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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신작시/양진기/헛나이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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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양진기
헛나이테
‘낮술 환영’에 들어선 목포홍탁집
아줌마 연분홍 홍어살을 저미고 있네
아줌마 속살도 한때는 저리 뽀얏을 거야
서비스로 애탕을 내오는 소매를 잡고
손님도 없는데 한 잔 허요
막걸리를 따라주자 넙죽 잘도 마시네
한 잔 들어가자 오래된 술친구처럼
묻지도 않은 딸 자랑에
젊은 시절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네
곰살궂은 친구가 뭔 띠요 누님 같은디
민증 까까?
옥신각신 하다가 민증을 보여주네
또래라고 생각했던 아줌마
일곱 살이나 어렸네
모진 풍파로 뿌리가 몇 번이나 흔들렸을까
근심으로 푸른 잎을 얼마나 떨구었을까
끓던 애탕이 식어 거북등이 되고 있네
오빠들, 또 오셔
활짝 웃자 눈가에 자글한 실금들
번졌다가 사라지는 둥근 나이테
그 여자의 집
오래된 집이 그녀를 불렀다
홀린 듯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당 한 귀퉁이에 핀 쑥부쟁이
수줍게 웃으며 몸을 흔들었다
부엌 위 다락방의 거친 벽면은
먼 옛날 베이고 찔렸던 상처가
아무렇게나 아문 것처럼 우둘투둘하다.
그 여자, 집수리를 한다
오래된 울음이 벽지에 달라붙어 있다
붕대로 상처를 싸매듯
흰 페인트로 조심스럽게 눈물 자국을 지운다
물이 흥건한 부엌 장판
오래된 배관에서 새어나온 녹물을 훔치고
삭은 파이프를 잘라 버린다
이제 그 여자의 바닥은 젖지 않는다
그 여자, 대문에 들국화를 그려 넣는다
가꾸지 않아도 천지에 피어나는 꽃
그녀가 피어나고 있다
양진기_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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