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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양균원/재스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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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양균원/재스민 외 1편
양균원
재스민 외 1편
피고 지고 피는
1년 내내 바지런한 친구다
고맙다 여기고 사진까지 찍어 자랑하였다
첫 자줏빛이 탈색해 가면서
앞섶을 하얗게 열어버리는 꽃
그 몸짓이 살짝 헤픈 여자를 상기시켜서
싫다가 좋다가 미워지다가
그냥 친구지 싶어
시큰하게 삭은 마음을 주었다
좁아터진 화분에
흙을 한 줌 얹어줄 줄은 알았으나
큰 터전에 옮겨줄 줄은 몰랐다
너에게 어울릴 기후와 토양이
어디 딴 세상에 있으랴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래도 잔가지는 밤새 새 잎을 내밀었다
쓸 데 없는 데 힘쓰겠다 싶어
뚝뚝 끊어주었다
부러진 곳에서 희미한 살내가 풍겼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잎들이 누렇게 변해가도
그러다 하나둘 맥없이 떨어져도
저러다 말겠지 했다
올봄 내내 꽃 소식이 없다
근근이 지탱하고 있다는 듯
한 자세로 고요히 서있다
창가 바람 새드는 곳에 옮겨두고
더 이상 네게 꽃을 요구하지 않겠다
이대로 네 곁에 죽 있겠다
중얼거리고 있다
요거트
거꾸로 서있다
냉장고 문짝에 들러붙은
피렌체 베키오 다리
그 곁을 왔다 갔다 하는 눈치더니
주인마님 눈 밖에 난 듯
짧은 목으로
육신을 지탱하고 있다
밖으로 흘리는 땀은 없으나
속에서는 삭은 응유가 고이고 있으리라
저것이 마지막까지 쥔장을 향하는
오체투신의 자세겠지
멋대로 살아서는 곤란하고
사는 대로 살아도 딱하긴 마찬가지고
저 편하자고 드러누워서는
더구나 난감한 일이겠지
아직 남은 체액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발바닥이 된 머리끝에 모아
당신에게 바치리라
옛 어른은 요런 걸
단심丹心이라고 하겠으나
넌 그저 플레인 요거트 혈통에 따라
생의 끝까지 희멀쑥하게
걸쭉할 따름이겠지
*양균원 2004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허공에 줄을 긋다』,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집밥의 왕자』. 연구서 『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 『욕망의 고삐를 늦추다』. 대진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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