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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소시집/김보숙/사육사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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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71회 작성일 17-10-1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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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김보숙




사육사 외 4편



생일이 지났다. 생리대가 없을 땐 신문지를 오려 팬티에 깔곤 했는데 뒤에 피 묻었어! 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뉴스를 믿지 않았다. 성기에서는 잉크 냄새가 났고 신문지에서는 생리 냄새가 났다. 피 묻은 체육복 냄새를 맡느라 큰 아버지가 정신없을 때 면 큰 어머니는 머리에 대야를 씌워 놓고 저녁밥을 지었다. 우리 아드님들 포크를 들고 뛰어다니다 넘어지면 다쳐요, 차례를 지키셔야죠! 누구의 포크인지도 모르고 찔렸다. 성기를 씻으면 나오는 구정물. 네 엄마를 닮아 예쁘구나! 미친 큰 아버지는 생일이면 좋다고 시를 지어서 낭송하였다.





제일병원



다발성 구토 장애 진단을 받은 건 임신 때의 일이다. 같은 병실에 있는 베리카는 롯데월드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러시아 무용수였는데 그녀는 입덧엔 국경이 없다며 내게 아침마다 하이파이브를 했다. 베리카! 난 아기를 떼고 위 내시경을 받을까 해요. 이건 아무래도 위암 같아요. 매일 같이 나는 변기 안에서 오줌 대신 담즙을 봐요. 담즙은 갈색, 갈색은 낙엽, 낙엽은 떨어져. 엄만 지금도 내가 가위에 눌리면 베게 대신 성경책을 베어줘요. 난 가위보다 성경이 더 무서운데 말이죠. 찢었죠. 창세기부터 찢어서 씹어 먹었어요. 창세기를 떼고 나니 똘똘이가 보고 싶군요. 손 하면 걸레를 가져오는 똘똘이는 걸레 하면 내 입술에 뽀뽀를 하는 귀여운 녀석인데 말이죠.




마이보라



언제 하자고 할지 몰라 마이보라를 못 끊는 나는 새한약국 아저씨가 서비스로 주는 박카스를 마시며 생각한다. 애인이 시에 써달라고 하던 박카스에 관한 농담을. 나는 박았스 너는 박혔스 시는 그러면 안되니? 직장제거 수술을 받고 네가 달고 온 인공항문을 닦기 위해 우리는 라일락 모텔에 들어갔다. 배변 주머니라는 말이 아름다워! 인공항문을 닦다 말고 불현듯 키스하는 나에게 하고 싶니 말하고 너는 울었다. 너의 항문을 닦아줄 수 있어 좋아! 우울증 치료제를 다정하게 나눠 먹은 우리는 박카스에 관한 농담을 시작했고 천박한 농담이 있어 오후는 무사히 지나갔다.




메트로니다졸




오늘 아침에는 쌀을 팔았습니다.
통조림 몇 개도 사려 하다가
돼지고기를 한 근 끊었지요.
통조림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관을 여는 일이 조금 지겨워졌을 뿐.
며칠 전 통조림 속에 들어있던
말 못할 부위를 먹은 이후로
나는 말 못할 부위가 조금씩 가려운 중이예요.
말 못할 부위를 맘껏 긁고 싶은데
부엌에서 말 못할 부위를 긁으면 죄가 될까요.
말 못할 부위를 긁은 손으로
당신의 식사를 준비하면 그것도 죄가 될까요.
돼지고기 핏물을 빼다가
말 못할 부위를 긁다가
쌀을 씻다가
말 못할 부위의 피를 닦다가
그만 손톱이 빠져 버렸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당신의 숟가락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죄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숟가락으로 말 못할 부위를 긁고 싶어요.







빨래엔 피죤



딸의 안부가 궁금하여 너의 이름을 딸이라 지어주고 딸이라 부르지 말아 달라는 너의 부탁을 들어주어 다시 따리라 이름 지어주니 딸보다는 따리라고 불러주는 것이 좋다며 너는 딸처럼 웃었다. 파도를 만지면 딸을 만지는 것 같아! 바다에 빠졌다 나온 날엔 너는 하루 종일 만져달라고 칭얼대었다. 너의 따리 되어서 행복해! 마를 때까지 빨아줘. 빨래엔 피존을 넣지 않아 옷에서는 냄새가 나는데 나는 딸의 안부가 궁금하여 너를 계속 바다에 빠트렸다. 빨아줘 빨아줘 빨아달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어 너는 다시 빠라줘라 말했고 그러고 보니 빨아줘 보다는 빠라줘라고 하는 것이 좋다며 나는 따리처럼 웃었다.






시작메모




나는 온갖 도덕적이지 않은 일을 일삼다가 시를 쓸 때면 기내식 스프를 먹는 부유한 사람처럼 조용히 자리에 앉아 내가 한 것을 네가 한 것처럼 적는다. 너는 나의 출처이다.









▶김보숙_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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