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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신작시/김밝은/정암사에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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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밝은
정암사에서 외 1편
수마노탑을 오르내리던
열목어도 가만가만 젖은 숨을 내쉬는
스무하루,
몸을 숙여 가던 달이
극락교에 잠시 내려앉을 때
그렁그렁해진 하늘을 잡아당겨도
곁눈질하던 세상의 시간들만 쏟아져 내려서,
눅눅한 주름살을 달의 그림자로라도 펴보고 싶은 밤
배경처럼 살았던 세상에서의 흔적으로
어지러운 세속의 잠을 자다
놀라 일어나면
죽비소리 꿈결인 듯 어깨를 두드렸다
사이,
1.
사계절 뽐내던 할머니의 골목길 화분 꽃밭
삐뚤빼뚤, 손글씨가 길을 막고 서 있다
‘화분 가져간 년, 손구락이나 뚝 짤라져 부러라’
서슬 퍼런 글자 앞에 무릎 꿇은
죄 없는 봄날이 바들바들,
벌서고 있다
2.
열무김치 배추김치
팔순 노모의 절뚝거리는 숨결이 도착했다
못살아 정말,
진달래꽃 필 적마다 치맛자락 오지게 잡아당겨도
쓱쓱 닦아내며 돌아서던 눈물
옴팡지게 들어앉아 있다
3.
뜻이 같지 않으면 마음의 거리가 삼만 팔천 리*,
돌아누운 등과 등 사이에 흐르고
마주보는 가슴과 가슴 사이에도 흐르고,
구름 안개 젖히며 나오는
초승달의 흔들리는 눈썹 위에도 얹어져 있고…
* 법정스님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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