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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신작시/최현우/헌팅트로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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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42회 작성일 17-10-2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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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현우





헌팅트로피




그 봄의 도면에는 슬픔의 위치가 없었고


작은 의자 하나 없이 머리통들이 울고 있습니다
공중에서 벽에 이마를 찧을 때마다 가루가 되는
나와 당신
살려달라고 할까요


날씨는 많이 헐거웠습니다
일찍 얼굴만 내민 계절을
다만 꽃의 잘못으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죽은 꽃잎들을 유리병에 담아 가져왔습니다


체온을 더한다고
한 사람이 두 사람보다 뜨거워지는 일은 아닐 텐데
착각에도 내피가 있어
가끔은 떨지 않고 잘 웃었는데


마음에 근육이 붙고 가죽과 뿔이 덮이면
금방이라도 다시 움직일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는데


깨진 병에서 흘러나온 마른 꽃잎들이
바닥에 붙어 부서지면


아주 오래 봅니다
이 모든 운명을 전부 기념한다는 듯이


꽃이 버린 몸통들이 사방을 뚫고 옵니다
나를 자르러 달려서 옵니다






낙원




치료가 시작되었다


원을 만들어 앉아주세요 계급과 잘못과 다툼이 없는 관계를 만들어주세요 거기, 조금 더 좁혀주세요 일그러진 모양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치유의 시간, 양 옆의 형제자매님들과 인사를 나눕시다 화평과 축복과 소망을 초대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가 오늘 나눌 이야기는 하늘에서도 들으실 겁니다 함께하신다 하였으니 원의 중앙은 하늘의 자리, 주관자께서 모두를 듣고 위로하실 겁니다 안녕하세요, 시작합니다


골절된 발목을 모르고 걷지 못하겠다고 하는
팔 없는 사람과
자식의 가출이 적힌 편지를 발견 못하고 삼 년째 자식의 죽음이 아픈
맹인과
술을 먹다가 술에 먹혀 술이 미운
폐암 걸린 골초와
돈이 없어 병이 낫지 못한 아내에게 언제나 미안하고 슬픈
도박중독자와


여러분의 용기에 감사합니다 절실한 고백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기도합시다 걷지 못하는 자의 원인이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떠난 자제의 안식이 부모의 마음에도 안식으로 깃들기를, 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지를, 아내를 향한 헌신과 자책에서 희망과 사랑으로 향하기를, 자 이제 눈을 감고 옆 사람의 손을 잡아봅시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겠습니다


우리의 빈틈없는 원은 하늘을 잘 가두었다
화목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동그라미 속에서
어린 날개들이 돌아다녔다


은혜가 저희의 마음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은혜가 저희의 마음에 살게 될 것입니다


얼굴이 밝아진 자들이 인사를 했다
악수를 나누며 깃털을 닮은 먼지를 털며 나갔다


모두 괜찮아졌으므로
다음 치료시간에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최현우_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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