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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미니서사/김혜정/아무 것도 아닌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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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861회 작성일 17-01-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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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아무 것도 아닌 낙원




“여기 참 아름답지. 저길 봐.”
소녀의 손이 머리 위를 가리켰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잿빛 구름을 머리에 인 채 검게 변해갔다. 뾰족한 이파리들도 바싹바싹 타들어가서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아래쪽도 사정은 비슷했다. 땅거죽의 갈라진 틈새를 따라 잡초들만 메마른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개소리.”
   소녀의 눈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휑했다. 그저 까만 구멍에 불과한 눈이라니.
  “네 눈은 왜 그렇게 됐지?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된 거야?”
  “엊그제 까마귀가 내 눈을 파먹었어.”
   제기랄!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도 내뱉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빨리 여길 떠날 준비해.”
  “여긴 한번 오면 다른 데로 갈 수 없어.”
  “그건 또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나는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갈지에 대해 골몰했다. 사방에 전선을 깔아놓고 응답이 심장으로 와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사흘 낮밤이 지났다.
   우리는 점점 스러져갈 뿐이었다. 그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었다.
  “깜깜해.”
  “밤이니까.”
  “별이 안 보여.”
  “별은 네 마음속에 있는 거야.”
  “배고파.”
  “네 뱃속에 지렁이가 들어 있어서 그래.”
  “지렁이가 새끼를 몇 마리나 낳을까?”
  “다섯 마리. 아니다, 열 마리. 많이 낳아야 배가 부를 테니까.”
  “개소리!”
  “이제 그만 자.”
  “잠이 안 와.”
  “집에 가야지. 엄마가 기다릴 거야.”
  “집에? 정말 갈 수 있을까?”
  “꿈을 꾸면 돼.”
  “네가 있으니까 든든해. 무섭지도 않고.”
  “나도 그래. 빨리 자.”
  “너는 안 자?”
  “너 잠드는 거 보고.”


      머나먼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친 듯 소녀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소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닿아 있기를 바랐다. 이를 테면, 불이 환하게 켜진 방 안이거나 혹은 이제 막 구워낸 빵이 있는 식탁 앞, 혹은 보드게임을 하는 놀이터라거나 그런 곳에 말이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있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약력: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장편소설 『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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