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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집중조명/박완호/사람나무 ─이길래 작가의 ‘인송人松’ 외2편/자선시/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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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박완호
(신작시)
사람나무 ─이길래 작가의 ‘인송人松’ 외2편
나무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나무에서 빠져나온 사람도 제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나무 밖으로 나오는 사람과 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서로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두 걸음이
둘인 듯 하나인 듯 겹치는 순간, 나무는
사람의 눈을 뜨고 사람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세 개의 다리로 바닥을 짚고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사슴나무처럼,
어딘가를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만 같은
누군가에게로 이미 다가서고 있을 것만 같은
한결같은 마음의 자세를 애써 갈무리하며, 나무는
새로운 종種으로 태어나는 중이다.
청동의 몸에 스민 순도 높은 생명의 넋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상상의 줄기 따라
영원으로 치닫는 나무의 영혼과
나무를 닮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맺어진
그의 나무들.
그 속 깊이 깃들어 있던,
제 그림자를 지운 사람의 정신도
나무의 숨결을 따라 꿈꾸듯
허공 안팎을 눈부시게 일으켜 세우며
온전한 사람나무가 되어간다.
시월
절반 모자란 그늘을 붙들고 늘어진 은행나무의 시간입니다. 진작 노래진 잎들이 초록의 기억을 떨구지 못한 잎들을 재촉합니다. 풀벌레의 연주가 시작될 무렵입니다. 나무에 기대인 사람의 부은 목울대가 공원 모서리처럼 먹먹해집니다. 나는 아직 초록을 건너는 중입니다. 가다 서다를 거듭하는 바퀴가 향하는 곳에 서 있을 누군가에게로 계절이 기울어갑니다. 수많은 잎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반짝이는 순간입니다.
새들도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
거리나 지하철에서 거슬리는 소리 대신 이어폰에 저를 맡기는 사람들. 혼자 나선 늦가을 山行,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빠져나간 이어폰을 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귓가를 건드리는 바람소리, 낙엽 흩어지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들의 울음, 가쁜 숨소리에 섞어 건네는 반가운 인사, 신발에 눌렸던 낙엽 부푸는 소리… 새들도 귀를 활짝 열고 사방에서 울리는 반주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온갖 소리로 꽉 찬 산 하나가 고스란히 내 속에 들어서던 날이었습니다.
(자선근작시)
꽃의 아이 외 1편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운 그녀의
자궁 어디쯤 꽃밭 하나 동그랗게 일구고 싶네.
붉고 노란 꽃들도 좋지만
소복처럼 희디 흰
꽃들을 골라 한쪽에 모아두고
기도하듯 날마다 손길로 어루만지며
엄마, 엄마 하고 나지막이 속삭여야지.
그럼 꽃들은 우쭐, 작은 봉오리를 일으키고는
엄마 눈썹처럼 살짝 흔들리기까지 하면서
나를 가볍게 달래주겠지. 나는
꽃이 낳은 자식.
내 속엔 꽃의 분홍, 꽃의 노랑, 꽃의 빨강
또 꽃의 하양이 한꺼번에 고여 있지.
나는 꽃을 노래하는, 꽃의 아이.
바람 불 때마다 은근슬쩍 춤도 춰 가며
내 속을 흐르는 하얀 꽃의 유전자를 피워내고 있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그녀의 둥근 꽃밭에 피는
어리고 새하얀 꽃이 되고 싶네.
자궁 속 한 점 꽃의 숨결로 맺혔다가
첫 숨 내쉬듯 봉오리를 환하게 열어젖히며
그녀의 첫 기쁨이 되고 싶네. 그녀의
다섯 손가락 가운데 하나,
세상 하나뿐인 그 꽃이 되고 싶네.
― 《시산맥》 2016년 가을호
새를 떠나보내는 저녁 무렵
단 하나의 새를 멀리 날려 보내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나뭇가지가 아리게 떨려오기 전에 새의 무게를 비워내야 합니다.
새가 맘 편히 떠나도록 햇빛그물이 더 성글어질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새가 단숨에 날아오를 수 있게 아직은 가지의 탄력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먼 길 가는 새를 위해 벌레 앉은 이파리 하나쯤 살짝 흔들어도 되겠지요.
텅 빈 자리를 견디려면 새의 그림자까지도 훨훨 날려 보내야 합니다.
가도 가도 아직 날아갈 곳이 남은, 단 하나의 새를 위해 허공의 담장을 허물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매듭으로 새를 묶어두려 하지 말고 남은 한 올의 마음까지 다 풀어내야 합니다.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도록 하나뿐인 이름을 하얗게 지워야 합니다.
단 하나의 새라는, 그 기억마저 온전히 지워내는 순간까지는
나에게로 오는 문을 잠가야만 하는, 지금은 귀먹고 눈멀기 참 좋을 저녁 무렵입니다.
―《미네르바》 2017년 여름호
(시론)
언제나 ‘시적 순간’에 서 있기를 꿈꾼다
얼마 전 한 조각가의 오픈 스튜디오에서 그의 작품을 대상으로 쓴 시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가 청동조각을 재료로 만들어낸 인상 깊은 조각들을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예술 작업이란 어쩌면 한 존재를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의 시 쓰기가 지닌 의미에 대한 사소한 고민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나의 시 쓰기는 한 마디로, ‘내 안의 흔들림’을 새기는 일이다. 첫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을 통해 나는,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무렵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나의 ‘시에 관한 생각’을 한마디로 드러내고자 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프고도 순수했던 그 시절, 나는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무엇인가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로 풀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것을 나는 ‘내 안의 흔들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들은 나처럼 저마다의 흔들림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흔히 쓰는 표현대로 ‘존재의 본질’이라고 불러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테지만, 나는 ‘내 안의 흔들림’과 다른 존재의 ‘흔들림’이 마주치는 찰나, 그 자리에서 시가 태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한 시적 순간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세계를 떠돌며, 나는 내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언제나 시인이기를 꿈꾸었다.
상처는, 시가 태어나기 딱 그만인 곳이다. 세월이 흘러가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어떤 상처의 기억 속엔 언젠가 찬란한 시의 꽃으로 피어날 씨앗이 들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처가 자꾸 늘어가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상처의 난민이라 부를 만한 존재들인 것도 같다. 내 상처의 뿌리는 모성 상실의 체험과 맞닿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성이 지워져 버린 세상 한 가운데 버려진, 감수성이 예민한 열다섯 소년은 저도 모르게 시의 운명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엄마, 하고 속으로 부르면, 나보다 열 살쯤은 어려보이는 한 사람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사십 년 세월동안 주름살 하나 늘지 않은 그녀는 언제나 내 사랑의 목록 첫 머리에 올라와 있다. 그녀는 나의 엄마, 나의 첫 여자, 나의 상처, 말로는 다하지 못할 나의 ‘모든’ 무엇이다.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어머니, 라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떠나보낸다. 만나고 떠나는 것, 그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동시의 사건이다. 누군가를 다 비워낸 어느 순간, 그때가 누군가를 새로 맞이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다. 그 또한 내가 꿈꾸는 시적 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완벽하게 지워낼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나’가 문제인 것이다.
시를 쓰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바깥을 향해 무한정 열려 있는 ‘닫힘=열림’의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나의 시 쓰기 또한 ‘내 안의 흔들림’을 새기는 것에 머물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중일 것이다. 나의 ‘흔들림’과 다른 누군가의 ‘흔들림’이 마주치는 곳에서, 내가 쓴 시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을 시적 감동의 순간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시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여전히 나는, 시적 순간을 찾아 떠도는 시의 난민이다. 섬광처럼 떠올랐던 시상을 한순간에 놓쳐버리고 속수무책으로 백지 위를 서성거리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시의 길은 갈수록 점점 낯설어지고, 거기서 마주치는 존재들은 언제나 나를 조금씩 비껴간다. 정면으로 마주쳤다 싶은 순간 나의 중심에서 멀어져가는 존재들. 그들이 잠시 머물렀던 자리에서 어느 날 문득, 나의 시는 태어날 것이다.
진천, 백곡저수지, 구봉리
―박완호 시인론
김정수 시인
가족이라는 상처를 들여다보다
며칠 전, 박완호 시인을 만났다. 그는 모 문학잡지 가을호에 보냈다면 시 한 편을 보여주었다. 난 시를 읽고는 대뜸 “이제 이런 시 그만 쓰라”는 돌직구를 날렸다(그도 술자리에서 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는지 보지 못했지만 순간적으로 기분이 언짢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오래 만나 오해하지 않는, 견실한 믿음의 사이이기에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사판 목수였던 아버지”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동안 박완호 시에서 많이 봐왔던 “마흔셋에 떠난 엄마나 환갑도 못 채우고 간 아버지”의 사연을 다루고 있었다. 그는 첫 시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흔셋에 돌아가신 엄마와 아내의 무덤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아버지라는 슬픈 가족사에서 너무도 오래 머물러 있다. 그만큼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자살은, 그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가 시인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1991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은 박완호 시인은 등단 8년 만에 발간한 첫 시집 『내 안의 흔들림』에서 여러 편의 시에서 아픈 가족사를 드러냈다. 특히 2부 ‘백곡행’은 시인의 고향 충북 진천에 대한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연옥에 살았”(이하 「아아, 아버지. 개 같은 나의」)고, “누이와 난 갈고리 같은 아버지의 손길을 피해 밤새 벽을 타고 빙빙 돌아야”만 했다. 개의 자식으로 태어나 “정맥이 다 마르도록 아픈 유년기를 보”냈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꿈꾸었지만 삼십 년을 사육당한 내겐 죽음도 멀”다는 진술은 아프기만 하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죽어서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순금의 못을
박아놓았네
텅,
빈,
내 마음에
화살처럼 와 꽂히는
저 무수한
상흔들
─「별」 전문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버지는 자식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시인이 된 아들은 평생 가슴에 못이 박힌 채 살아가고 있다. 술 한 잔 하면서 겨우 풀어놓는 그의 가족사에 동료 시인들은 많이 놀란다. “정말이냐?”고 반문한다. 평소 박완호 시인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천진하게 웃는다. 사람들은 그 웃음 뒤에 감춰진 울음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는 오직 시를 통해서만 아픈 가족사를 풀어놓는다. 밤하늘 별을 보면서도 그는 “화살처럼 와 꽂히는/저 무수한/상흔들”을 본다. “상흔들”은 당연히 시인의 상처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보지 못할 만큼 그의 내상을 깊다.
그래서 그는 흔들렸고, 흔들린다. 첫 시집 자서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세계의 중심에 흔들림이 있음을 보았고, 그 흔들림과 내 안의 흔들림이 만나 이루는 화음을 꿈꾸었다”지만 그는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 “내 안의 흔들림”의 시작은 엄마의 부재다. 너무나 일찍 돌아가신 엄마로 인해 그는 “갑자기 줄 끊긴 방패연처럼 갈팡질팡 흔들”(「백곡행」)리고 만다. 그 흔들림을 잡아주는 것도 엄마다. 엄마는 그에게 시작이면서 끝이다. 그의 고운 심성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고단한 삶을 견디는 법도, 긍정적 삶의 시선도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에 그의 사모곡은 사무친다. 삶이 곤궁할 때마다 그는 백곡저수지 부근에 있는 엄마 무덤을 찾는다.
“生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시의 첫 독자가 되어 주길 바라며, 아내 珉에게 두 번째 시집을 바친다.”
두 번째 시집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자서 말미에 있는 구절이다. 그는 “모성이 사라진 세상의 아픔을 견디기 위해” 시를 쓰지만 “사랑은 중심을 파고들지 못하고 늘 겉만 맴돌고” 있다. 엄마의 부재를 경험한 그는 아내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일 뿐이고, 아내는 아내일 뿐이다. 아내는 결코 엄마가 될 수 없다. 내가 아닌 내 자식의 엄마는 될 수 있다.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그는, 사위가 아니라 아들이다.
부부가 살면서 어찌 좋을 수만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사랑은 지고지순하다. 고등학교 때 만나 결혼했으니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어느 날 문득 네가 나에게/사막을 주”(「단봉낙타의 사랑·1」)고, “낙타로 만들었”지만 그는 아내를 위하여 “날마다 모래언덕”을 걷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임
종
처
럼,
그리운
女
子
─ 「단봉낙타의 사랑·7」 전문
그는 아내가 “내 시의 첫 독자”뿐 아니라 늘 그리워하고 함께 임종하기를 원한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날한시에 죽기를 소원한다. 금방 헤어졌는데 깜박 잠든 꿈에서 만나기도 한다. 함께 있어도 그립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그의 사랑은 갈증 같은 것이다. 그 근원은, 물론 어머니의 부재다. “소멸의 문턱을 넘고 나서야/눈부시게 제 몸을 일으키는/절정의 그리움”(「느티나무 女子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말이다. “한 그리움이 또 하나의 사랑을 집시처럼 거느리고”(「단봉낙타의 사랑·9」) 있는 것이다.
그와 여관에 가고 싶다
“이제 제발 말 좀 놔요.”
몇 년 전, 박완호 시인이 나한테 짜증을 내면서 한 말이다. 난 늘 그를 “완호 씨”라 불렀다. 그건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었는데, 그는 그 호칭에서 거리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와의 첫 만남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햇수로 3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10년 전, 빈터문학회를 같이할 때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도 벌써 이십 년을 훌쩍 넘긴 오래 전의 일이 되었네요. 전역 후 복학을 하고보니 선이와 형을 비롯해서 지금은 평론을 쓰고 있는 정구, 진숙 등은 ‘詩心’이라는 동인을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더군요. 오랫동안 함께하는 시모임에 배가 고팠지만 잔치가 한창인 자리에 새로 끼어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저는 ‘詩心’ 밖의 사람들을 찾아 ‘사람글패’라는 새로운 동인을 만들었지요. 그때 우리는 얼마나 ‘詩人다운’ 사람들이었나요. 누구에게나 넘쳐나던 원고들. 교정의 벤치에서나 술자리에서 서로 화살처럼 주고받던 뜨거운 말들. 흉터를 남기지 않는 상처들이 우리의 정신 마디마디에 새겨지는 시절이었습니다. 경쟁자이면서도 참 좋은 친구들이었던 우리가 딱 한 번 만들었던 행복한 순간인 ‘합동 시낭송회’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에 읽었던 형의 시들을 기억합니다.”
난 편지를 받기만 하고 보내지 않았다. 내가 편지릴레이 마지막 주자였기 때문이다. 대학 선후배로, 동료로, 경쟁자로 쓰다보니 우리의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등단했다. 대학 1년 선배이면서 등단 1년 선배로 만나 지금까지 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시를 못 쓰던 시절, 시라는 끈을 놓지 않도록 끊임없이 곁에서 채찍질해준 사람이 박완호 시인과 이선이 시인이다. 심지어 그는 “형이 시를 쓰니 요즘 내가 더 행복하다”며 환히 웃기도 했다. 난 참 박완호 시인에게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셈이다. 신세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이야기도 하고 넘어가야겠다.
미열인 듯 꽃씨 날린다. 숨죽여 비껴가는 바람결에도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뿌리째 흔들리는 발병의 몹쓸 수족들, 발 딛기엔 너무 먼 바닥이 얇은 고무판처럼 출렁인다. 몇 해만에 만난 지기의 시편 속으로 눈 내린다. 새벽에 내리는 눈은 죽음에 가깝다며 우는 그의 뜨거운 혈관 속으로 한겨울 폭설처럼 시린 통증 서려 마냥 아프다. 시의 행간을 건너는 동안 유월의 나뭇가지는 겨울 복판의 삭정이처럼 막무가내로 말라가고, 마지막 살점마저 뼈로부터 떨어져나가 온통 상사병을 앓고 있다. 문득 길 위에 선 사내 눈 속으로 또 하나의 길이 실타래처럼 풀리네. 누구일까 넋두리처럼 펼치는 말(言語)의 나무들을 눈빛 하나로 뛰어넘어 가슴에 이토록 거친 슬픔의 흔적을 새긴 사람은, 사선을 넘는 병사의 발길처럼 은밀한 데서 난 그대를 만난다. 우리 발길이 마주치는 곳에서 그대가 펼쳐 논 활자가 꽃처럼, 눈처럼 하염없이 날아오르며 옷을 벗고
─「六月 가운데 폭설이 -「삼양동」을 읽고, 정수 兄에게」
위의 시는 박완호 시인이 1998년도에 쓴 시다. 당시 나는 삼양동 연작시를 쓰고 있었다. 그 시편들을 읽고 ‘「삼양동」을 읽고, 정수 兄에게’라는 부제로 나를 위한 시를 썼다. 이 시는 같이 ‘以後’ 동인지와 첫 시집에 수록됐다. 시동인 ‘以後’는 첫 동인지를 내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는 가끔 나에게 “왜 답시를 안 써주냐”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난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래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박완호 시인과는 글발축구단에서 한 달에 한 번 공을 찼고, 시합평을 같이했으므로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출판기념회나 동료 시인이 문학상이라도 타면 우리는 거의 만났다. 그때 만나는 시인들은 “시인 중에 박완호 같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것. 사실 나도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봤다. 그가 몸담고 있는 고등학교에 시강연을 하러 갔을 때 그는 학생들의 대하는 모습이 시인들을 대하는 것과 달랐다. 그는 학생들에게 엄했다. 그 모습이 나에겐 화를 내는 것처럼 비쳤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그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난 17년이 지난 뒤에야 ‘완호에게’라는 부제를 단 시 한 편을 쓸 수 있었다. 제목은 그의 시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많은 시구도 차용했다. 비겁하게 난 “박완호 시인의 시에서 따온 문장들은 굳이 밝히지 않는다”고 시 말미에 적어 넣었다.
아내의 몸속으로 난 길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한 사내를 알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자신의 몸에 아내의 상처가 새겨지고 있다는
낯선 명동거리 같은 사내
상추쌈 밖으로 불쑥 고갤 내민
살아 있는, 어린 빙어의 순한 눈망울을 마주치곤
빙어회조차 먹지 못하는
염소의 선한 눈망울을 닮은 사내
그 사내와 한 사흘 들꽃 여관에 머물고 싶다
햇빛 속으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고
바람숲 타고 오르는 거미 바라보며
한 사흘 밤낮 소주잔 기울이고 싶다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사내가
느티나무 여자에게 배운 첫사랑과 날마다
모래언덕을 걸어야만 하는 단봉낙타의
고단한 사랑과 판도라의 상자를 만지작거린 이야길
풀어 놓으리 마지막 날 어스름이면
사람보다 먼저 술병이 자리에 눕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듯
아내의 산소에서 생애를 마감한 별의
가족사를 힘겹게 풀어 놓으리 세상에는
혼자 감내해야 할 것이 있음을
들꽃 한 잎 한 잎마다 슬픔이 매달려 있음을
술잔에 떨어지는 눈물은 알고 있으리
웃음의 잔에 담긴 눈물은
눈물의 잔에 담긴 웃음보다 깊게 흐리고
사흘 밤낮 시로 통정通情을 나눈 사내와
산문을 나서듯 들꽃 여관을 나서리
─「들꽃 여관에 가고 싶다―완호에게」 전문
“낯선 명동거리 같은 사내”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온 사람을 대상으로 장기자랑을 했는데, 그는 당시 송대관의 <명동 사나이>를 개다리춤을 추면서 불러 부상으로 TV 한 대를 받았다. 나도 여러 차례 볼 기회가 있었는데, 명불허전이다. 그의 또 다른 장기는 허리띠를 풀러 노를 저으며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50대 중반에 이른 이제 그의 공연을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올해는 학교 축제 때 동료 선생들과 밴드를 구성하여 노래를 불렀다. 그는 그 노래를 나에게 sns로 보내왔다. 그는 7080 노래를 멋지게 불렀다.
박완호 시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세 번째 시집을 여는 「빙어회를 먹지 못하는 저녁」일 것이다. 언제인가 웹진 《문장》에서 이 시가 문제로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손에 들고 있는 상추쌈 밖으로/불쑥 고개 내민, 순한 눈망울의/살아 있는,/어린” 빙어를 차마 먹지 못한다는 내용을…. 아마 ‘다음 시에서 시인은 무엇을 먹지 못하는가?’였을 것이다. 참 순진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6월에는 몇몇 시인들이 한 조각가의 작품들을 소재로 시를 쓰고 낭독을 한 적이 있다. 같은 조각가의 작품을 가지고 썼는데, 다들 개성이 넘쳤다. 십인십색 같은 느낌이랄까. 박완호 시인은 「사람나무」라는 제목으로, 내 시가 초라한 느낌이 들 만큼 빼어난 시를 썼다. “나무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나무에서 빠져나온 사람도 제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는 단연 눈길을 끌었다. 아마 그는 “새로운 종種으로 태어나는 중”일지도 모른다.
위 답시에서 고백한 것처럼, 난 사실 박완호 시인과 여관방 하나 잡아 놓고 “사흘 밤낮” 술을 기울이며 시를 이야기하고 싶다. 들꽃 여관이라 했지만 난 수덕사 입구에 있는 수덕 여관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썼다. 난 거기서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새가 맘 편히 떠나도록 햇빛그물이 더 성글어질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새를 떠나보내는 저녁 무렵」) 한다는 데 많은 시에 등장하는 시가 무얼 상징하는지? 정말 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는지? 그는 염소 눈망울 같은 선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 눈시울을 붉힐 것 같다. 난 “빙어회조차 먹지 못하는/염소의 선한 눈망울을 닮은 사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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