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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신작시/김건화/술래가 된지 너무 오래 되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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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건화
술래가 된지 너무 오래 되었다
저녁, 골목길, 달팽이, 새들
마음이 먼저 알아본 불빛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도시가 숨긴 적요에
익숙한 냄새로 길은 휘어지다가
허기를 부추기다가
컹컹 개를 짖게 하더니
손끝에서 마감하는 하루
어머니가 개는 빨래 속에서
구겨진 길은 다시 잠잠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한 사람과
저녁, 골목길, 달팽이, 새들을 기다리며
난 술래가 된지
너무 오래 되었다
오늘도 깜박이는 별들
라면 먹고 싶은 날
양은 냄비에 부르르 끓인 분식집 라면이 먹고 싶다는 나와
인생의 매운맛을 알기 위해서는 청양고추 듬뿍 썰어 넣는 당신
서로 주의와 주장은 달라도 우린 애인이 될 수 있다
지속되던 열대야가 수그러진 첫 날 이거나
마른장마가 국지성 폭우를 동반한 날이면 좋다
라면은 여전히 꼬불거리고 허기진 마음이 습기를 만났으니
목저로 건져 올리는 면발은 미끄러짐 없이 입 안에 쏙 드는 거지
퍼지기 전에 눈물 콧물 쏙 빠지는 둥근 보름달 하나 띄워
뿌옇게 김이 서린 안경너머로 서로를 바라보지
쫄깃한 면발이 넘어간 목구멍은 후루룩 국물로 달래는 거야
설익은 대파의 미끈거리는 비릿한 욕망을 피할 수 없다면
한 몸이 되고 싶어 당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성질 급해도 좋아
서로의 혀에 혀가 데여도 달랠 줄 몰랐던 아린 속
한 그릇 라면이 공복 그 불안을 채워주었기에
아닌 줄 알면서도 해로운 줄 알면서도
정신의 허기까지 포만해지는 나의 애인 라면씨
**약력:2016년 《시와경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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