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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신작시/김지요/눈물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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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지요
눈물병* 외 1편
해피는 죽기 전에 어두운 곳을 찾아 헤맸다
한사코 마루 밑으로 기어들었다
누울 자리를 마련하듯 구덩이를 파며 죽어갔다
오빠는 병실 침대가 움푹 파이게 앓았다
편백나무를 잘라 식탁을 만들어 주겠다더니
동강난 연민을 쌓아둔 채 떠났다
물들고 번져가며 희미해지길 기도했다
모든 기도의 방식은 나만을 위한 거라 끄덕이며
먹다 웃다 날이 저물면
구덩이인지 보자기인지 알 수 없는 저녁이 왔다
파고들수록 깊다
보자기 같은 구덩이 안에
구부리고 누우면 내가 보이지 않아 편안하다
해피를 세다가 오빠를 기다리다가
버려진 연장처럼 잠이 들면
유난히 다리가 긴 식탁이 보인다
눈물병은 자꾸 목이 길어진다
*고대 이스라엘에 슬픔의 눈물을 받아두는 병이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눈물병을 함께 매장했다.
꽃밭의 서사
틈만 보이면 올라왔다
채송화가 숨을 고르면
쇠비름의 역공이 시작됐다
쇠비름을 뽑아주니 채송화에 생기가 돌았다
꽃밭의 장르는 느와르
피는 것이 전쟁이었다
만원 버스에 실려 가는 출근길
가까스로 비집고 서있던 킬 힐처럼
죽을힘을 다해 뿌리를 뻗어야 살아졌다
하루살이 개화에 목을 맸다
출근할 때 피고 퇴근하며 사그라졌다
사랑하느라 늙고 늙느라 바빴다
가을이 오고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쇠락함이 무성한 뜰에 앉아있다
명아주도 쇠비름도 이겨 낸
검버섯이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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