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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신작시/박효숙/풍장의 습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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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효숙
풍장의 습관
문을 열자
후욱 끼치는 마른 꽃 냄새,
가벼워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아침이다
바람을 껴안은 국화꽃 겹겹의 입술들도
채반에 누워 밤새 고들고들해진 모과도
내일이면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탁자 위의 탱자 몇 개 돌처럼 단단하다
겨울 노가리처럼 굳어진 도라지와
바람이 잘 드는 양지 볕 아래 무말랭이는
피와 살을 아낌없이 내주고 영생을 얻었다
잎 떨군 감나무 위로 하늘 멀어지면
빈가지에 명태 몇 마리 대롱대롱 열리고
일용할 시래기가 뒤꼍에서 습기를 거두던 옛집,
멍석 위엔 곡식들이 맑은 종소리를 내곤 했다
몸이 젖은 말을 흘려보내는 날들,
지금 나는, 바람을 햇볕을 가을 내내 훔치고 있다
긴 여름 몸속에 자리한 습담을 밀어내며
젖은 것들은 모두 빼빼 마른 꽃이 되었다
깜장고무신 동화
어쩌면 좋아요
첫잎 같은 수업은 시작되는데,
수면 밖으로 벗어난 지문 없는 것들이
온 복도에 뒤집어진 채 펄떡거렸어요
하나같이 똑같은 까만 코 청맹과니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어지럽게 날렸어요
곰보 책상도 귀한 요람이었던 시절,
뿌리 없이 흔들리며 버팅기던 나무신장은
눈빛만 얼핏 스쳐도, 까딱 손끝만 닿아도
악동惡童처럼 번번이, 시비를 걸었지요
경계를 허물곤 낄낄거렸어요
정렬된 이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울컥울컥 쏟아져 흩어지던 별자리들과
어지러이 별의 궤도를 따라 돌던 아이들,
별과 별을 따라가며 썼던 그 문장
선생님, 내 신발 좀 찾아줘요
스물 무렵의 연구수업 하던 날이었어요
박효숙_2016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은유의 콩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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