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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신작시/정선호/자전거 타는 공원의 휴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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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정선호
자전거 타는 공원의 휴일
바기오시 라이트공원*에서 자전거를 탔다
해발 천오백 미터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공중부양하는 것과 같은데
휴일에 어른과 아이들은 여유롭게 페달을 밟았다
한국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아 온 중년이 있다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자전거로 통학했으며
고교시절엔 아침마다 신문을 싣고 페달을 돌렸다
대학 시절엔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기도 했으며
자식을 낳아 자전거 타는 요령 알려줬다
평생 자전거를 가슴에 품고 쉼 없이 달려와
이국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간에
자전거 바퀴는 공원의 햇살과 꽃향기들 감았다
앞바퀴에 한국에서 지냈던 시간이 감겼고
뒷바퀴엔 필리핀에서의 낯선 시간이 감겼다
*필리핀 루손섬 북부 바기오시에 있음.
벚꽃 핀 거리를 달리다
수만 마리 물고기가 거리를 헤엄쳐 다니네요
벚꽃 잎 바람에 흩날려 거리의 자동차에 얹히자
자동차들 모두 물고기로 변한 것이지요
도시는 온통 비린내 가득하고 용감한 주부 몇은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 저녁을 준비하네요
그녀들은 회를 뜨거나 매운탕, 찜을 만들어
푸짐하게 차려 가족에게 봄을 먹였어요
폐차장엔 수많은 목어가 바람에 흔들렸고
수많은 절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했지요
절에서 승려들 봄 햇살 맞으며 묵언 수행하고
주인은 물고기의 간이며 허파들 떼어내
다른 물고기에게 이식하기도 하고
바닷물 속에 넣기도 했지요
바다와 강이며 저수지 주위의 벚나무에도
수만의 물고기가 매달려 목어처럼 흔들렸지요
비린내가 온 세상 거리에 가득하고
종소리는 온 대지의 생명을 깨웠지요
벚꽃 핀 초봄의 강산은 피안의 세계가 되었네요
정선호_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세온도를 그리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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