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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소시집/김다솜/살다가, 살다가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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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김다솜
살다가, 살다가
사랑할 사랑도 용서할 용서도 없는 저녁
호박범벅을 먹으며 불후의 명곡을 듣는다
‘살다가’를 노래하다 먹구름이 된 가수의 친구가 나와서
‘살다가’를 열창해 첫 무대 첫 우승하는 영광을 안는다
사랑, 사랑하다가 사라진 푸른 오로라 있었지
용서, 용서하다가 사라진 회오리바람 있었지
다이아몬드의 슬픔, 기쁨이 당신의 생이자 나의 생
누굴 사랑하고 누굴 용서하다 떠나야 진정 행복일까
살다보니 어디까지나 당신은 당신이고
살다보니 어디까지나 나는 나였다는 것
어둠과 빛, 빛과 어둠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벽에 걸린 철물점, 주유소, 병원, 약국, 식당, 은행들
흙이 좋아서
고구마와 감자를 심고, 심고 보니
흙이 좋아서 호박을 심고, 파란 박을 심었다
풀을 뽑고 이랑고랑 만들어 콩, 콩을 심었다
간신히 고개를 들 때 새들이 날아와서
똑, 똑, 하다 감나무, 오디나무로 날아갔다
콩이랑 옆을 보니 흙이 좋아서 풀을 뽑고
방울토마토를 심고, 가지와 대파를 심었다
가지 옆에 흙이 좋아서 참깨와 들깨도 심었다
참깨 옆에 가을배추 심으려 풀을 뽑고
이랑을 만들어 흙이 좋아서, 흙이 좋아서
콩 대가리 꺾어 놓는 새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캭~캭, 삐~삐, 꾸우꾹, 호로로…
흙이 좋아서 쉼 없이 노래하는 새들은
고개든 콩 꺾어 놓고 발자국 소리에
나뭇가지와 전봇대 위로 날아가고, 날아가고.
풋감의 한恨
멍하니 하늘 보다가
한 순간 툭, 떨어졌지
언덕마다 골목마다 탁구공 만한 내가 축구공으로 보이는 가 동네 개구쟁이들 축구하듯 했지 산책하는 그림자마저 이리 툭, 저리 툭, 차고 지나갔지 후진하는 자동차 바퀴에 콩죽처럼 되었고, 자전거 바퀴에 밟혀 호떡처럼 되기도 했지 내가 무슨 장난감인가 동네 강아지들까지 툭, 툭,
사실 까치가 주둥이로 쪼아도 턱걸이 하듯 끝가지 매달렸다가 까치밥 되는 그의 꿈, 꿈도 많은데 장마철 소낙비에 떨어지는 꿈, 개미와 달팽이도 외면하는 그를 소금단지 넣어 삭혀 먹기도 했지 하지만 모자와 스카프, 헌 옷 새것처럼 해주는 천연염색이지 한때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왕관이기도 했지
명절이며 생일날 또는
감사의 선물 되고 싶었지
태양의 꿈
허겁지겁 보리밥 먹던 그는 아기,
아기는 서투른 숟가락으로 꿈꾸었습니다
어느 날 둥글게 자란 아기는
바다를 건너는 바람 되었습니다
먼 이국 빌딩 숲에서 절반의 生을 보낸
그곳이 그의 고향입니다
숟가락 탓하지 않고 푸둥새 먹이고 입히느라
검은 뿌리 뿌리마다 서리 내렸습니다
서해 갯벌 빈곤의 가방 던져버리고
끝없이 꿈 찾아 떠도는 역마살입니다
잊으려 해도 생각나는 그리움 삭히려
오늘도 초승달 하고 앉아 한 잔 합니다
그 옛날 서투른 숟가락을 기다리는
나는 개밥바라기입니다.
땅
논밭 있는 친구가 땅을 샀다며 자랑을 해요
포클레인으로 언덕을 넓게 밀어 감나무를 심더니
그 아래 들깨, 참깨, 고추, 고구마, 감자를 심었어요
친구가 땅을 사니 나도 넓은 땅을 사서
황토집 짓고 개와 오리 키우며 살고 싶어서
부동산이며 교차로 지면을 찾아 다녔어요
집은 없고 돌무더기만 있는 집터, 이왕기과 트렉트 들어가기 좁은 길이 있는 논, 생각보다 비싸거나 산 넘어 산 뒤에 있는 땅, 평수와 가격이 안 맞아 여기저기 다니는데 무얼 해도 좋을 평수와 흙을 만났어요
근데요. 부부무덤처럼 보이는 그 무덤 없었더라면 벌써 그 아래 과수원집에서 아님 부동산에서 사놓든지 그 위에 문중산에서 샀겠지요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면서 자꾸 그 무덤을 바라보았어요
내 땅, 산, 강, 들, 밭, 바다 없어도
송이능이 온갖 약초로 살아가는 사람들 많지요
네 땅, 내 땅 노래하다 가는 파란종이 문서들
시작메모
어제는 겨울이고 오늘은 봄이다
하루가 변덕인가 마음이 변덕인가
언제 추웠냐는 듯 문턱까지 온 봄, 봄
햇살이든 바람이든 구름이든 사랑이든
쓰면 쓴 대로 달면 단 대로 마셔야 할 봄, 봄
쉿, 꽃샘추위가 저 멀리서 오고 있다며
푸른 나뭇가지들이 살랑, 살랑
▶김다솜_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나를 두고 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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