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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고은산/금반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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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23회 작성일 23-01-0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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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고은산/금반지 외 1편 


고은산


금반지 외 1편



바람의 꽃이 하얗게 피는 날에

서울의 한복판에 적체된 햇살을

걷어차며 몰리는 군중 어깨들

속으로 너의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와 사별한 아버지의 

사업 부도부터 흩어진 미래의 

화질은 전구알 속 필라멘트가

끊어진 상태를 닮아갔다

 

너의 눈망울 후두둑 흩어져

빌딩 사이로 부랑자의 잔주름으로

떠돌며 오래된 대나무 속의 

공허를 사방에 외친다

 

강냉이알을 삼키며 부푸는 

위벽을 따라 누추한 바지자락이 

미끄러지고 식욕을 상실한 

전분의 형태로 소화의 과정을 

너는 밟고 있다

 

위장 속 용종으로 커가는 삶이 

양성이 아닌 음성으로 판명될 때

비로소 한 운명은 조용히

형광체를 바라본다

 

너의 해진 외투는 겨울이면 

칼바람을 힘겹게 밀어붙이곤 했다

 

하지만, 올 겨울은 여러 번, 꿈속에서

사파이어 빛깔로 둘러싸인 성곽을 따라

너의 입술들이 떠돌았다

그 입술들 미래의 끄나풀을 조금씩 

잡아당겨 태평양 한 해변의 바위 위에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았다

 

꿈결에서 스치는, 바위 위에

침묵으로 키를 키우는 네 언어들의

넝마 속으로 사각사각 높아지는 

긍정의 문맥들,

 

문맥의 형태를 조용히 더듬어보니

아킬레스건 쪽으로 휘도는 

단어들이 힘차게 너의 호흡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메마른 사막 중심의 

파고는 깊고 깊었지만

너의 그 파고는 취약해져 가고

있었다

 

너의 중심축이 옮겨져 가는

이면엔 반야般若의 손목을 가진 

한 여인의 도움으로, 별빛을 잡은 

궁극의 어울림이다

 

너의 신발 뒤축이 아름답게 

마모되어 가는 가을의 계절에

마흔이 넘어 알게 된 연인의

손길은 에머랄드 냄새를 꼭 쥐고,

 

네 연인의 잔잔히 흐르는 숨결은

너를 반듯이 세운다

 

그녀의 금전적 도움으로 애기단풍으로

물든 가을 하늘이 계절을 투과하며

건너가면 전통찻집을 열 것이다

 

누각의 심정을 간파한 가을 하늘이

네 정수리에 살짝살짝 닿는다

 

지금, 서울의 한복판을 벗어난 집 앞,

햇볕이 한 겹씩 축적되고

골목길의 기운이 네 손가락 하나에

금반지를 끼운다





구수한 단백질



역광의 기슭으로 흩어 모이는 깨진 주춧돌 

문양으로 살고 있는 한 사내 발꿈치가

계속 시큰거리고 있다

 

세상의 언저리에 쌓이는 그의 그을린 얼굴의 주름이

높아지고 있다

 

주름의 원조를 이루는 화폐의 색깔이 계속 바래지고

그가 경영하고 있는 순대 국밥집은

먼 심해에서 헤매는 고장난 선박 하나를 매일 숙고한다

 

죔쇠의 힘이 엇박자로 흔들리는 순대 국밥집의

공간에 떨어져 쌓이는 사내의 생활고는

무지개 형태의 재화를 시샘한다

 

노력의 대가는 그의 척추를 더욱 휠 뿐,

 

이번 달, 그는, 순대 국밥집의 흐릿한 영혼을

모두 뽑고 궁리 끝에 높이 펄럭이는 프렌차이즈 낙지음식 전문점으로

성공의 열쇠를 단단히 잠글 시도를 한다

 

색이 흐릿한 신발 속으로 내재된

퀴퀴한 일상의 껍질이 생김새를 바꾸며

새 신발을 신는다

 

올해 낮은 문턱의 대학을 통과한 외동아들의 

미래의 낌새가 쓸쓸하게 그의 음식점을 덮었지만

학기말 장학금으로 마음 속 풋풋한 망고 냄새를 따라

그의 감각을 촘촘하게 위쪽으로 일으켜 세운다

 

낙지음식 전문점의 천장 밑으로 처음 떨어진

지폐들의 어울림은 주름진 이마를 어루만지며

참개별꽃 한 송이 그의 부드러워진

손금 위로 반듯이 얹는다

 

궂은 날씨를 일상으로 여겼던 부인의 치마를 따라

핑크 모습의 등고선이 그려지고,

 

그의 견고한 발바닥에 밟히는

음식점 바닥으로 흐르는 화폐 숨결의 결이 몇 겹으로 

구수한 단백질을 데쳐 입속을 감싼다

 

그의 몸을 휘도는 엔돌핀이  음식점 문을 오가며

손님들의 고른 치열의 미각 속으로 뽀송한 공기가

가득 채워진다





*고은산 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말이 은도금되다』 , 『버팀목의 칸탄도』,  『실존의 정반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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