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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신작시/이세진/주산지 버드나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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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세진
주산지 버드나무
얼음 속에 부리를 박고 서 있다
연민의 정으로 얼음 위를 걸어 다가가는데
‘움찔’ 미끄러지며
갈비뼈 꺾이는 통증이 머리 끝까지 찌른다
화들짝 뛰쳐나와
먼발치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을 것 같은
버드나무를 바라보다가
봄날을 생각한다
내게도 봄날은 있었다
그러나 한 번 간 봄은 다시 오지 않고
발바닥으로부터 갈비뼈를 타고
냉기와 통증이 스멀스멀 오르고 있다
주산지의 겨울은 유배 풀리듯 물러가고
다시 날이 풀려
저수지 한가운데 버드나무 푸르르겠지만
나는 빙하 같은 찬바람만 맞고 있다.
유기견
어물전 앞에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비루먹은 개 한 마리
비린냄새에 코 박은 채 연신 킁킁대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일순 면도날 같은 긴장감이 스파크처럼 튀더니
곧 패배의 꼬리를 내리고 눈길을 거둔다
삼복이 가까워지자
내장 잃은 어물보다 더 처참하게
부위별로 갈고리에 걸려 매달려 있다
교활한 사람에게 순치되어
한때는 집을 지키고, 장난감이 되어주기도 하더니
변심한 사람들에게 버려져
버려진 그 자리에서 벌써 몇 개월 째
버려진 줄도 모르고
버린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언제 버린 적이 있는가
나는 언제 버림받은 적이 있는가.
이세진_2014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 『저녁 무렵 구두 한 컬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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