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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박해림/그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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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21회 작성일 23-01-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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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박해림/그늘 외 1편 


박해림


그늘 외 1편



아름드리 느티나무 가지가 베어진 후

나무를 지탱하던 그늘도 사라졌다


수없는 하늘

수많은 구름이

여럿의 천둥 번개가 

느티나무 부근에서 서성거리더니


어느 무덥던 여름날

그늘이었던 자리에서

나뭇가지가 쭉쭉 뻗어 올랐다

잎사귀가 팔랑이며 바람을 간지럼 태우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서 

나뭇가지가 뻗어 오르고

해마다 무성한 잎사귀가 팔랑거리며

서늘한 바람을 불러모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존재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한

그늘도 저 스스로 떠날 수 없었던 거였다





가을이 오고 있다



야트막한 강언덕이 건듯 바람에 남실남실 넘어갈 때


매지구름 놀라 후드득 흩어지고

찔레 덤불 속 반나절을 놀던 박새가 곤두박질할 때

중심을 놓아버린 물풀이 헤실바실 흘러갈 때


오후 내내 물속을 들락날락하던 물닭 한 마리

날개를 부르르 털고서는 앞산이 풀어놓은 액자 속으로 냉큼 날아들 때


팔뚝만 한 붕어들이 제 숨을 삼킨 배를 골똘히 생각할 동안

텅 빈 낚시꾼 바구니를 왕잠자리 뒷다리가 간지럼 태울 동안


가난한 제 이마를 힘껏 쓸어올리는 거룻배 하나

물 위를 떠돌던 시간을 한 됫박 쏟아내고는

나이테를 만들었다, 바람을 짓뭉개다가


허기를 삼킨 저문 강을 저 혼자 다 끌고 갈 때





*박해림 1996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1999년 《대구시조》, 2001년 〈서울신문〉,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9년 《월간문학》 동시 당선, 시집 『오래 골목』 외 다수. 시조집 『못의 시학』 외 다수.  동시집 『간지럼 타는 배』, 시평론집 『한국서정시의 깊이와 지평』. 시조평론집 『우리시대의 시조 우리시대의 서정』. 수주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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