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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특집/제7회 리토피아 문학상/나뭇잎은 나무의 입이다 외 5편/심사평/수상소감/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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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11회 작성일 17-10-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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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제7회 리토피아 문학상




나뭇잎은 나무의 입이다 외 5편

정미소




  해질녘, 2층 방 창문을 두드리는 먹감나무의 두툼한 입술에 귀 기울인다 말하고 싶어 내 창을 기웃거리는 안색이 붉은 나뭇잎, 달싹거리는 잎을 따라 줄기와 몸통에 고인 말들의 문이 문을 두드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랫입술을 도르르 말았다가 펴는 입, 말매미의 울음과 고추잠자리 쉬어간 자국마다 실주름이 진다 빈 감꼭지가 풋풋한 여름으로 차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천둥과 장맛비와 긴 가뭄이 가두었던 먹감나무의 깊은 그늘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고 있다 나무의 입이 무거운 속내를 열고 있다.





느티나무에게



  카페 ‘몽마르트’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은발의 고목에 귀 기울인다 몸 하나로 수직의 하늘을 건너고 있는 우직한 어깨 너머로 오후 네 시의 햇살이 숄을 두른다 티스푼으로 홍차의 티백을 꾹꾹 누르며 봇물 터지는 너의 매무새에 속말을 연다 숨죽인 계절에도 황소바람은 불어와 심장에 네 개의 스턴트를 박고 벼락 맞은 봄 품에 안았던 황조롱이도 일가를 이루어 떠나고 딱 지금이야 죽고 싶어 합병증이 도사리는 뿔테 안경 너머 동공이 출렁거린다 오후 네 시의 몽마르트 긁히고 멍들고 깁스로 이은 쇳조각을 따라 에디뜨삐아프의 젖은 음성이 진통을 몰고 온다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느티나무야.





초승달에게 반하다



  그의 내향성은 후천적이다 천성이 어질고 반듯하여 피붙이의 보살핌을 조석의 낙으로 삼으니 기질이 유순하나 성나면 올가미의 올을 물어내며 생채기를 남긴다 바닥의 바닥을 또각거리며 몸을 옥죄는 세상의 뒷골목 군소리 없이 버틴 하이힐의 저 안쪽 비좁은 숨 막힘이 박리증에 시달린다 울분이 고여 제풀에 사색이 된 엄지발톱 입과 귀를 닫은 채 안으로 안으로 파고든다 피붙이의 허물을 덮으려고 안간힘 쓴 그의 등에서 초승달이 웃는다 각질 더미에서 더는 버틸 수없는 그의 속 소리를 끌어안는다.




춤추는 새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다 코에는 별 모양의 피어싱을 하고 음악이 흐르면 먹기 위해서 춤춘다 황사바람 부는 화성의 야외공연장, 기진한 새를 먹이로 부른다 새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새야 꿈을 꿔 꿈꾸지 않는 것이 너의 문제야  너를 위한 춤을 추어야지 새가 양동이에 담긴 물에 부리를 담근다 새와 함께 춤추는 먼 이국의 공연장. 한낮의 허기를 물로 채운다. 피어싱과 상아목걸이와 귀걸이 장식을 물에 담근다 새와 함께 마시는 한 모금의 땀이다 한 모금의 춤이다 새야, 오늘은 니체의 말을 믿으려고 해. 하루라도 춤추지 않는 날은 굶는 날이지? 새가 퇴화된 날갯죽지를 폈다가 접는다.




단원의 ‘해도’



  게들이 집게발을 꼬물락거린다 바다가 반나절 놀다 간 자리에 개펄이 놀이터다 물풀이 가리키는 물길을 따라 마디와 마디의 촉수가 배밀이를 한다 집게발을 들어 힘겨루기를 한다 뒹굴며 분탕질이다 파도가 잘 마름질한 바위벽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다 게들의 등에서는 바다냄새가 난다 집게발을 내려놓은 순한 잠 속에 파도가 찰랑거린다 뻘밭에 남은 발자국이 볼우물을 짓는다 기저귀 찬 엉덩이가 뒤뚱거린다 세살바기들이 꼬물락거린다.



▶정미소_2011년 《문학과창작》으로 등단. 시집 『구상나무 광배』, 『벼락의 꼬리』.





심사평

- 참신한 존재론적 기획 돋보여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을 찾는 작업일 수도 있다. 이 때의 자신은 오로지 개인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과 사회 속에서 소통하고 이해하고 교감하는 자신을 말한다. 인간의 꿈은 관계 속에서의 꿈이 가장 아름답고 건강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정미소 시인의 시작업은 이에 충실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우선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자신을 세상 속에 던진 상태에서 스스로 구원하는 자세이다. 정미소 시인은 이번 시집, 『벼락의 꼬리』를 통해 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참신한 존재론적 기획이 엿보이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가 앞으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 심사위원은 물론 특히 리토피아 가족들의 기대가 크다./장종권, 백인덕





수상소감

그, 오브제가 말을 걸어 온다




  시인의 마을에 와서 가슴이 넉넉해졌다.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하고, 말허리를 자르지 않는다. 도서관과 친해졌다. 턱없이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나 수영장에 들렀다가 출근한다. 생업인 어린이집의 문을 열면 직장에 가는 워킹맘들의 아가들이 유모차를 타고 온다. 종일 아가들의 건강을 살피고, 먹거리를 챙긴다. 낮잠 드는 길목을 자장가를 부르며 선생님 엄마가 된다. 무릎이며 등을 기어오르는 아가들의 놀이터가 된다. 막노동을 한 것도 아닌데, 해질녘의 몸은 녹초가 된다. 시는 숙제로 남았다가 주말을 끌어당긴다. 주말은 오롯이 책장을 넘기며 시를 쓴다.


  예술이 먼저 존재하는 것일까? 예술가가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예술이 되는 것일까? 마르셸뒤샹의 평범한 일상의 사물에 눈독 들인다. 시시콜콜한 오브제가 말을 걸어 온다. 새로운 말, 낯선 말, 뒤집은 말, 물구나무 세운 말, 말이 다가와서 놀자고 한다. 즐거운 말놀이가 궁색한 현실을 치유하며 ‘괜찮아, 괜찮다’고 위로한다.


  시인의 마을에 와서 연민이 생겼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때 물건을 팔아달라고 하는 잡상인의 보퉁이를 던다. 오체투지하는 장애의 고통을 지나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무 한그루를 키우기 위해 땅이 가슴을 열어주었고, 바람이, 햇살이, 이웃이, 별들이 따스한 눈길을 보내주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이며 사람이, 소중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심사를 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땅의 말을 고르고, 궁글리고, 순화시키며 시작에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으로 듣는다. 평범한 일상의 오브제들에게 따뜻한 연민의 눈으로 말을 걸어보라고 한다. 채찍이며, 사랑이다. 상금으로 먹성 좋은 단독 우편함을 사고 싶다. 악어만한 입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의 벽걸이형 연립세대 닮은 우편함은 혀를 빼문다. 날마다, 주마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시집이며 월간지며 계간지들이 버거운 모양이다. 생업을 핑계로 주말까지 쌓아두었다가 폭식하는 책들이다. 정독하며, 오자나 탈자가 있으면 빨간펜으로 정정하여 읽는다. 부지런한 책들이 나의 우편함으로 날아와 주어서 행복하다.


시인의 마을에서 낮고, 고요하게 흐르기를 바란다./정미소






시적 순간과 형이상학적 순간
― 정미소 작품론





권경아 (문학평론가)




1.
  정미소의 『벼락의 꼬리』는 꿈꾸는 자의 노래가 저음으로 흐르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은발의 고목”(「느티나무에게」)에게 “긁히고 멍들”어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는가 하면 “울음이 갇혀 뿌리를 내린 나무 한 그루”(「염소나무」)가 시인의 허파 속에서 자라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방에는 “유월의 아카시아나무가 자라”(「중환자실」)고 있다. “벽지 속에서 틈만 나면 눈을 반짝”이며 시인을 “유월의 숲속으로 데려갈 궁리”를 하고 있다. “산소호흡기 가늘고 긴 호스를 코에 넣고” 한밤중 “체열이 40도를 오르내릴 때”에도 시인은 “샘물 돌돌 흐르는 유월의 맑은 숲”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유월의 맑은 숲”을 꿈꾸는 자의 노래가 허밍처럼 울려퍼지고 있다.
  “시는 순간적인 형이상학이다”라고 바슐라르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짧은 시작품을 통해서 우주에 대한 하나의 비전과 한 영혼의 비밀, 하나의 존재와 사물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시간을 단순히 따라간다면, 그것은 삶보다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삶을 부동화하고 기쁨과 고통의 변증법을 현장에서 체험할 때에만 삶과 같을 수 있다. 그때 그것은 지극히 분산되고 지극히 분열된 존재가 자신의 통일성을 정복하는 본질적인 동시성의 원리가 된다는 바슐라르의 진술은 의미심장하다. 정미소가 보여주는 삶의 시간은 기쁨과 고통의 변증법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함으로써 시적 순간을 생성해내고 있다. 저음으로 흐르는 삶의 현장에서 “유월의 맑은 숲”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가 허밍처럼 울려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조나단 브로브스키의 작품 ‘노래하는 사람’이 노래를 한다 우 우 영가로 흐르는 화성이 향수병에 시달리는 젖은 발목을 잡는다 허옇게 부르튼 입술, 비어있는 동공이 음계를 타고 내린다 쇳소리를 낸다 황사 들이치는 사월의 목젖을 들여다 본다 고된 노역과 불면에 시달린 자국이다 가늘고 긴 혓바늘이 가시선인장꽃을 피웠다 물방울집을 지었다 향수병에 시달리는 폐부가 가시에 찔린다 바이브레토로 떨린다 두고온 바다, 도란거리는 식탁, 살아도살아도 사막인 타국에서 우우, 노래하는 사람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허밍이 젖은 발목을 감싼다


                                                                                          ―「노래하는 사람」 전문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앞 잔디밭에는 “우 우 영가로 흐르는 화성”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젖은 발목”을 잡는 작품이 있다.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이 어색하게 서있는 것이다. 어설프게 먼 곳을 향해 낮은 저음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슬픔을 토해내며 ‘울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은색의 거대한 인간이 천천히 입을 움직이게 설치되어 있으며 동시에 “우 우”하는 허밍이 들린다. 그야말로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그 노래라는 것이 노래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련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한 그 곡조는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한다. 시인의 “젖은 발목”을 잡는 곡조.
‘노래하는 사람’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비록 슬픔을 토해내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높은 곳을, 그리고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노래하는 사람’의 슬픈 곡조에 발길이 머물지만 시인의 시선은 ‘노래하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다. 비록 “허옇게 부르튼 입술, 비어있는 동공”이라도 그의 음은 “가시선인장꽃”을 피우고 “물방울집”을 지었다. 그는 슬픔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노래하는 사람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시인의 노래는 희망이다. 꿈꾸는 자의 노래이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다 코에는 별 모양의 피어싱을 하고 음악이 흐르면 먹기 위해서 춤춘다 황사바람 부는 화성의 야외공연장, 기진한 새를 먹이로 부른다 새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새야 꿈을 꿔 꿈꾸지 않는 것이 너의 문제야 너를 위한 춤을 추어야지 새가 양동이에 담긴 물에 부리를 담근다 새와 함께 춤추는 먼 이국의 공연장. 한낮의 허기를 물로 채운다. 피어싱과 상아목걸이와 귀걸이장식을 물에 담근다 새와 함께 마시는 한 모금의 땀이다 한 모금의 춤이다 새야, 오늘은 니체의 말을 믿으려고 해. 하루라도 춤추지 않는 날은 굶는 날이지? 새가 퇴화된 날갯죽지를 폈다가 접는다.
                                                                                           ―「춤추는 새」 전문


  이 시에서 “춤추는 새”는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이다. 황사바람이 부는 야외공연장 사이를 오가며 기진한 새가 춤을 추듯 푸드득 거린다. 새이지만 날지 못하는 새. 그것은 이미 새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이 새가 새가 되지 못하는 것은 날지 못해서가 아니다. “꿈꾸지 않는 것” 그것이 새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먹이를 위한 춤이 아닌 “자신을 위한 춤”을 추어야 새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날지 못하는 새를 보며 꿈을 꾸고 싶은, 날고 싶은 자신을 떠올린다. “새가 퇴화된 날갯죽지를 폈다가 접는” 모습을 보며 “퇴화된 날갯죽지”를 펴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춤을 추고 있다.


피아니스트인 그녀가 유방암에 걸렸다
암과 함께 사십년을 부유하던 그녀의 음표들이
건반을 잃고 마호가니의 숲속으로 사라졌다
절망의 나락에서 핀셋의 위력은 메트로롬보다 정교했다
다시 건반을 춤출 수 있게 된 그녀가 독주회를 열었다
오랜 투약과 마취에서 깨어난 라흐마니노프와 슈만이
오선의 경계를 넘어
알레그로 비바체로 라르고로 종달새의 날개를 달았다
그녀가 소등 속에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할 때
청중은 울었다.


                                                                                                        ―「열정」 전문


  암에 걸린 피아니스트는 날고 있다. 암과 함께 사십년을 부유하며 “절망의 나락”에서 고통받지만 그녀는 춤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투약과 마취에서 깨어난” 그녀는 “오선의 경계”를 넘어 “다시 건반을 춤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레그로 비바체”로 “라르고”로 “종달새의 날개”를 달고 다시 날고 있다. 그녀의 비상이 청중들을 감동시켰음은 물론이다.


3.


지하철 환승역 광고 카피,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입니까?
 
이리저리 떠밀리며 레일과 레일을 갈아가며 타인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 굵기가 서로 다른 퍼머 롯트로 웨이브를 만다 샴푸실에서 번개반점 우동을 스트레이트퍼머 웨이브로 구겨 넣는 삶


어제와 오늘의 컷이 만성 하지정맥에 시달릴 때 역사로 들어서는 희망행 지하철


묘비명에 골몰한다 독한 퍼머액에 중화된 손금이 우직하다 코팅제로 희미해진 지문이 꽃으로 피어 웃는다


묘비명을 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행 지하철을 기다린다.


                                                                                     ―「비명碑銘」 전문


  지하철 환승역 광고판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문구를 보며 시인은 자신을 돌아본다. “이리저리 떠밀리며 레일과 레일을 갈아”가는 삶. 복잡한 “어제와 오늘”이 구겨져 한데 뒤엉켜있는 삶. 묘비명에 골몰하던 시인이 정한 묘비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희망이다. 어지러운 삶 속에서도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희망이라는 것.


내 방에는 유월의 아카시아나무가 자라요
아카시아 나무는 벽지 속에서
틈만 나면 눈을 반짝거려요
나를 유월의 숲속으로 데려갈 궁리를 해요
내 방에서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는
숲속의 친구가 그립다고 해요
햇빛과 날다람쥐, 조롱박새에게 돌아가고 싶어 해요
아카시아나무는
내가 산소호흡기 가늘고 긴 호스를 코에 넣고 있을 때
한밤중, 체열이 40도를 오르내릴 때
잠자코 기다렸다가
샘물 돌돌 흐르는 유월의 맑은 숲을
나에게 주고 싶어 해요
가자, 어서 가자 손을 이끌어요.


                                                                                                   ―「중환자실」 전문


  시인의 방에는 “유월의 아카시아나무”가 자라고 있다. 벽지에 머물지 않고 틈만 나면 눈을 반짝거리며 시인을 “유월의 숲속”으로 데려갈 궁리를 하는 아카시아나무는 숲속의 친구가 그립다. “햇빛과 날다람쥐, 조롱박새”가 그리운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는 시인은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벽지와 다르지 않다. 벽지 속의 아카시아나무는 벽지 속의 시인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어서 가자 손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샘물 돌돌 흐르는 “유월의 맑은 숲”으로 시인은 날아가고 있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긍정의 세계를 향하고 있는 시인의 세계관이 투영된 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월의 맑은 숲”을 꿈꾸는 자의 노래.
  바슐라르는 본질적으로 시적인 순간은 두 대립적인 것들의 조화로운 관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대되는 것들이 양면성으로 축약되어 나타나는 것. 그렇게 시적인 순간이 나타난다. 시적인 순간은 어떤 양면성에 대한 의식이다. 정미소는 자신이 지닌 절망과 희망이라는 대립적인 것들의 두 항을 한순간에 체험함으로써 대립적인 것들을 서로 뒤바꿀 수 있는 지점들에서 시적 순간들을 발견하고 있다. 저음으로 흐르는 삶의 현장에서 “유월의 맑은 숲”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권경아_2003년 《시와 세계》로 평론 등단.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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