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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리토피아 신인상/김영진/꽃의 초대로 뱀이 되는 별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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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77회 작성일 18-12-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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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김영진



꽃의 초대로 뱀이 되는 별 외 4편


붉은 꽃 옆에서 눈을 치켜뜨면 목줄 핏대도 불끈한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면 비꽃이 산골짜기에 쌓이고 바위 틈에 걸린 허물에는 달빛이 가득하다

바람 부는 날 고목나무 뿌리 밑으로 파고드는 대가리에 이슬이 맺히면 언제나 그랬듯이 봄은 꽃을 피우고, 삼라만상은 생과 사의 경계가 不可解진다.

어두운 하늘에 뱀자리가 처음으로 자리 잡고 꽃이 지상으로 뛰어내린다. 꽃잎이 흩어지지만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한 동맹은 아직 유효하다. 화려한 촛불 파티에 그대를 초대한다.

별이 하강한다. 바람난 봄의 왈츠가 흐른다. 바짝 처든 머리에서 맹독이 뚝뚝 떨어진다. 격정의 키스가 수상하다. 진달래가 목을 꺾는다. 물드는 남한강이 불타는 북한산을 바라본다. 진달래꽃에 이빨자국이 선명하다. 새벽닭 울기 전 돌아오라는 전갈이 온다. 

꽃의 손바닥 위에 뱀의 눈물이 스르르 떨어진다. 안개비 내리는 진달래 바위 틈에서 그대 눈알을 파내고 있다.



바다 건너 풀씨 날아오다


春夏.
게눈 감추듯 봄을 먹고 있다.
꽃비 속에서 딸기들이 얼굴을 붉힌다.
햇살이 스미자 뿌리들이 물에 젖는다.
방구석에 처박힌 나를 향해, 시는 써서 국 끓일겨.
어머니 사랑이 허구헌 날 묻힌다.
시가 헛소리하던 서정의 은유들,
백짓장의 온갖 말들이 날마다 해산달을 기다린다.

夏秋.
계간지 편집장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水蜜桃, 하얀 복숭아를 아작 씹는다.
꾸덕꾸덕한 습기가 방안 벽지 속으로 숨는다.
십이지장을 통과하는 장마가 천둥 번개를 친다.
참외씨가 대장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포도씨가 대장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뚜껑이 열리고 닫히고, 옆방 어머니가 한마디 한다.
얘야, 두 번 쌀 때 한 번 물 내려라.

秋冬.
그 여인의 가슴이 오늘은 작아 보인다.
이별할까 생각해본다.
목젖이 매너리즘에 걸려 있다.
광장의 비둘기가 야성을 잃었다.
먹이 주는 대로 핑크빛을 보내고 있다.
그녀를 비둘기처럼 사랑하고 싶다고
내 젖꼭지가 말했다.

冬春.
시집만 갉아 먹는 공벌레가 책을 읽는다.
돋보기 안경 끼고 무릎 탁치며 동문서답 한다.
연민의 정을 느낀다.
저 벌레가 쓰는 돋보기 도수는 얼마일까.
그냥 불을 밝혀 준다.
삭삭삭, 또 한 마리가 나타난다.
공벌레가 사랑을 더듬고 있다. 축하한다.

매화꽃에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단물 향기에 살다 죽은 적이 있다.
바다 건너 풀씨 날아오고 있다.



어느 시인의 개나리 진달래꽃


밤새 달도 따고 별도 삼켜보고 한 줄 쓰면 귓속에서 애벌레 잠자는 소리 들린다.

개나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고집 부리며 저 잘랐다고 하지. 마음의 문에 돌저귀를 채우고 나리나리 개나리꿈 꿔 봤나. 心象을 거울 속에 비춰 보았나.

진달래가 환한 미소 짓는다. 바늘귀에 낙타가 통과 중이다. 언어들이 사막에서 꿈틀대고 달래달래 진달래꿈 꿔 봤나. 心象을 거울 속에 비춰 보았나.

천년의 국화무늬 동거울 물고 거울 속에서 장닭이 걸어 나온다. 고려산 비탈을 바라보는데,

초경의 분홍피 토하고,폐경의 노란 꿈 펼치고 애벌레가 잠에서 깨어난다. 개미귀신이 영혼의 달빛 속에서 모래무덤을 파고 있다. 시끄럽던 귓속이 무풍지대가 된다.
 
원고지 여백이 채워진다. 개나리 진달래꽃이 흐드러진다. 노란치마 연분홍저고리 봄날이 가고 있다.



포장마차


포장마차가 술을 따른다. 닭똥집과 소주의 그림자가 탁자에 가득하다. 배 씨, 고만 마셔. 여편네가 기다린당께. 고개 돌리더니 한마디 더 붙인다. 저놈의 배 씨는 또 외상질이랑께. 때국물 쩐 치부책에다 연필 침 발라 갈매기 그린다. 외상값 다 받으면 청와대도 살 수 있겄제. 넉살이 백열전등 그네를 탄다. 맴은 부자지라, 넥타이 맨 것들이 불상치. 계란말이, 빨간딱지 하나요. 나사 풀린 여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천사의 나팔


달빛이 붉은색 커튼을 친다.
텃밭엔 노랑 붓꽃이 허공에 나비 떼를 그린다.
바다로 돌아가려 날개를 팔락인다.
숲의 바람이 철조망 통과할 때
고목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아직 배가 고프다.

웅크린 소 한 마리가 꾸벅꾸벅
나무와 숲이 달빛 오선지에 음표를 올리면,
천사들이 일제히 나팔을 분다. 언제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악마가 사랑을 빼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천사의 나팔은 밤에만 향기를 내뿜는다.
딱 한눈에 보일만큼의 거리에서
키스를 마친 후 몸을 떨고 있다.




소감


젊은 날의 나비들이 날개를 포개며 날아오른다


대학시절 호숫가 벤치에 걸려 있던 시화들이 떠오른다. 젊은 날의 이미지가 나비 되어 망막의 뒤편으로부터 쏟아져 나온다. 내 속에 숨어 살던 각양각색의 나비들이 서로 날개와 날개를 포개고 날아오른다.
내 인생의 전환점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를 배우면서 희열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 시에 섭취당하는 즐거움을 아는 순간 찌릿했다.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열망에 매일 한 편씩 쓰는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진정한 재미는 술 마시고 좋은 안주 먹는 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면서 타자를 관찰하고 관조하며, 시를 통해 풀어내는 순간에는 진정으로 늙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작업은 내 영혼과 시를 결부시키기 위한 작업인 듯도 했다.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가능성을 챙겨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시인의 길과 자세를 먼저 일러 주신 스승님께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부분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막비시동인들의 과분한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함께 공부한 한 먹시동인의 따듯한 우정도 진실로 고맙다.
독자들에게 따듯하고 포근하게 다가가겠다. 더 열심히 신에게 바치는 주문을 쓰겠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사랑합니다./김영진




심사평


사물을 허상화시키고 선명한 이미지로 구현하는 능력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등단시인도 문학청년 같은 고령의 텍스트 생산자가 많아졌다. 텍스트 생산자로서 이런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같은 연령층의 시 수용자도 늘어났다는 증거다. 늘 생산자는 수용자에 비례하니까. 어느 계간지 모임에 가면 이런 고령층의 문인들로 채워져 있음을 본다. 실제로는 노인을 수용자로 한 전문적인 문학지도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전망도 해본다. 홀로 사는 사람을 위한 혼술, 혼밥이 있듯이 없으란 법은 없다.
김영진 시인은 막비동인으로 열심히 참가하여 시도 배우고 쓰는 시인이다. 나는 삶의 경륜이 어느 정도 쌓인 나이에 문학청년이 되어 시를 쓰며 인생의 의미를 되씹어보고 아름답게 마감하려는 분들의 일상에서 감명을 받는다. 시를 쓰며 문학을 하는데 나이 들어 신출내기라고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작품 「바다 건너 풀씨 날아온다」는 그런 시인의 일상이 담겨 있다. 시구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를 향해 시를 써서 국 끓일겨”하는 어머니의 꾸중은 일찍부터 문학청년으로 시를 쓰던 분이라는 것을 충분히 일깨워주고 있다. 우선 상상력이 풍부하다. 시적 상상력이란 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 같은 것이다. 「꽃의 초대로 뱀이 되는 별」은 제목부터가 별이 어떻게 뱀이 될까 궁금증을 일으킨다. 시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력이 시인의 마음대로 춤춘다. 하늘의 별의 뱀의 운행처럼 춤추며 꾸불꾸불 내려오기도 하고  그것은 “물드는 남한강이 불타는 북한산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가 “진달래꽃에는 선명한 이빨자국을 남기도 ”하며 새벽닭이 울면 마침내 “꽃의 손바닥에 뱀의 눈물이 스르르 떨어진다.” 시적 표현은 상상력뿐만 아니라 시적 리듬도 더불어 잘 타고 있다. 특히 김영진 시인은 자신이 시를 쓰는데 있어 장점을 아는지 몰라도 사물의 이미지 구현에 있어 실상적인 사물을 허상(상상력)으로 만들고 또 이것은 사실인양 선명한 이미지로 구현하는 능력은 참으로 좋은 점이라 보겠다. 시인으로 좋은 걸음 걸으시길 바란다./강우식(글),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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