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79호/집중조명/김완하/신작시 꽃 필 때 외 4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36회 작성일 23-01-04 15:27

본문

79호/집중조명/김완하/신작시 꽃 필 때 외 4편


김완하


꽃 필 때 외 4편



꽃이 피고 지는 그 하나도 나사가 조여지고 풀리는 그런 작용과 이치. 지구 반대편에서 나비 하나 작고 여린 날개 들썩일 때 그것은 반대편으로 폭풍이 되어 밀려오는 것.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여린 새싹 한 자락도 실은 해를 돌리고 우주로 나아가는 문턱을 넘는 것. 그러니 꽃잎이 열리는 그 순간은 참으로 곡진한 생의 몸부림이다. 

그 안의 이치는 참으로 고요하고 오묘해서. 세상의 모든 생명은 폭풍의 침묵 속에 싹튼다. 그것은 생명이 간직한 모진 역설이다. 그걸, 일찍 깨어난 새싹이 가늘고 여린 손을 내밀어 가까스로 밀쳐내는 것이다.


* 권성훈 「나사」 찬贊.




나무집



누군가 나무에게 인격을 느끼면 그는 필시 도의 경지에 오른 것. 분명히 자연의 심오한 영역에 닿은 것. 그는 나무가 숨 쉬는 하늘의 넓이를 크게 끌어안고. 나무가 마시는 바다의 흐름을 깊이 간직할 수 있으니. 그 마음 곧 우주의 하늘에 가닿은 것. 우리들 창가에 늘 한 그루 나무가 서 있어 한없이 바튼 우리 삶을 견뎌낸다. 둔한 우리 그를 보지 못하고 일생을 지운다. 그것을 보려 우리 마음을 닦고 눈을 씻으며 들떠 있다. 우리에게 어느 저녁 생의 서늘한 시간 다가와 안길 때. 갈참나무 잎 하나 지상으로 내려 보내 마음 빈자리 쓸어안는다. 그때 가장 빛나는 나무의 어깨. 그 어깨에 기대어 스스로 어깨를 얹어본 이는 알 것이다. 세상은 나무들이 제 중심에 세운 집이라는 것. 그것은 사람과 나무가 하나의 정점으로 응집하는 원이다.


*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면」 찬贊.







고등어 한 마리 프라이팬에 올라와 구워지기까지. 그것은 깊고 너른 바다 헤치며 등 푸른 꿈으로 성장했을 것. 한때는 상어의 공격 피해 수초 사이로 숨었을 것. 더러 죽어간 무리 가운데 살아남았을 것이다. 어느 날 어부의 그물에 걸려 얼음 속에 묻히고. 육지로 올라와 사람들 손에 들려 불 위에 누웠으니. 궁극에 이르러 그는 누릇누릇 익는 순간까지 불길을 받아먹는다. 익혀지며 끝내 비린 생을 비우고 지우니. 그건 파도의 흔적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일. 그런즉, 고등어의 최종착역은 불길 속. 물을 넘어 얼음을 타고 불에 이르러 마침내 바다 속 기억을 깡그리 비워내는 것. 그리고 비로소 한 편의 시로 태어나는 것이다.





꽃의 아침



작고 노오란 오이꽃을 본 적 있다. 여름으로 드는 아침 들길 걸어 갈 때. 이웃집 텃밭에 오이순이 나뭇가지 타고 기어올라 아침 신선한 공기 속으로 여러 개 꽃망울 틔워냈다. 며칠 지나 가보니 그 꽃 떨어지고 없었다. 꽃 진 자리 매우 아프겠다 싶어 다가가 보니. 아, 작고 희미한 흔적 아래 쪼그려 앉아 아주 작은 오이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꽃이 진 상처 속으로 트이는 오솔길을 보고야 만 것이다. 자세히 살피니 그 옆으로 다섯 형제 나란히 사이를 두고 누워 있다. 순간 오이나무는 너무도 당당히 우쭐대며 한 채의 수월한 집이 되어 이슬을 달고 출렁였다. 아침마다 여린 초록으로 새로운 세상을 밀고 올라오는 발그레한 미소. 주변은 온통 샛노란 빛을 쏟아내며 부풀어 오르는 생의 둥지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시론


시를 사랑하는 마음


세계 속의 한국이 위상은 날로 높아가고 있는 반면 세계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헝가리와 자살률에서 세계 1, 2위를 서로 다투고 있다고 한다. 언제나 뉴스로 전해지는 자살과 살인 사건은 우리 한국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정신을 생각해본다. 우리의 불행은 시정신만이 그 대안이라는 판단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 자살률 1위라는 절망 앞에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보다 시정신이 필요하다. 시는 원천적으로 생명과 사랑의 가치를 간직하고 그 의미를 새겨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곧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직결된다. 우리가 시를 사랑하고 시를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에는 자연의 아주 작은 부분도 생명의 한 핵심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시의 출발은 곧 생명사랑으로 이어진다.

시정신은 21세기의 도구적 이성이나 도구적 세계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신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현실에서 다시 생명의 가치를 회복하고 존중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대안이다. 우리 사회가 시정신을 잘 간직하는 한 자살률 1위라는 비극적 현실에서 언제라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정신은 시를 논하기 이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계관으로서의 시정신은 모든 사물을 생명과 사랑의 가치로 바라보고 교감하는 정신이다. 시정신은 인간의 영혼이 메마르지 않게 하며 언제라도 생명과 사랑의 소중함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별 작품에는 다양한 시정신이 담기는 것이고, 시에 담긴 정신이 통합되어 그 시인의 시정신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정신이란 생명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생물에 대해서도 생명 이상의 가치와 정감을 지니고 대하는 자세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생명과 사랑으로 관계 맺으려는 마음이다. 우리가 시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세계에서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어나 생명과 사랑의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점점 더 시를 읽는 일의 중요성이 증가해 가는 추세라 할 수 있다. 지난 1년 사이에도 우리는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런 즉 시가 지난 시간의 아픔을 위로하고 감싸 안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시는 스스로 절제하고 돌아보게 하는 내적 원리와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에 기대어 우리는 삶을 성찰하고 또 새롭게 조정해 간다. 시를 쓰고 읽는 일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다. 그걸 일러 우리 삶의 모럴이나 가치관이라 하며, 나아가서는 세계관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문학은 세계관의 표현이다.(R. 골드만) 시인은 시 속에 거듭되는 표현을 통해 하나의 상징을 만든다. 직유가 은유를 넘어 상징에 닿을 때,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완성할 때, 그것은 관념의 표상을 넘어 세계적 보편성에 닿는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한 세상이다. 심지어 우리 감정과 정서도 디지털화한다. 손으로 터치하면 눈물이 흐르고 손바닥 펴서 스크린으로 밀면 제3의 감정이 분수처럼 솟구칠지 모른다. 이제 우리의 순수 본질은 어떻게 지킬까. 그것은 외로움과 슬픔뿐인지도 모른다. 시는 그 맑고 투명한 슬픔을 안고 솟아올라 푸른빛으로 숨죽이는 저 별의 눈동자다. 외로움과 슬픔은 무엇보다 순수하고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시가 더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인은 하늘에서 별을 찾지 않는다. 어두운 순간 빛나는 별은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별은 이 세상의 진실, 진실은 어둠 속에서 더 진가를 발한다.

2020년은 세계적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아시아를 넘어 미주와 유럽 등 세계 곳곳으로 전염되어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고 있다. 이를 미루어 ‘세계는 하나’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런 의미로 이제 세계는 이념의 대립이나 인종 간 갈등이 아닌, 소통과 협력과 상생이라는 화두 속에 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시 시란 무엇인가 묻는다. 코로나 19의 도전과 함께 그것을 위무하고 감싸고자 하는 문화 예술의 노력. 이처럼 우리는 두 세계의 공조를 이루며 삶을 유지할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그것이 문학과 예술의 태생적 기능인지 모른다.





*김완하 198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집 우물』 등.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