을 찾았다는 생각도 든다. 시가 소비되어야 대중이 시를 읽을 수 있고 시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 시만 그런 게 아니라 시인도 소셜 미디어로 소비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문학을 바탕으로 무대를 만든 지 올해로 12년째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겠다는 의도로 문학공연을 시작했다. 그 무대의 주인공은 문학인들이었고 그동안 수백 명이 출연했다. 나는 문학인과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데 의미를 뒀다. 독자가 만난 문학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어보길 원했다. 문학인들은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무대를 거부하지 않았다.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독자가 있기 때문이고, 문학인들은 치열하고 고독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독자에게서 위안과 자극을 얻었다고 본다.
지금껏 내가 문학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의 정체성 덕분이다. 2005년 등단할 무렵 시인으로서 시를 대중에게 널리 읽히게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시를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결합시켜 시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했다. 즐겁게 보고 듣고 느낀 시는 관객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이후 관객이 독자가 되어 시집을 찾아서 읽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한동안 딜레마에 빠졌다. 대중에게 다양한 시인과 시를 알리는 데 목적을 둔 문학공연인데 대중적으로 유명한 시인을 무대에 세워야 흥행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문학공연은 특정한 시인을 따르는 일부 독자가 있지만 전체 관객을 따져보면 크게 상관이 없었다. 공연 규모나 타깃층, 주제와 콘셉트가 중요했고 무엇보다 홍보력이었다. 더욱이 나는 온·오프라인 매체보다 소셜 미디어를 홍보에 활용하면서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누가 출연하든 소셜 미디어에 공연정보를 홍보하면 문학을 향유하는 마니아층을 비롯해 소셜 친구들이 반응했다. 그렇다고 반응을 보인 친구들이 반드시 공연장을 찾지 않는다. 그들의 반응으로 공연정보가 불특정한 독자에게 연결되고, 그 독자가 시인 혹은 문학공연에 관심을 생기면 시간을 할애해 공연장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시가 소셜 미디어의 장식품처럼 대중에게 소비되고 시인이 셀럽과 같이 유명해졌다 해도 시인의 무기는 시이다. 여전히 좋은 시를 찾는 독자가 존재하고 대중이 좋은 시를 만나면 독자가 된다. 시대가 변해도 시인의 삶과 창작의 고통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인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시류에 편승하기보다 시류를 역행하거나 자기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계속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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