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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특선/서규정/신작시 카페 바그다드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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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특선/서규정/신작시 카페 바그다드 외 4편
서규정
카페 바그다드 외 4편
어떻게 할까, 대체 어디서 만난다지
멜라닌 색소는 밥을 굶고서 그림에 몰두하는
화가에게는 없고
페인트 장수에게만 있어
사막만 같은 문학도의 길을 바꾸어
가업에 따라 한의사가 된
옛 전우의 3층 응접실에서
카페 바그다드를 들었지
이루어질 수 없는 동성 간의 사랑이라니
깊이 듣고 보면 그림자놀이라고 해
더 애잔하고 애틋했을 거야
바그다드 아시지요
땅을 파면 물은커녕 기름이 펄펄
솟아오르던 기름 무지개 위에
낮달은 처렁처렁 떠올랐을까
오로라
오로라 극광은 저도 놀라서 혼절할 듯이
블루 앤 블루
세상 천리간에 별 것을 다 보았다
저기 구름 산을 어서 넘어가자
낙타 등에 채소 과일 등을 실고 가면서
카라얀들은 모두모두 외쳐대지
저 열풍, 할라스 따라
이 버섯같은 生 빨리 걸어 치우고
가고만 싶다
그래 동성끼리의 사랑이라니
죽도록 사랑하다 깨끗이 사라져버려라그래도 물 한 모금은
바가지에 떠 둘이서 박치기
하나는 기절, 또 하나는 그대로 실신
오로라
오로라
이 세상에 다시없는 그림자 둘
극광은 마저 쏟아지며 보라 보라 피보랏빛
넬리멘 시타
예스터 데이
돈 크라이 퍼미 아르헨티나
넷킹콜의 흑인 영가들을 외쳐 부르며
청춘이라는 우여곡절을 다 겪어는 왔다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노래 하나는
넬리멘 시타
사랑과 청춘은 다 떠나도
날 떠나지 않을 님
넬리멘 시타
넬리멘 시타
혼자 부르다 혼절하고 말 젊은 날의 영가
혼곡이란 그런 것 아닌가
첫사랑
넬리멘 시타
넬리멘 시타 넬리멘 시타
스칼렛 오하라
펄벅 대지라는 소설, 농장주의 딸인지
목화 따는 아가씨인 줄 몰라
전화를 했다
광안리 앞바다 근처에 사는 옛날 아가씨에게
것도 몰라
매일 매일 입센롤랑만 찾더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여주인공 것도 모르면서
벌써 시집이 아홉 번째 라니
시집들 다 다치던지
아님 바람 다 거덜나던지
나도 지진 않았다, 목화를 따시던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던지
크로아티아 밥상*·1
어디에나 붙어있는지 알아
크로아티아
축구 하나로 러시아를 재패했다는 것 뿐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맨 처음 무얼 올릴까, 밥상 위엔
눈 속에 꽁꽁 얼어 죽은 사슴새끼를,
새끼 고기를 올리기 전에
애미 사슴들은 기도를 한다지
사랑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정처 없이 흘러가고
죽음은 어디서 탄생하는 것이지
연기들만 꾸역꾸역 몰려들 간다
크로아티아는 연기 공화국인가 몰라
흰 눈은 푹푹 삶아 올려보고 애미는 속으로 울고 있다네
새끼 사슴의 그 눈빛처럼 펼쳐져간 설원에서
설원으로 썰매를 타고 가다
神에게
이다음 세상 무얼 믿고 까부시나요
남들 다 알고 있는 지상의 사람을 관자놀이 파랗고
파랗게 어디까지 밀어 보내시렵니까
썰매는 그때 아이들 샤프펜슬처럼 미끄러져 나가다
뚝 부러지고 만다
히말라야시다 밑등에 딱 걸렸는가 보다
*크로아티아-구 러시아에 붙어있다는 제주도 절반 크기의 섬이라함.
크로아티아 밥상·2
이 눈 나라에선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해
여자들이 들고 일어서면 손바닥만 한 나라도 망해
그래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곰 가죽은 먹을 순 없지
그때 말이야
곰 바닥을 살살 긁으면
곰은 냅다 산중턱으로 뛰어 올라가
산토끼 한 마리를 거뜬히
그렇지 그렇게 산토끼와 뛰어 놀며 살아야 해
꽁꽁 언 눈 속에 소나무 껍질 같은 수액
거품 나다 그친 송진을 쭉쭉 빨아먹으며 한 겨울을 견디는 것이지
이듬해 봄
감자가 나올 때까지 감자 감자 샷
우리 어릴 때 손주먹을 쥐고 장난들을 쳤지
겨울을 견뎌내기 위한 설한 운동이었지, 아리아
*서규정 1991년<경향신문>신춘문예당선. 해양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부산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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