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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신작시/김서하/유보의 무렵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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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서하
유보의 무렵
3월의 게시판엔 남아있는 포스트잇이 많다
친구의 입사 문자가 카톡카톡 날아오는 날이면
뭇매 같은 소나기를 맞고 싶었다
등록금은 늘 최저임금을 따돌렸고
서너 개의 문文은 한 개의 문門을 열지 못했다
카푸치노 한 잔도 못사는 한 시간의 시급은
식은 믹스커피처럼 금세 바닥났고
6년 째 떼어내지 못한 졸업증서를 보며
친구와 연애를 꺼버린 채 모로 누워 잠을 잤다
졸업장 대신 외국어학원 수강증을 받고
명절 앞에선 입을 다물고 머뭇거렸다
전공서적 보다 취업정보지를 먼저 뒤적거리며
사랑해보다 이력서를 더 많이 썼고
사흘 전 치른 아버지의 장례를 유보의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어떤 후배는 선배보다 먼저 졸업한다는
눈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끄러운
몸의 왼쪽은 겨울, 오른쪽은 봄인 3월
나란히 붙어있다 누군가 떼어간 포스트잇의 자리가 허전하다
학사모의 자세들이 명랑해지고
벚나무의 눈시울이 붉어져도
범람하는 유보의 삶을 예우하는 캠퍼스,
개화를 늦춘 꽃차례가 더 단단해지는
그 무렵엔 근황을 숨겨야 한다
黑
이곳의 테마는 블랙
카푸치노, 사케라떼… 는 모티프다
아침마다 컵에 검은 화폭을 펼치고 스푼으로
커피를 스케치한다
크림과 우유는 블랙의 순수를 해치는 불순물
혼탁한 주석들이 들어가면
커피는 순정한 검정을 잃어간다
누가 검정을 불온한 색채라 했는지
검정을 해치는 백白,
까마귀 골짜기에 백로가 들어간다
하트 클로버 큐피트의 화살… 라떼아트
크림으로 블랙을 탈색시키는 바리스타
바다와 민물 커피와 크림 계피와 시럽이 섞여도
섞일 수 없는 당신과 나,
당신의 흑심을 읽지 못한 이후
커피는 혼자 마신다
**약력:2012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 산림 문학상 수상. 시집『나무의 세 시 방향』.새김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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