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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신작시/이주희/쑥순이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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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주희
쑥순이전 외 1편
복더위를 쫓느라 쪽마루에서 부채질하던 엄마가
혼자살림에 고단했던지 깜빡 졸았대요
그새 사달이 난 겁니다
엄마 무릎 베고 잠든 아기가 뒤척이다 떨어져
봉당에 피워놓은 쑥대 모깃불을 짚었다지요
자지러지는 울음에 황급히 안아보니
오른손 세 손가락에서 한 마디씩 떨어져나갔대요
엄마는 제발 아프지만 말라며
쑥설기 찌고 쑥전 부쳐주고 쑥경단도 빚고
쑥국 쑥차도 끓여주었대요
쑥 자만 들어도 팔짝팔짝 뛰며 박수를 쳐서
쑥순이가 되었다지요
쑥국쑥국 쑥국새가 울어도 동무처럼 반겼다 하고요
그 손으로 쑥순이는 사생대회 상도 독차지했대요
학교 대신 다닌 공장에선 미싱자수 뜨개질 솜씨도 최고였다지요
이불가게를 할 땐 손수 솜을 틀어 이불을 꾸몄는데
새색시용 원앙금침은 근동에 소문이 자자했어요
우리 큰애가 재수 끝에 대학시험에 붙자
명의가 될 친정 장조카가 대견하다며
통 크게 식구 수대로 이불 일습을 가져왔지요
팔 남매 큰며느리 자리 시집살이를 암팡지게 견디며
시동생 시누이 혼사도 거뜬히 치렀고요
종심을 바라보는 쑥순이는 며느리 하나에 사위 둘을 얻어
손주를 헤아리려면 열 손가락이 몽땅 필요합니다
말복 아침
별도 달도 초롱초롱한 어둠 속에서
수탉이 목청을 높인다
부창부수라는 듯 암탉이 화음을 넣어준다
아빠 엄마를 거들고 싶은지
병아리들 종알거림이 이어진다
며느리가 안방에서 살그머니 나오는 소리에
거실도 주방도 단잠에서 깨어난다
부사리의 대찬 기상노래가 오늘 따라 우렁우렁하다
목매기송아지 어스럭송아지도 복창을 한다
창밖이 기지개를 켜고 먹빛이 옅어진다
돼지 참새 까치 개 멧새까지 끼어드니
온 마을이 들썩들썩거린다
텔레비전 수다에 거실도 꽤나 수럭수럭하고
부지런쟁이 옆집 할아버지가 경운기에 시동을 건다
도마질 소리 압력솥 딸랑거리는 소리가 날아다니고
전 부치는 냄새 칼칼하게 갈치 졸이는 냄새에
인삼 대추 마늘 밤 넣은 삼계탕 냄새가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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