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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특집/내 시의 처음/신두호/같은 강에 적셔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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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내 시의 처음
신두호 시인
같은 강에 적셔진 발
그것은 하나의 흐름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것들이 나를 거쳐 먼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모습으로 드러난다. 나는 흐름 앞에서 그것을 살핀다. 형태와 빛깔 그리고 그것의 소리까지 포착하려 한다. 흐름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물결이라 불리는 물의 흐름이 점점 선명해졌다. 흐름은 물의 형태와 빛깔 그리고 소리로 전달되었다. 나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르는 그러한 물결을 보고 있었다. 고유한 울림과 형태 속에서 물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면서 나아갔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물결들의 방향을 바꿔가면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것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 강으로 흘러나갔다. 물의 표면은 지금의 흐름을 쉼 없이 이어나갔고 나는 여전히 그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강이라는 하나의 표상은 그것 자체로 유일하기에 언제나 지금 이 순간만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보고 듣는 강은 지나간 물결들을 미래가 아닌 다른 시점으로 옮겨 왔는지도 몰랐다. 만약 그것이 과거로 향한다면 나는 온전한 순환 속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흐름을 부정했을 것이다. 내 앞을 지나는 풍경은 나의 움직임 때문은 아니며 단지 내가 사로잡혀 있는 것의 흐름일 뿐이기에 모든 것이 변화 속에서 매번 새로운 것으로 거듭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은 순환하지 않는다. 오직 흘러가고 미끄러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러한 대상들이 지금이라는 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했다. 단일한 표상으로 등장한 강은 그렇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의 의식으로 지배했다. 영향 관계 속에서 그것이 소유한 온갖 흐름과 속성들은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었다.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서의 흐름은 의식의 모습을 시간으로 보여주었다. 변화의 면면이 늘 새로움으로 달라지는 것은 의식을 통해 합성된 물결의 흐름 때문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표상하는 것으로서의 강은 나의 외부에 있지 않았다. 이는 늘 새롭기에 더 이상은 새로워질 것이 없는 그러한 강이었다. 동시에 주어져 있는 것으로서의 흐름은 우리의 본 모습을 스스로 발굴하기를 원했다. 물결에 내맡겨져 그 안의 온갖 인상들로 인해 매순간 달라지는 존재로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야만 했다. 흐름에 대한 최초의 경험은 따라서 일회적인 차원을 염두에 두었다. 개별적이고 제한적인 강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로 남았다. 흐름에 내맡겨진 존재로서 그것에 대항하는 차원은 일회성의 계기로 인해 달라지는 것 같았다. 강에 대한 최초의 자각은 일회적인 것이라는 삶의 고유한 영역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다. 최초의 것으로서 늘 새로워지는 삶의 모습은 그것에 물질성을 부여했으며 우리는 자신을 지배해왔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삶에 대한 생생한 경험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 앞의 거대한 흐름을 맞이하여 그것에 뛰어드는 일만이 스스로를 구원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한 번 뿐인 삶을 강물이라는 최초의 흐름에 내맡기면서 새로워지기를 바랐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육신을 확인하는 일일 뿐일 수 있지만 동시에 시간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처음 적셔진 발은 그렇게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의식화한 대상들을 내던지면서 자신을 실재화 하였지만 동시에 강물을 그것 자체로 일깨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일종의 감각적 전환이 나를 실재의 면면에 참여하도록 요구했다. 개별적인 사례들은 그 위를 덮는 물빛으로 흐름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적셔진 발은 감각된 차가움과 물살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온몸에 전달했기에 강의 실재성은 목적지를 향할 수 있었다. 매순간이라는 감각의 일회성은 삶을 온전하게 그것에 대한 최초의 경험으로 표현하였다. 삶은 그것의 유한함으로 드러났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려 들었다. 발은 여전히 물속에 있었고 매순간을 계기로 외부에 실재하는 강물을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거기에는 기이함이라고 부를 만한 정념적 상태 또는 감정이 깃들어 있어서 표면에 번지는 빛과 매번 달라지는 물의 색깔 그리고 온갖 소리들을 한데 받아들이며 자신의 내부에 넘실거리는 물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부추겼다. 기이한 감각 속에서 매번 발이 미끄러질 때처럼 서늘한 현기증을 느끼며 나아가려고 했다. 강의 시작과 끝을 그것의 목적 속에서 파악하고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일회적인 삶의 온갖 기쁨들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관념 속에서 시작된 물의 흐름을 실재하는 것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비극을 감출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한 번의 흐름이 그것에 대한 현실 속에서 체험에 이르렀고 늘 변화하는 세계의 면모는 진실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순간들이 흘러가는 것의 전부였고 살갗의 느낌은 그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삶의 징표로서의 느낌들이 나의 내부에 뚜렷한 자국을 남겨놓았다. 강물은 다시 한 번 같은 자리에서 흘렀고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물살들을 앞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것의 생생함에 대해 질문하는 일만을 남겼다. 일종의 괴리감이 모든 것들을 의심 속에 쳐박아두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나는 강물의 바깥에서 물결을 보고 물을 생각하고 흐름을 익힌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재가 강물에 자신을 내맡긴다고 할 때 그것이 나의 일부라면 의심하고 거부하는 일만을 목표로 삼는다. 의식 속에서 파악된 하나의 흐름과 그것에 대한 실재로서 등장한 강과의 괴리에 책임을 묻고자 했다. 분명 이미 적셔진 발은 이제는 더 이상 강물의 흐름 속에 있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와 물결을 이어주는 것은 더 이상 없었고 처음 발을 적시기 이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어느 것에서 세계의 본모습을 찾으려고 했었는지를 스스로 묻게 했다. 분명 나의 발을 담았던 하나의 흐름으로서의 강은 이미 먼 곳으로 떠내려가고 없었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끊임없는 물살이 새롭게 밀려오며 앞의 흐름을 어딘지 모를 강의 너머로 흘려보냈다. 실제로 그러한 물의 흐름을 바라보는 일에는 이전과 다른 정념이 깃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흘러가버린 것에 대한 관념을 되새기려는 의지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에게로 돌아와 물에 담겨 축축해진 피부의 촉감을 반성하려 한다. 의식이 만들어내는 사태와 사건들이 더욱 생생하다고 주장하면서 조금 전까지 내가 발을 담그고 서 있던 자리를 애써 외면한다. 삶의 일회성은 그것의 생생한 감각을 통해 의식을 빼앗으려 했기에 강의 물살은 밑바닥에 박힌 돌을 더는 마주할 수 없었다. 바닥이 스스로의 본성에 의해 더욱 강력한 힘을 쥐게 된 것처럼 여겨지고 물결은 원래 그것의 모습대로 실재의 온갖 형태들을 뒤로 한 채 마지막의 빛마저 사라진 흐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의식이 고유하게 시간의 모습으로 복귀하였고 흐름은 스스로의 희박함 속에서 모습과 소리를 감추어갔다. 강과 주변의 모든 것을 밝게 하던 빛이 희박해지면서 소리가 잦아들고 마침내 의식은 오직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숨 쉬는 일을 반복했다. 오직 그것만이 의식에게는 마치 영혼이 내는 소리와도 같았기 때문에 귀 기울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숨쉬기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는 통로나 다름없었으며 의식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너무나도 무기력한 호흡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해야만 했다. 새로운 강은 나 자신을 전체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 속에서 등장하였다. 부분들로 구성된 하나의 신체를 그것의 호흡으로부터 가다듬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것만이 의식에게는 다른 존재의 심층으로 내려가기 위한 여정의 시작과도 같았다. 새로운 강과 강물, 그것의 물결, 흐름 그리고 소리는 일회적인 삶의 계기에서 벗어나 참된 정념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길과도 같아 보였다.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그러한 물살이 매순간의 나를 강 너머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발을 강물에 담근 상태에서 그것의 전체를 그려내려고 애썼지만 보이는 것은 오로지 휘고 구부러지는 물결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 안에서 의식은 온전한 하나의 흐름으로서 나를 이야기하고 속삭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늘 새로워지기에 더는 새로워지지 않는 흐름의 양상이 모든 존재에게 회의와 무기력감을 더하는 것으로 보였다. 시간은 주관의 자각이라는 고유한 영역에서 의식을 의심으로 물들였다. 그렇게 두 번 적셔진 발은 삶의 온갖 정념들을 그것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리면서 자신만의 무기력한 뉘우침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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