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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소시집/박정규/동동구리무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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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880회 작성일 18-04-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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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박정규



동동구리무 외 4편


그 시절 겨울은 길고 아팠다. 올망졸망 다리들이 부챗살로 뻗은 아랫목은 배가 불렀지만, 아랫목은 아랫목이 아니었다. 밤이면, 봉창 문풍지 마대자루가 둥둥 북을 쳤다. 아버지는 윗목에서 떨었고, 어머니는 문지방에서 시렸다. 낮이면, 철없던 나는 스케이트 놀이로, 논두렁 쥐불놀이로 하루해를 서산에게 주고 거북등짝 같이 언 손과 바꿔 왔다. 아버지 몰래 부엌에서 따슨물로 만져주던 어머니 손이 더 파랬다. 동동구리무 발라 호호 불어주던 손 아프지 않았다. 손금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리운 그 결. 지갑 속에서 반세기로 함께해온 꿈같은 흑백사진 한 장,
파마머리 동동구리무 바른 봉선화 닮은 젊은 적 고운 어머니, 언제나 웃고 계신다.



폐선


나프탈렌 냄새 배인 창에
어둠이 달빛을 가득 묻힌다.

(삼십년을 교직자로 퇴직한
이 교장은 아직도 팔팔한데)

수선공이 구두굽을 고치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온다.

구두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편린의 속내를 더듬는 것이다.

무릎을 갈라 짠물을 퍼내고
숭숭 뚫린 관절에 달빛을 담으면

만월에 꽃게 걸음일지라도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를

꼭, 한 번만 더
달려보고 싶다.



바다 이야기


파도가 별들을 밀어 올리는 등대횟집
싱싱한 파도를 썰어 넣은 사라에는
돔도 소라도 없다
그녀와의 추억만 여백으로 출렁일 뿐

수평선은 파도가 나란히 누워 사는 집이라고
언젠가 수평선에 함께 살자며
갈매기처럼 날개를 갖고 싶다던 그녀는
가볍게 하늘을 날아 수평선에 먼저가 있는지

파도가 전해주는 안부를 알지 못하는
내 이름 석 자 늑골마다 사무치는 셀레네*
밤마다 달빛 잠든 심해에서 꾸던 꿈을
보물섬* 갯바위에 앉아 하릴없이 풀어 놓고는

무지개에 대하여 묻는다. 무지개는, 왜
갈매기 깃털처럼 오롯이 수평선에 놓여있는지
묻고 싶다. 왜, 그리움은 무거워
훨훨 날아 건널 수는 없는지

   * 달의 여신 (그리스 신화)
   * 경남 남해군의 애칭. 



용문사* 뜰에서 합장하고


죽비를 맞은 듯 피튜니아꽃들이
숨죽여 묵언수행 중인 석불 아래
뙤약볕 햇살이 소신공양하고 있다

석불의 이마에 몽글땀이 피어나는
한여름 절간 마당

팔자타령이 쳐놓은 울타리를 넘나드는
부전나비 한 마리가
팔자의 이쪽과 저쪽을 동시 체험 중이다

산다는 것이 온도계와 같아서
덥고 찬 것이 어찌 부처님 탓이랴,

웃고 우는 것이 팔자타령이라니!
고파 죽겠다 불러 죽겠다
더러버서버거버서서러버서
죽겠다…를 달고 사는

요놈처럼 요량없는 요물에게
부디 부처님의 가피를

   * 경남 남해군 이동면 소재 사찰.



아내의 외출


곤줄박이 시든 하루를 접고
어둠으로 허기를 때우는 시간
곤한 하품에 눈물 찔끔 훔치는
무말랭이 같은 눈물샘을 가진 여자
기념일은 살림에 꾹꾹 쑤셔두고
수년을 농기구로 삭은
가슴에 별이 박힌 장수풍뎅이 닮은 여자
안전화가 헐어 안전하지 않다고
생명보험계약을 거절당하고
한숨이 밭이랑에 고추비닐 씌우듯
스르르 풀어지다가도
장대비 쏟아지면
논고랑에 온몸을 던져 물막이가 되는
신혼여행조차 없었던 여자
두 아들 군대 보내며 갔던 논산과 춘천이
산골 논배미, 갯벌바다가 외출 전부인 여자
큰 아들 생일이라며 1박2일 외출에
텅 빈집.
식탁에는 헛젓가락질만
덩그러니 홀로 밤을 붉힌다.



<시작메모>

비빔밥처럼 섞여 뛰놀던 그리운 그 시절


국지적인 폭우, 치솟는 더위가 지구환경이 휘청거리며 제 갈 길을 잃었다는 증표이다. 
내 고향 남쪽 섬에는 많은 비도 오지 않고 논밭이 심한 갈증으로여전히 목마른 요즘, 동네 바다 선창 부잔교에 홀로 앉아 호수 같은 밤바다에서 낙지잡이에 한창인 작은 배들의 불빛에 눈을 맞추고, 바다바람을 맞는 것이 이 계절 저녁 일과가 되었다.
사람들이 편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몫과 바꾸어 지구환경은 차츰 파괴되고, 이제는 사계절과 24절기도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풍요로움의 가장자리에서 행복과 여유로움을 맛보려는 내 작은 삶조차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면, 금방이라도 밤바다가 나를 덮칠 것만 같은 슬픔이 몰려온다.
의식주가 조금 모자라고 불편하더라도 어릴 적 뛰놀던 산천이 그대로였으면…….
사람들이 주고받는 마음이 풍요로워 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본으로 회귀하려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나, 너, 우리.
추억도 현실도 희망도 모두가 다 마음속에서 푸르게 섞여 뛰노는 삶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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