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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백인덕/뼈아픈 근황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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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412회 작성일 23-01-0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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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백인덕/뼈아픈 근황 외 1편 


백인덕


뼈아픈 근황 외 1편



서 있는 내내

번갈아 저리는 다리

두 눈 꾹 감고도

추억 하나에 집중하지 못해

무작정 내린 낯선 

지명의 구도심


지하에도 지상에도 즐비한 곡(哭)소리

자진폐업, 임대문의, 점포정리, 핵폭탄세일의 

반투명 유리벽을 유람하는데

순간 눈길을 확 당기는

붉고 정갈한 서체

-폭망,

서서히 사라지기보다 불타버리는 게 낫다는 듯

요절인 듯

절명인 듯

해 질 무렵 거리에 차가운 불을 뿜는다


저린 다리를 잊고 

찬불에 움츠러들어

폐업 직전의 정신을 곰곰 헤집어본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망각의 기술,

예상표절.

슬픈 눈빛으로 오가는 짐승들 사이

딱딱한 목 뒤에서 

기어이 틀어지는 억센 뼈 하나.





슬픔이 강처럼 흘러



밖으로만 휘는 팔을 가진 이들은

슬프겠다

탈구된 어깨 위에 

먼지 한 톨 올리지 않고도

뼈저리게 애통하니 

울며 밥 먹겠다


슬픔이 강처럼 흘러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것들에겐

또 다른 세상도 열어주길.

꽃 핀 자리마다 가려진

진탕에서 죽었지만 먹먹한 것들,

뼈는 아직 날카롭고 

살은 낭창낭창 흐물거려

검은 미소가 만드는 노란 꽃 갈래


멀쩡하게 뜨고 면상 맞은 눈을 가진 

이들은 슬프겠다.

한쪽을 질끈 감거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훤히 쏘아대는 

레이저가 무성히 줄 긋는 밤에

난독(難讀)과 비문(飛文) 아니어도

자주 접히는 발목으로

울며 똥 쌌겠다.


슬픔이 강처럼 흘러

떠날 사람들에게 길 비워주고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것들에게도

또 한 길 열어주면

야윈 가슴 쓸어 담으며

허연 슬픔 같은 밥을 먹겠네

노란 슬픔 같은 똥을 싸겠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짐작의 우주』.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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