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7호/특집/내시의 처음/이진욱/첫 시집 『눈물을 두고 왔다』의 소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843회 작성일 18-04-06 17:58

본문

특집

내시의 처음


이진욱 시인



첫 시집 『눈물을 두고 왔다』의 소회


시집이 도착했다. 삐뚤삐뚤한 글씨들이 미련스러우면서도 투박한 말투로 고집스럽게 앉아있다. 평생 바다와 흙에 묻혀 살던 아버지와 그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가련한 어머니의 발이 거기 가 닿았다. 가난 아래서 겨우겨우 글을 깨우치며 나는 자랐다. 그래서 내 시의 태반은 고향이고 어머니일 테다.
고향을 모태로 시를 쓰고 싶었다. 쓰면서 매번 되물었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지? 어떤 게 좋은 시인지? 우선 내가 체험했던 것, 보고 느꼈던 걸 쓰고자 했다. 읽는 이에게 따뜻한 울림과 가슴을 치는 눈물 몇 방울을 선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나 시집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다녔다. 가끔 다른 이의 시를 읽은 뒤 따뜻함에 밤을 지새운 적도 많다. 시를 읽다 헉, 하며 뜨거운 가슴을 부여잡고 며칠을 함께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시집을 돌아보면 부끄러워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열심히 썼다고 하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정서나 따스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좋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이렇게 누추하게 살아왔습니다”며 스스로 치부를 드러냈다는 생각에 낯이 뜨겁다.

‘첫 시집 발간에 대한 소회’라는 내용의 청탁을 받았을 때는 책을 낸 지 1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윤전기의 온기나 몰몰 피어오르는 잉크 냄새의 감정도 모두 지나간 후였다. 매일 수십 권의 시집이 쏟아지는 시대에 시집 한 권 낸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막상 소감을 쓰려니 쑥스러운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첫 시집을 냈을 때보다는 등단했을 때, 등단 때보다는 시랄 것도 없이 흉내 낸 허접스러운 글 한두 편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닐 때, 허름한 막걸리 집 구석진 자리에서 선배 시인과 마주 앉아있을 때, 시라고 써간 갱지에 메모와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배우던 습작 때가 더 설레고 뿌듯했다.
백석 시인과 여러 선배시인의 시를 읽고 필사하며 시를 배웠다. 시단의 문지방을 넘은 지 3년이 지나면서 발표한 글이 쌓이고 시집으로 묶으라는 제안을 받았다. 등단 뒤 3년이란 시간은 첫 시집을 출간하기에 다소 이를 수도 있었지만 또 다른 나의 ‘첫’은 도전해야 할 과제처럼 다가왔다.
등단하고도 습작은 계속되었고 어쩌다 선배 시인의 시집선물을 받을 때는 마냥 부러웠다. 면지에 이름 석 자를 적은 뒤 ‘아무개 드림’ 이라고 적힌 걸 받아들었을 때의 부러움으로 지금까지 발밤발밤 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낼 수 있다’란 작은 위안으로 한 행 한 행 일상을 채워갔다. 그것이 보잘것없는 소소한 것일지라도 내 밑바닥과 뒤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만히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시가 내게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별보다는 그리움, 희망보다는 간절함, 낮으면서도 높고, 외로우면서도 다정스럽고, 아프면서도 사랑스럽고, 가난하면서도 고즈넉하고, 슬프면서도 애틋한, 일상적이면서도 낯섦, 그런 구체적이면서 새로운 사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나는 내 시가 조금이라도 튼튼해지길 바랐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낯설고, 새롭지 않으면서도 새롭고, 달콤하지 않으면서도 늘 달콤한 나만의 색깔로 채워나가자고 다짐했다.
시집을 엮기로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망설이고만 있는 내게 시집을 묶어주겠다는 프러포즈가 왔다.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좋은 시들을 골라 세상에 내놓아야지, 그래야지,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 57편을 뽑아 보았다. 원고를 넘긴 뒤 기대와 설렘으로 뒤숭숭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첫’이라는 수식으로 등단 4년 만에 첫 시집 『눈물을 두고 왔다』(시인동네 시인선62)가 태어났다.

막상 시집이 나왔을 때는 평가에 대한 기대로 초조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뿌듯한 마음을 앞서기도 했다. 작은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내 시집을 읽은 선배 시인들과 지인, 동료들은 ‘시대의 변화를 목도한 뒤 세운 비석처럼 고스란히 옮겨 기록하고’ 있다며 평을 해 주었다. ‘일용직 노총각’, ‘연탄가스를 들이', ‘마당 모퉁이에’, ‘쌀독과’, ‘된장독’ 같이 묵은 사물들을 놓치지 않고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로 현실을 감내하며 어두운 현실의 모습을 목격자 역할로 수행했다는 격려를 듣기도 했다. 선배 시인을 부러워했던 내가 그날만큼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누군가는 시들이 순하고 착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자가 읽기에 달콤할 것이라 생각하고 꺼냈던 글에서는 그런 맛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여전히 글에 맛을 넣는 요령이 부족했고 또 달콤함도 부족했다.
첫 시집으로 얻은 칼날과 손잡이. 그렇기에 나는 더 많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시집을 꺼낸 뒤 나 또한 산후통이란 것을 겪어야 했다. 도무지 한 편도 써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는 늪 같은 그 슬럼프에서 어느 정도 헤어난 것 같다. 잠시 동안의 슬럼프지만 나에게는 ‘다시 시작’이라는 원천이 되었다. 시인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시집 두 권만 묶자’라는 꿈이자 희망을 향해 걸어갈 힘이 생긴 것이다. 이번 시집을 뒤틈바리처럼 이루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홀가분하게 갈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 그 반을 이룬 셈이지만 내 안에 있던 것들과 놓쳐버린 것들에 대해 여전히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제 첫 시집을 펼치면 손에서 빠져나간 미꾸라지처럼 생생했던 기분은 저만치 사라졌지만, 팔딱거렸던 느낌을 좀 더 끌어안고 덤덤하게 걷고 싶다.

시는 종이라는 질감에서 느끼는 삶이다. 열목어는 내린천 찬물에서만 산다하지만 수렁 깊은 곳에는 메기가 산다. 나는 그런 물고기가 되고 싶다. 탁한 물에 사는 잉어도 되고 송사리처럼 잔물결도 되고 싶다. 흐릿한 내 눈을 비벼 뜨고 남의 아픈 부분까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갖고 싶다.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을 그려보고 싶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