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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소시집/정치산/詩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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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정치산
詩 외 4편
시는 주소가 정확할수록 오지 않는 택배다.
바닥에 팽개쳐진 책꽂이다. 밑 빠진 소문이다.
말들이 솟구친다. 꼬리표 물고 태평양을 헤엄쳐 온다.
비 오는 날 벚꽃처럼 너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어*
몽상드 애월*에서 몽상에 숨어 사막의 등을 건넌다. 고래 등을 훔친다.
물줄기를 따라 새우등 터진다. 나는 새처럼 빛의 콧등으로 미끄러진다.
꽃의 기억 속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라지는 당신을 놓친다.
* 네덜란드 튤립농장의 노래 제목.
* 제주도 애월에서 G드레곤이 운영하는 까페 이름.
기다려
꼼짝 않고 기다린다. 어떻게 해야 나올지 고민한다.
시커먼 발바닥을 기다린다. 쟁기날 같은 발톱을 기다린다.
검은 비를 기다린다. 검은 꽃을 기다린다.
검은 오자를 기다린다. 검은 편지를 기다린다.
어젯밤 막차를 타고 온다던 검은 비구름을 기다린다.
미끼를 던진다. 사과 시를 던진다.
어린왕자의 별에 뱉어 놓은 사과나무 쑥쑥 자란다.
엘리베이터에서
엘리베이터 문에 손대지 마세요. 싸대기 날리지 마세요.
기대어 개품잡지 마세요. 수다 떨지 마세요.
카더라 카더라도 세 명 이상이면 진짜가 됩니다.
거꾸로 도깨비가 생각의 엉덩이에 푸른 바늘 꽂아요.
소화가 안 될 때는 거꾸로, 거꾸로 망치질을 하세요.
코스모스 유람선
그늘로 옮겨 앉던 햇살이 그림자로 내려앉는다.
허깨비를 끌어안고 우는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햇살이 미끄러져 허방에 빠진 그녀를 다독인다.
다섯 시 십 분, 다른 시간으로 흐르는 귓등을 지난다.
오십 분 후 당신이 사라질 시간으로 햇살이 기운다.
시간을 지나쳐 갸웃갸웃 졸고 있는 얼굴을 깨운다.
젊음은 보이는 것보다 가깝고 추억은 보이는 것보다 멀다.
유람선에는 젊음이 모여 있고 춤추는 발자국이 들썩였다.
기억이 내려앉는 춤들이 그림자 주변을 돌고 돈다.
시작메모
낯설다
폭풍같은 여름이 지나갔다. 마음의 길로만 내달리던 몇 개월을 보내고 퍼뜩 정신이 들자 첫눈이 내렸다. 조금은 아쉬운 첫눈이 내렸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경량다운 재킷을 걸치고 예열한다. 거울에 비친 겨울이 낯설어 바람의 얼굴을 밀치며 점점 더 낯선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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