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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신작시/이순현/저쪽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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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456회 작성일 17-10-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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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순현





저쪽




여기로 와서 우는 저쪽


아무도 받지 않는다


칼을 물고 잠든 칼집이거나
맨땅에 부어놓은 물이거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정의 극지


한 사람이 고통 받아도
지축은 휘청거린다 


덫에 걸린 부위를 물어뜯어서라도
자유가 되고 마는 짐승들의 서식지


여기로 와서
울고 또 울리는 저쪽


경로를 벗어난 시간이
다른 몸을 찾아 배회한다


누구의 고통도
혼자 독점할 수는 없다


저쪽이 와서 우는 여기


흰 국화꽃이 시들고
횡단보도가 새롭게 그어졌다






속표지를 열면



1.
어김없이 도착한다
다섯 시,


청소기 코드를 꽂는데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허벌판에 주저앉은 듯
숨막히도록 울부짖는 소리


해가 막 다음 생을 시작하려는
먼 데서 들려온다


귀를 기울이면 사라져버리는
누군가 그 누군가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


고름투성이 피투성이
가을 무 닦듯 말끔하게 씻어줄 수도 없고
끊어진 울음을 이어받듯
손끝에서 줄줄줄 검은 줄이 풀려나온다


2.
사자가 막 잡은 먹잇감을 넘보며 하이에나들이 몰려든다 누런 털 사이에 끼인 햇살에 굶주린 가죽과 뼈의 구릉이 적나라하다 적의를 내뿜으며 울부짖으며 팽팽한 동심원을 조여간다 건기 막바지의 초원 저 멀리 땅끝이 황금빛으로 부푸는 세렝게티, 다섯 시를 벗어나려는 찰나 탄탄하던 동심원이 산산조각난다 사냥감을 팽개치며 사자가 달아나고 하이에나가 떼를 지어 뷰파인더를 차지한다 정곡이 이동한다 다음 시간에 계속이라는 자막 너머로 다음 프로그램의 얇은 영상들이 덮어나간다 원근이 없는 굶주림도 열기도 고집스런 다섯 시도 남김없이 덮어나간다   
 
3.
오랜 단식으로 말끔하게 비워낸 속에
가솔린을 배부르도록 들이마시는 사람들  
입은 옷에도 흥건하게 들이붓는 사람들


불을 댕긴다


목탁인 듯 이미
생의 안팎이 텅 빈 사람들


광장에서 분신하는 티베트 사람들


남김없이 자기를 쏟아 붓는다
환장할 화염 화엄


이 예토의 허허벌판
불을 보듯 빤하다  


4.
물방울 하나 떨어졌다


정각
다섯 시,


밑에 괸 메아리가
정곡을 들이민다


수면을 튕겨 올라
동굴을 때리는 동심원


다섯 시
정각의 틈을 벌리며
다섯 시가 떠나가고


다섯 시가 빠져나간 다음
올 수도 아니 올 수도 있다
다른 기적 다른 메아리 





이순현_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내 몸이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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