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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특집/내 시의 처음/안미옥/처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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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74회 작성일 18-04-0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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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내 시의 처음


안미옥 시인



처음 이후


첫 시집이 출간 된 지 3개월이 조금 지났다. 아직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먼 옛날의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등단 이후 5년 동안 쓴 시들을 모았다. 시집에는 총 59편의 시가 담겨 있다. 4부로 나누었는데, 부 구성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떤 방식으로 해도 시집이 단조롭거나 지루하게 읽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4개의 소 시집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부를 나누었다. 제목은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온’은 원고 묶음에 제일 처음 붙였던 가제였다. 그게 최종적인 제목이 될지 그 당시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생각하는 ‘온’의 뜻과 편집자님이 생각하는 ‘온’의 뜻이 전혀 달랐다. 그것을 시집 만드는 과정 중에 알게 되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제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많이 불친절한 제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각 부에 소제목을 달았다. 소제목이 주제는 아니었고, 해당 부에 실린 시들의 구절 중에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잘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골랐다. 여기까지가 첫 시집의 구성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다.

*
시집을 내기 전에 나보다 먼저 시집을 낸 시인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시인은 많이 허무하고 우울했다고 하고, 어떤 시인은 좋고 신났다고 하고, 또 어떤 시인은 한동안 시를 쓸 수 없었다고 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어땠나. 하나의 감정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시각각 마음이 달랐다. 어떨 때는 좋다가도 어떨 때는 우울했다. 지금은 다음 시에 대한 생각들만 하려고 한다. 지나온 언어들에게서 조금은 다른 곳으로 가는 시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시집을 낸 후 힘들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시집을 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조언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은 정말로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 사실을 잊으면, 조금 더 자유롭게 다른 시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 편씩 시를 쓰고 있는 동안은 몰랐다. 내가 어떤 언어들을 쓰고 있고,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을 써보려고 했다. 지금 내게 절박한 것들을 써보려고 했다. 매번 조금씩 달라지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이렇게 쓰는 것도 시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이건 너무 시처럼 보이는 시가 아닐까? 매번 의심하면서 썼다. 확신 없이 썼다. 어떤 시는 손을 덜덜 떨면서 한 문장씩 겨우겨우 썼고, 어떤 시는 한 호흡에 썼다. 저마다 다른 호흡으로, 다른 시간으로, 다른 장소에서 썼는데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인 것을 보니, 내게 시에 대한 어떤 생각들이 있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5년 동안 내가 썼던 시들에 대해 거리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시집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이제 조금 더 다른 것들을 써볼 수 있겠다, 하는 기대감도.

*
지금 첫 시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수 있다. 이미 나에겐 과거의 시간이기 때문에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에 대해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우선 내 시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다. 해설에서도 그 지점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는데, 교정지를 받기 전까지 나는 내가 ‘마음’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많이 쓰고 있는지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감정 상태를 토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가 생각해보면, 감정은 내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이다.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도 감정을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느끼는가, 어떤 마음으로 보는가. 감정을 통해 인식을 확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시를 계속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시간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있다.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시간. 시에서 시간이 직선적 혹은 순환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재되어 있다. 시의 현재는 현재의 시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향도 받고, 미래의 영향도 받는다. 동시적으로 그렇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반영되기 때문인데, 나는 사람이나 사물이 하나의 시간 속에만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현재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혼합되어 있는데, 어떤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현재에 있어도 과거 속에 사는 경우가 있다. 시의 시간 속에 있는 개인, 사물, 공간은 그렇게 인지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시간들을 섞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할 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만 시에 썼다. 내적 논리를 가지고,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 속에서, 첫 문장을 기다리며 썼다. 한 편의 시에선 하나의 태도를 담으려고 했다. 그 태도가 조금 더 새로울 수 없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시의 문장으로 좀 더 새로워지고 싶었다. 쉽지는 않았다. 그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이나 생각들에서 먼저 벗어나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라는 태도는 있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없다. 그건 지향하는 것이 장소나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항상 지금, 이곳이다.
‘나’를 객관화하려고 노력했다.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사유했다. 감정을 증폭시키는 방식을 싫어해서 최대한 간결하고 간소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증폭된 감정의 언어들은 독자에게 그 감정을 강요하게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시의 언어들이 담담하고 담백하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여백을 많이 쓰게 된 것 같다.
‘부재’의 감각은 내가 시를 쓸 때 중요하게 작동하곤 했다. 부재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지를 매번 고민했다. 부재를 받아들이는 것. 부재를 하나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 ‘없는 상태’가 가져올 수많은 감각들. 그런데 그게 슬픔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재하기 때문에 슬픈 건 아니었다. 부재를 감각하게 되는 감정이 슬픔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
시집의 시들에 대해서 전부 다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글에선 여기까지만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한 권으로 묶여 있다고 하더라도, 시는 저마다 각각의 시간 속에, 각각의 얼굴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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