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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신작시/김기화/행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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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기화
행주
날마다 남의 일을 훔치는 일
누군가의 족적을 닦으며 젖어드는 일
마른 생이 촉촉하게 살아나는 일이야
젖은 몸 툭툭 내다널면 그 뿐
한 겹 네모로 곧게 일어서는 일이지
푹푹 행주를 삶아대던 엄마를 닮아가고 있어
삶의 엉덩이만 쓸고 닦다가
국화꽃 하얀 얼굴로 돌아온 당신
비로소 내 몸을 부리고 있네
매운 손맛의 붉은 얼룩을 따라
뚝뚝 육신을 짜내야만 했던 세월
시린 손 끝 마를 새 없이
엄마의 마지막 지문을 지우던 날
햇살 아래 얼굴 한 조각 해쓱하게 걸렸네
잠시 눈부셨던 엄마의 대륙이지
한 지붕 한 이불 속을 빠져나간
당신은 하늘에 살고
나는 붉은 노을로 지고
마디마디 손길 닿은 곳마다
두고 간 일감이 비늘로 쌓이고 있어
주무시나요?
네모난 액자 너머로 더 이상 늙지 않는
내 엄마를 훔치는 일
겉가지
싹둑, 분명 전지를 했는데
뭉뚱그려진 무덤에서 싹이 나왔다
아뿔사!
뚜껑이 없는 저 물무덤은
곁가지로 난 시퍼런 새살이었던가
물색의 모근에 매달려 있다
관절마다 부어 오른 목구멍들은
동일한 밥을 먹은 혈통의 전각들이다
삐죽삐죽 어미의 배를 트고 나온 것이다
어미는 그들이 떠난 방향으로
공명의 귀를 내려놓고
바리바리 수액의 물관을 열어둔 채 잠든다
끄응 끙 혼몽 속에 게워낸 밤
물젖은 몸틀임에 옹이가 가렵다
하루종일 가지를 쳐낸 과수원에서
피묻은 가위 소리 창문을 서성이고
퉁퉁 부은 사지에 살이 오른다
밤새 수액을 실어 나르다
울멍울멍 물관을 열어 둔 어미는
돌아누우며 목울음의 배를 튼다지
**약력:2010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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