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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신작시/박천순/구름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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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천순
구름들 외 1편
내 안에 구름이 산다
먼 길 하나 품은 감정이 떠돌고 있다
형태도 없고 머무르지도 못하는
구름은 벽화 속에서 살다 왔다
물끄러미 행인들을 바라보다
벽속의 침묵이거나 그림자가 되었다
저물녘 골목을 지날 때
구름은 어둠이 스미듯 내게 스몄다
구름이 내 안에 사는 건 나의 뜻이 아니다
구름이 제멋대로이듯
나도 제멋대로이다
먹구름이 머무는 자리엔 다가오지 마라 그대여
위험한 상처가 열리는 문
뜨겁게 구워지는 감성이 맺혀
흘러내린 구름이
당신의 가방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
방금 읽은 시집의 글자들을 흠뻑 적시고
바깥풍경을 흡수하고
지독한 자책을 키울 것이다
꼬물꼬물 수많은 구름의 감각들이 당신을 데리고
뿌리 깊은 벽속으로 스며들지 모른다
구름 속엔 누군가 담겨 있다
발효되는 글자
백악기의 문장이 곰삭고 있다
저 단단한 책갈피 한 장도 들추지 못하는 나는
침묵하는 파식대 위에 앉아 있다
바다에 햇살 떨어지는 리듬이 눈부시다
첫새벽에 태어난 이 소리들이
한 겹 한 겹 바다를 읽고
돌책을 읽어 내리는 목소리라는 걸
어둑한 저녁이 올 때야 알았다
돌 읽는 소리 수평선을 넘어갈 때
종일 읽은 단단한 문장들을
울컥울컥 바다 속에 부려놓는 해
붉게 발효된 글자들이
내일 아침 더 눈부신 빛으로 태어나고
바다는 수 천의 손가락을 뻗어 물길을 빚을 거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생이 물 주름마다 갇혀있을 거다
감은 눈 속에서 글자들이 반짝일 때
죽어서 하늘로 간 영혼들이
돌 속 문자로 태어난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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