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7호/신작시/윤종환/섬모기 입술침은 길고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35회 작성일 18-05-05 19:56

본문

신작시


윤종환


섬모기 입술침은 길고 외 1편


바다 건너 외따름한 섬에는
유난히 주둥이 긴 모기들이 산다
성충은 정신없이 비행하다
사람의 연약한 살갗을 더듬이로 훑고
기다란 입술침을 사정없이 꽂는다
제 입바늘 속으로 억울한 핏방울이 솟는데
길이가 천백 미터
빨아먹기도 힘들 텐데 독충이구나
붉은 피가 잔인하게 흡입된다

그 관을 들여다보니
탄광처럼 비좁고 어두운 골목에
분진粉塵의 사내들이 백혈구처럼 뛰다닌다
오래 피를 빨다 지친 주둥이에서
소화불량으로 가스 뿜어 나올 때
그들은 강제로 약이 되었다
활명수도 안 통하는 고온의 입술침에
몸부림치는 면역 작용
세포막 하나 없이 갱도에 부딪히다
핏방울은 석탄처럼 탁해져 간다
모기의 뱃속을 향해 간다

이들 중에 별종이 있는데
종자種子는 불분명
사람 피 좀 같이 빨아보겠다고
어찌나 앞다리 뒷다리를 잘 비벼대는지
살충제도 듣지 않는 녀석
섬모기 입술침보다 배가 두꺼워
찔리면 주삿바늘보다 아프단다

얼마나 빨아댔는지
부풀어 오른 배 풀려버린 눈
무겁고 뚱뚱한 노안老眼의 비행은 곧
생을 마감할 터인데
기다란 침 하나 믿고 여태 날고 있다

세상이 손뼉 칠 때
납작한 죽음으로 남을 운명
벌레의 입술침은 길지만
주둥이가 길어 얼마 못 갈 숙명
섬모기 입술침은 길지만
박멸의 순간은 폭발처럼 짧다



언제쯤 반듯하게


모 그룹 신입사원이라는 사내가
명함을 주고 갔다
건네받은 종이에서 스팀 냄새가 난다
와이셔츠보다 빳빳하게 다린 이름
코팅된 얼굴 위로 윤기가 흐르고
고르게 교정한 치아처럼
전화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다
세탁소에서 방금 나와 때깔 참, 곱다
언제라도 베일 것 같다

주머니를 뒤졌다
같은 회사 신입 사원이라는 사내가 또 있다
전화번호는 똑같은데 다른 이름
일 년 전 다린 옷이 해져 있다
목에 낀 때처럼 가장자리 얼룩져 있고
뒷면은 다른 사내의 잉크가 묻어있다
하릴없이 밀어내다 쓰러졌나
애석하게 묻은 흔적이 드문드문

글쎄 그 다른 사내도
같은 회사 신입 사원이었다
전화번호는 똑같은데 다른 이름
제 이름 덮으려는 새 종이에 저항
다음 사람 등판에
침만 튀기다 눈물만 튀기다
어느새 빛바랜 셔츠만 남아 있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땀냄새 흥건
처참히 구겨진 이 년 전 명함

거울에 비친 나는
이름의 절반이 지워져 있다
다리지 못할 만큼 구겨져 있는 옷
섬유탈취제도 안 통하는 땀 냄새
벗겨진 코팅지
그들과 같은 숫자와 잉크, 종이

목이 조여도 좋으니 이름을 매어 줄
넥타이 하나 필요한 우리
삼 년 전 명함이 엎드려 있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