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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특집/내 시의 처음/민왕기/최초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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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내 시의 처음
민왕기
최초의 시
스무 살은 가장 늙어버린 나이였다. 더 이상은 마실 수 없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삶이었다. 그걸 이제 뭐라고 부를까. 20년 전 같았다면 절망이라고 표현했겠지만, 그런 것이 정말 있기나 한 걸까. 냉정한 세계 위에 피 흘리는 것들이 많아서 지구는 돌아갔다. 세계를 생각하면 어지러웠다. 거대한 ‘염세厭世 공장’에서도 이유 없는 채무를 안고 사는 노무자가 된다는 것, 애초의 내 자리가 빈자貧者였다는 걸 의미했다.
스무 살은 분홍의 시절이었지만, 분홍의 시 같은 것들은 없었다. 물론 시 같은 건 아직 사랑하지도 않았다. 더 사랑한 것은 여자였다. 반지하 자취방으로 노을이 들이칠 때 두 사람이 서로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써, 삶은 그나마 견딜만하게 지나갔다. 글을 쓰지 않는 인간도 충분히 고독하다는 것을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통해 배웠다.
그녀도 충분히 외로웠으므로 시인만이 생을 처절히 앓고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시가 삶을 어떤 쪽으로 이끌었거나, 이끌 수 있다는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어쩌다 눈이 맞은 것일 뿐, 눈이 맞아서 한 계절을 같이 나고 있을 뿐이다.
서울은 견딜 수 없는 모욕의 공간이었으므로, 삶의 통로가 막혔다는 막연함 끝에 죽은 시인의 시집을 자주 꺼내 읽었다. 돌아보면 미친 짓이었을. 절규와 한탄과 증오와 슬픔과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주술이 꽉 찬 그 시집. 그걸 읽으면서 방구석의 탐미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은, 기사소설을 읽다가 결국 미쳐버린 돈키호테의 일처럼 가소로운 것이었다. 뚫을 수 없는 무엇을 이미 알고 있는, 가장 늙어버린 나이의 스무 살이었는데도 말이다.
황지우 시인이 ‘어? 여기가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유혹」 中)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한 살을 더 먹어 더 젊어진 스물 한 살이었다. 왜, 안 나가지는 걸까. 생철학자들은 이미 자살했거나 자살하지 못해서 미쳐버렸다는데, 죽거나 미칠 자신도 없었던 나약이 던진 질문치고는 제법 허방이 넓은 편이었다. 그나저나 스물 몇 살을 돌아보다가 그 시절의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보니, 나는 여전히 신을 믿고 있는 모양이다.
최초의 시. 나는 그것에 대해 쓰라는 얘길 들었지만 스무 살이 내 최초였다고 쓰고 있다. 최초는 가장 늙어버린 나이, 최초는 가장 늙어서 이제는 죽어버린 나이다.
이끼 낀 검은 옷, 해진 그물 속으로 희고 불분명한 묵주알들이 들어가 박힐 때, 물 묻은 검은 우비처럼 밤은 오곤 하였다 그런 밤이면 단바람 부는 가래나무 숲속엔 푸른 잎사귀들이 자라나고, 숲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엔 눈물그릇 같은 달이 그렁그렁하였다
그러하였다 사색이란 언제나 산책과도 같이 가벼워 생각 끝에 숲을 빠져나올 즈음이면, 등 뒤엔 항상 무거운 묵상이 무섭게 무섭게 흐느끼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하였다
눈 감은 어둠 속, 한참동안을 자폐 환자처럼 고요히 서있을 땐 오래지않아 지나는 비라도 내릴 듯 적막한 바람이 불어왔다 눈 가리고 계집이 울 듯 달 가리는 구름이 몰려올 것만 같았다 그럴 듯하였다
가래나무 숲, 바람꽃들은 물 맺힌 바람 속에서 죽고 바람 속에서 나는 몰래 울고 있다 머지않아 큰 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지고 숲속으론 심금이 울겠지만, 누구에게도 내 소소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눈 감아 편한 어둠 속, 푸른 연무 가득한 마을이 잠기고 어두운 바람은 그렇게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어둠 속에서 흰 보자기 나풀거리는 환한 오후의 방패연, 바람꽃처럼 죽은 흰 방패연을 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세 편의 시로 남은 청춘·1997 부분(시집 ‘아늑’ 중), 원제는 ‘묻힌 개’
1997년 여름, 병세가 깊어진 아버지가 죽었고 처음 맞는 죽음이었다. 스무 살, 그리고 이제 마흔이 되었는데도 그것은 알 수 없는 얼굴이고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유언도 없이 죽었는데, 그것이 어쩌면 나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무엇이 그로 인해 유언도 없는 죽음을 택하게 했는지, 내가 유언조차 들을 수 없을 만큼 엇나가는 스물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꽤 오래 죽음을 들여다봤지만, 철학책을 읽다가 던져버리는 식의 귀찮은 미궁 같은 것이 죽음이었고 삶이었다. 그러니 나는 무섭고 지겨워져서, 철학 대신 음악을 하는 편이 낫다고 썼다. 나는 노래하는 것으로서의 시만을 알고 있을 뿐, 철학하는 것으로서의 시는 알지 못했다.
최초의 시는 막연한 의문이었지만, 공포가 찾아온 후 그 의문조차도 멀리 치워버린 것이 사실이었다. 하나의 철학적 주제만을 며칠이고 되풀이하는 강박사고, 그리고 불면과 불안장애, 공황을 탈출시킨 것은 ‘해답’이 아니라 응급실의 주사였으니 얼마나 한심한 결과였단 말인가.
이제 ‘답이 없어서 철학은 믿음으로 끝이 난다’는 무지의 언사로 의문은 갈무리를 하고, 철학엔 아무런 해답이 없다고 스스로 단정 짓고 말았다. 이것은 생존의 한 방식이자 무지의 한 사례일 수 있다. 최승자 시인이 말하는 불행을 견딜 수 없었고, 허수경 시인이 말하는 불운을 겨우 견딜 수 있는 것과 같았다. 결국 끝은 폐허이니까. 폐허까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까. 폐허까지 가서 스스로 폐허가 되지 못해 늘 폐허의 언저리를 맴돌다가 옛 노래나 부르며 지나가는 가수처럼, 그만큼의 나약으로 사는 것이 좋았다.
낡은 것들이 좋았다. 지나가서 낡고 낡아버린 것, 떠도는 것, 우는 것, 뿌리가 없는 것, 지지리 궁상인 것들…. 그곳에선 피가 흘렀다. 낡고 낡아버려 더 이상 낡을 곳이 없는 곳에서도 피가 흘렀다. 피가 흐르는 곳은 폐허가 아니었으므로 모든 과거는 폐허가 아니다. 오로지 미래에서만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 어둠 속에서 흰 보자기 나풀거리는 환한 오후의 방패연, 바람꽃처럼 죽은 흰 방패연을 볼 것(「세 편의 시로 남은 청춘」 1997 부분)’이라던 가장 늙은 스무 살은, 이제 그만큼을 더 살아서 가장 어린 마흔이 되었으니. 그러니, 무엇을 알 리가 없다. 나는 그저 함께 울기로 했다. 피 흘리기로 했다. 고통이 어려우니, 슬픔 정도는 나누는 피톨들이야말로 현실적인 일 아닌가.
나는 이제 간지럼도 잘 타고 농담도 잘 한다. ‘최초의 시(?)’가 있었던 20년 전에도 어쩌면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더 많은 간지럼을 타고 농담도 하면서 간혹 슬픔으로 축성된 세계를 바라볼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도 간신히 희망적인 세상일 것이다. 모욕적인 이십대와 삼십대를 떠나와 굴욕적인 사십대로 들어선 것을 축하하면서 가장 늙은 스무 살에게, 최초의 시였던 의문들에게 가장 어린 마흔 살이 쓴 첫 시집의 마지막 장을 건넨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안다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술 마시고 있다//답 없는 세상에 나처럼 태어나서 아이들이 자고 있다//새벽에는 조금 걸었고 전화를 했고 기어코 제자리로 돌아온다//벚꽃이 지고 있다 당신이 내게 시제를 던지면 다 쓸 수 있다//그렇게 세상이 시시해져 간다 취하면 보고 싶은 사람이 늘 같다//세상을 잘 아는 것 같다 답이 없어서 철학은 믿음으로 끝이 난다//풀이 나고 있다 바람이 불고 있다 해변에 나가면 참 좋다//사람은 모두 같은 병을 앓고 있다 같은 슬픔과 같은 기쁨을 지나가고 있다//오늘 썼던 시가 오래 전 내가 썼던 시 같을 때가 있다//모르는 사람의 어깨를 만져주고 싶을 때가 그렇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서 모른다//결국, 이라고 쓰고 언어 밖을 빠져나간 새 한 마리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결국」 전문, 시집 『아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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