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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집중조명/시평/조해옥/곡진한 생의 발견과 인식의 새로운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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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집중조명/시평/조해옥/곡진한 생의 발견과 인식의 새로운 지평
조해옥
곡진한 생의 발견과 인식의 새로운 지평
1. 작은 생명들이 운행하는 우주
김완하 시인은 삶에 대한 인식을 끊임없이 지속해 오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매개가 되는 소재는 자연 속의 사물들이다. 그의 시 「절정」에서 ‘쇠재두루미’는 ‘히말라야’와 동일시되어 있는데, ‘쇠재두루미’라는 구체적인 자연물은 대자연의 웅혼한 영혼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김완하 시인은 자연 속의 소재들로써 우리 삶을 이끄는 큰 존재와 그 존재와 일체감을 느끼는 시적 자아의 열정을 형상화시켜 왔다. 그러나 시인의 신작시 다섯 편 「꽃 필 때」, 「꽃의 아침」, 「강」, 「나무집」, 「시」를 보면,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신작 시편에서 모든 생명에 내재된 ‘오묘한 이치’를 살피는 데 집중한다. 생명이 지닌 ‘오묘한 이치’는 그 생명들 각자 자율적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규명해 낸 하나의 자연의 이법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자율적인 생명들이 대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우주를 운행한다.
김완하 시인의 신작시를 해석하는데 시적 대상들을 대하는 시인의 시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작 시편에는 자연물에 대한 미시적 접근을 통해 우주적 크기를 지닌 생명의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 잘 나타난다. 한껏 확장된 시적 인식의 지평은 시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을 향해 펼쳐져 있다. 그는 작고 희미한 존재들이 만드는 세상은 비교 대상이 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노래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작은 존재들이 지닌 가치를 발견한 자의 기쁨으로 가득하다. 신작 시편에서 김완하 시인은 생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과정을 시로 형상화시킨다. 그는 ‘불길의 시간과 물길의 시간’(「시」)을 모두 거치고 난 이후에 발화發話된 새로운 시 의식을 보여주며. 「꽃 필 때」와 「꽃의 아침」에서는 작은 생명이 지닌 절대적 가치를 발견한다. 그의 내면은 “온통 샛노란 빛을 쏟아내며 부풀어 오”(「꽃의 아침」)른다.
꽃이 피고 지는 그 하나도 나사가 조여지고 풀리는 그런 작용과 이치. 지구 반대편에서 나비 하나 작고 여린 날개 들썩일 때 그것은 반대편으로 폭풍이 되어 밀려오는 것.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여린 새싹 한 자락도 실은 해를 돌리고 우주로 나아가는 문턱을 넘는 것. 그러니 꽃잎이 열리는 그 순간은 참으로 곡진한 생의 몸부림이다.
그 안의 이치는 참으로 고요하고 오묘해서. 세상의 모든 생명은 폭풍의 침묵 속에 싹튼다. 그것은 생명이 간직한 모진 역설이다. 그걸, 일찍 깨어난 새싹이 가늘고 여린 손을 내밀어 가까스로 밀쳐내는 것이다.
―「꽃 필 때」 전문
위 시에서 운행의 주체와 대상을 분별하는 기준은 외양적 크기와 물리적인 힘의 세기가 아니다. 꽃과 나비와 새싹은 그 크기와 힘으로 다른 사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연약하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식물은 향일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화자는 새싹이 “실은 해를 돌”린다는 것을 인식한다. 여린 새싹이 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큰 존재에 의해 작은 생명들이 운행된다는 상식은 화자의 의식 속에서 전복된다. 이처럼 화자가 자연 현상을 상식과는 정반대로 인식하는 것은 그가 작은 생명들에게서 “곡진한 생의 몸부림”을 발견하고 그것의 본질적인 측면을 이해한 결과이다. “꽃잎이 열리는 그 순간”이 “우주로 나아가는 문턱을 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모진 역설”로 점철되는 삶의 여정을 운명적으로 걸어간다. 이처럼 화자가 미시현미경 같은 눈으로 다른 생명의 탄생을 숨죽이면서 체험하는 시간은 새로운 생의 시작을 갈망하는 그의 의식을 반영한다. 김완하 시인의 시적 화자의 갈망과 그의 의식의 지평은 넓고 높다. 그의 의식은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폭풍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확장되기도 하고, “여린 새싹”이 해를 운행하는 이치를 깨닫는 데까지 확장된다.
작고 노오란 오이꽃을 본 적 있다. 여름으로 드는 아침 들길 걸어 갈 때. 이웃집 텃밭에 오이순이 나뭇가지 타고 기어올라 아침 신선한 공기 속으로 여러 개 꽃망울 틔워냈다. 며칠 지나 가보니 그 꽃 떨어지고 없었다. 꽃 진 자리 매우 아프겠다 싶어 다가가 보니. 아, 작고 희미한 흔적 아래 쪼그려 앉아 아주 작은 오이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꽃이 진 상처 속으로 트이는 오솔길을 보고야 만 것이다. 자세히 살피니 그 옆으로 다섯 형제 나란히 사이를 두고 누워 있다. 순간 오이나무는 너무도 당당히 우쭐대며 한 채의 수월한 집이 되어 이슬을 달고 출렁였다. 아침마다 여린 초록으로 새로운 세상을 밀고 올라오는 발그레한 미소. 주변은 온통 샛노란 빛을 쏟아내며 부풀어 오르는 생의 둥지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꽃의 아침」 전문
위 시의 화자는 작은 오이꽃에게서 생명이 지닌 빛을 발견하고 있다. 시에서 “작고 노오란 오이꽃”, “작고 희미한 흔적”, “아주 작은 오이”처럼 오이에 관련된 수식어로 ‘작은’이라는 관형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이처럼 작고 희미한 존재가 받침대인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 새로운 생명을 피워낼 때, 덩굴식물인 오이는 당당한 ‘오이나무’로 변모한다. “오이나무는 너무도 당당히 우쭐대며 한 채의 수월한 집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품는다. 작은 존재가 당당한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화자의 모습은 모든 생명이 지닌 절대적인 가치를 인식하는 그의 내면을 드러낸다. 김완하 시인은 「꽃의 아침」에서 만물이 지니고 있는 생명은 비교 대상이 없으며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로 빛나는 것임을 노래하고 있다.
2. 감정이 짓는 세상의 기원
김완하 시인의 시 「새벽신문을 펼치며」(「집우물」)에는 어린 화자가 신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처음으로 의식하고 드디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내면의 성장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어린 화자에게 신문은 신문을 읽는 아버지만의 세상을 상징한다. 그것은 글자가 구축한 세상, 체계적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다. 어린 화자가 중학생이 되어 신문을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바깥세상에 독자적으로 진입하였음을 보여준다. 위의 시에서 아버지는 그를 독자적 존재로서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을 이끌어준 존재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김완하 시인의 시적 자아를 바깥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존재라면, 어머니는 그를 내면의 세계로 이끄는 존재이다. 시인의 신작시 「강」에는 화자가 어머니를 통해 슬픔을 자각하고 어머니의 감정에 동일시되어 가는 과정이 잘 형상화 되어 있다.
샛강으로 무심히 발길 닿던 때 있었다. 흐르는 강이 자꾸만 나를 잡아당기는 힘에 이끌려 어느새 당도해 있던 강. 나는 이내 거친 두 발로 강에 들어 자꾸 일렁이며 물위로 다가오던 어머니 얼굴 보았다. 미루나무도 물속으로 서서히 실뿌리 내려 발목에 감기던 기억. 흐르는 강을 따라 잠시도 멈추지 않는 저녁. 석양의 마을에 아이들 뛰는 소리 달려와 내 어깨에 감기던 때. 하루가 까무룩히 기울던 저물녘. 그때 나는 강이 슬픔을 안고 밤새 깊어지며 홀로 흐르는 걸 보았다.
그것은 내가 비롯해온 어머니에게 거슬러 오르는 일. 한밤도 쉬지 않고 나를 감싸 안는 강. 그 안개 긴 터널 안쪽에 컹, 컹 짖으며 몸을 훑고 가는 강물. 날이 저물면 멀리서 다가오던 얼굴. 슬픔은 달빛처럼 강에 풀리고 강물은 달을 품고 있었다.
―「강」 전문
위의 시에서 강은 곧 어머니의 비유로 나타난다. 화자는 강을 보면서 어머니를 기억해 낸다. 강이 왜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기억을 환기시키게 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강의 속성과 화자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은 속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많은 것들을 품고 흐른다. 화자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슬픔을 안고 밤새 깊어지며 홀로 흐르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머니의 슬픔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화자는 알지 못한다. 강물처럼 어머니는 슬픈 속내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다만 어머니의 슬픔이 “어머니에게 거슬러 오르는 일”을 하는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만을 짐작할 뿐이다.
화자가 강에서 떠올리는 어머니의 슬픈 얼굴은 그가 처음으로 타자를 통해서 감정을 인식한 순간의 이미지이다. 어머니는 그에게 슬픔이라는 감정뿐만 아니라,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한 존재이다. 그는 최초의 타자인 어머니로부터 감정이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타자를 사랑하는 방법까지도 배운 것이다. 시가 감정을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라면, 그에게 슬픔이라는 감정과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가르쳐준 어머니는 그에게 시의 기원인 셈이다.
3. 불길과 물길의 시간을 넘어
‘바튼’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김완하 시인은 나무에 비유된 타자에게서 그 힘을 발견한다. 그는 사람의 세상은 자기중심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노래한다. 사람들이 세우고 길들이는 집의 모양이 다르듯 사람들이 스스로 지어가는 세상은 다채롭고 특별하다. 신작시 「나무집」에서 화자는 나무를 통해 사람들이 각기 자신의 삶으로 세상을 이루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나무가 되어 나무가 숨을 쉬는 하늘의 넓이를 아는 경지에, 나무가 마시는 바다의 흐름을 아는 경지에 도달하기를 갈망한다.
누군가 나무에게 인격을 느끼면 그는 필시 도의 경지에 오른 것. 분명히 자연의 심오한 영역에 닿은 것. 그는 나무가 숨 쉬는 하늘의 넓이를 크게 끌어안고. 나무가 마시는 바다의 흐름을 깊이 간직할 수 있으니. 그 마음 곧 우주의 하늘에 가닿은 것. 우리들 창가에 늘 한 그루 나무가 서 있어 한없이 바튼 우리 삶을 견뎌낸다. 둔한 우리 그를 보지 못하고 일생을 지운다. 그것을 보려 우리 마음을 닦고 눈을 씻으며 들떠 있다. 우리에게 어느 저녁 생의 서늘한 시간 다가와 안길 때. 갈참나무 잎 하나 지상으로 내려 보내 마음 빈자리 쓸어안는다. 그때 가장 빛나는 나무의 어깨. 그 어깨에 기대어 스스로 어깨를 얹어본 이는 알 것이다. 세상은 나무들이 제 중심에 세운 집이라는 것. 그것은 사람과 나무가 하나의 정점으로 응집하는 원이다.
―「나무집」 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하늘과 바다를 호흡하는 나무 한 그루를 그의 삶의 수호수守護樹로 세워놓는다. 나무와의 동일시를 통해 그의 의식은 하늘과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친다. 그의 의식이 하늘과 바다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바튼’ 삶을 버티게 하는 자신만의 ‘갈참나무’를 그의 중심에 세워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수호수는 대자연을 넘나들고자 하는 그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갈참나무 같은 이상이 누추한 우리 삶을 버텨내는 힘이라는 깨달음이 「나무집」에 잘 형상화 되어 있다.
고등어 한 마리 프라이팬에 올라와 구워지기까지. 그것은 깊고 너른 바다 헤치며 등 푸른 꿈으로 성장했을 것. 한때는 상어의 공격 피해 수초 사이로 숨었을 것. 더러 죽어간 무리 가운데 살아남았을 것이다. 어느 날 어부의 그물에 걸려 얼음 속에 묻히고. 육지로 올라와 사람들 손에 들려 불 위에 누웠으니. 궁극에 이르러 그는 누릇누릇 익는 순간까지 불길을 받아먹는다. 익혀지며 끝내 비린 생을 비우고 지우니. 그건 파도의 흔적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일. 그런즉, 고등어의 최종착역은 불길 속. 물을 넘어 얼음을 타고 불에 이르러 마침내 바다 속 기억을 깡그리 비워내는 것. 그리고 비로소 한편의 시로 태어나는 것이다.
―「시」 전문
시인은 결코 고정될 수 없는 시의 의미를 독자적으로 발견하고 창조해 낸다. 김완하 시인이 위의 시에서 고등어의 생에 비유하여 시의 의미를 간명하게 노래한다. 그가 밝혀낸 시의 의미는 자신의 생 앞에 운명적으로 놓인 불길의 시간과 물길의 시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발화發話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고의 시간을 다 겪어내야만 비로소 시인에게 발화가 허락되는 것이 시인 것이다.
김완하 시인의 신작 시편에는 생명의 본질적 의미를 체득해 가는 시적 자아가 나타나 있다. 그의 시에서 그려지는 작은 생명들은 대자연의 큰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의 시간을 이끌어간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생명들은 대자연과 우주를 조화롭게 운행한다. 이 같은 시인의 시선과 인식은 어머니라는 최초의 타자를 통해 배우게 된 감정이 지어가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그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생명들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천착을 보여주는 김완하 시인의 신작 시편은 그동안 그가 이끌어온 삶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새롭게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조해옥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학술서 『이상 시의 근대성 연구』, 『개정증보판 이상 산문 연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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