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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신작시/석정호/봄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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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석정호
봄비 외 1편
멀리서 보니 우산이 하나
아내의 봄옷이 노랗게
누가 꽂아놓고 갔나?
멀리서 보니 붓들이 거꾸로
날아가는 고니의 부리들이 하얗게
저 통상적 호명 말고
누구누구 또 누구누구
밀고 들어오나?
베란다에 나갔더니
배수관 속으로 고양이의 발톱이
옷자락 밟고 또 옷자락 밟고
깊은 물웅덩이를 흔들고 간다
집으로 오는 길
누이의 치마를 걸쳐 입고 목련꽃이
나와 앉은 곳
동네 형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얼굴을 지워버린 누가
아까부터
자꾸만 나를 부르고 있다
자동세척기 학교
스스로를 깨끗하게 돌리는
기계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
먼지 자욱한 날
지구의 벼랑에서 전원을 켠다
하루를 침대에서 뒹굴면
작년 은퇴했으니 이제 백수
넝쿨가지 불안과 걱정의 물소리 자욱하다
울컥 어떤 발자국은 아직 지워지지 않아
울분도 불덩이를 치밀어 올린다
세월은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들러붙는 것이다
아침, 화장을 하고
헝클어진 꽃샘바람처럼 빨려든 곳은
인근 초등학교
시간강사로 올 수 있냐는 새벽전화를 받았다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의 눈망울과
웃음 사이의 투명 이빨들
몸에 와 감기는 솜털들이 세정제 되어
여섯 시간 후
교문을 나서는 선생님
크리스탈 그릇처럼 뽀송하다
밀려다니는 찌꺼기
독수리 발톱
잡풀들로부터
그녀, 말끔히 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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