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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신작시/이정모/공중의 화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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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정모
공중의 화법 외 1편
풍경은 모든 것을 은유로 말한다
단풍나무는 단풍잎으로 소나무는 솔잎으로
썩으며 말하지만
한 끼의 봄 햇살을 기다리는 땅은
죽음이 싹으로 환생하는 소리를 알아 듣는다
바람이 세상 문을 모두 열어놓고 갔는지
달빛은 계절도 없이 떨어지고
저홀로 서러워진 마당에 고이는 달의 문장들
침묵이란 텅 빈 것일까 가득 찬 것일까
삶이란 어둠의 대화에 너무 익숙해서
뒷모습에 그림자나 길게 달아놓고
그러니
까닭 없이 피고 지는 세상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가장 완벽한 정열과 손잡은 허공은
나의 젊음까지 물들여 놓기만 했겠어?
하늘 벼루에 막힌 바람을 풀고 응어리를 갈아
사방이 통로다, 일필지휘 별빛 휘갈기는
공중의 필담,
그 영원한 비밀을 노을 진 자리에 그린 것까지
별빛이 관객이다
그대는 오라
소주 한 병 새우깡 한 봉지 들고 가는 내가 보이거든
아직은 그믐에게 줄 수 없는 잔광이 내게 남은 것이니
겨울 밤 저 별들이 흔들리면
누군가의 한 방울 눈물인 줄 알고
떠난 자가 아름답다는 말에는
그의 이름을 서럽지 않게 불러줄 것이니
그대는 기억하라
별이 깜박이는 걸 잊은 적 있던가
빛나는 오늘을 한 판 신파로 제대로 놀아야지
뒷켠 장독대 턱을 괴고 있는 밤이슬
별의 눈처럼 거짓말 하지 않고
달빛으로 고백하는 내 표정부터
매정함에 끄덕이는 바람 한 점까지 다 읽어 낼 것이니
그대는 보라
그만하면 되었다는 말에 포섭 당하지 말고
넘어져도 일어나야지
그대와 같이 온 고양이 눈 속으로
뛰어내린 별빛이 하얗게 웃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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