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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미니서사/김혜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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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186회 작성일 17-10-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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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소설가)








푹푹 찌는 날씨에 열이 나는데도 나는 한기를 느꼈다. 긴 여름 대부분의 시간에 뭘 할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거의 매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것도 거의 방바닥에서 뒹굴었다. 어둠은 아침이나 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찾아와 내 곁에 머물렀다. 그러니까 나는 줄곧 밤에 존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꿈을 꾸었다. 꿈은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 절벽 앞에 서 있거나 황량한 벌판을 헤매기 일쑤였다. 신발이나 옷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버스나 택시는 매번 눈앞에서 떠났다.
그런데 조금 전 새를 보았다. 새가 나를 방문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새를 붙잡고 싶었다.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를 향해 끝없이 손짓했다. 나는 그 새가 엄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잔잔하고 자상한 목소리와 입가의 미소. 무엇보다 엄마가 나를 안을 때 엄마의 겨드랑이에 돋아났던 깃털. 엄마는 엄마가 나를 찾아올 방법을 오래도록 생각했고 마침내 그것을 찾은 거였다. 새는 무언가를 나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나 또한 새가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내 유년의 어느 날 나는 혼자 빈 집, 엄밀히 말하면 빈 방을 혼자 지키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봄밤이었는데 어둠이 내린 방안 공기는 차가웠다. 손발이 시릴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빈 방의 적막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견디다 못해 집을 나섰다. 엄마의 채소가게,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장 구석의 좌판을 향해 달려갔다. 가까이서 비명이 들려왔고 익숙한 목소리임을 알았지만 나는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얼마 동안 정신을 잃었다는 거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는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엄청난 일이 나를 지나쳐갔다는 걸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엄마와 나를 갈라놓았다는 것도. 무언가가 내 몸을 짓이겨버렸다. 몸이 들렸다가 다시 젖혀지더니 입안에 찝찔한 것이 흘러들어왔다. 사방에 먼지와 연기가 자욱하고 여기저기 불타고 무너진 흔적들이 보였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난무했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워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을 빠져나와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해진 시야 안으로 주변의 풍경과 사물의 윤곽이 차츰 선명해졌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새 한 마리가 허공을 부유했다.





▶김혜정_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비디오가게 남자」당선. 소설집『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영혼 박물관』. 장편소설 『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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