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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책 크리틱/전해수/‘시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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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크리틱
전해수
‘시간’속으로
ㅡ정남석 『보들레르 알레르기』, 김영미 『물들다』의 시적 시간
누구나 ‘첫’이라는 말에 가슴 두근거려 본 적 있을 것이다. 특히 ‘첫 시집’을 통해 선보이는 지난 시간은 ‘시인 탄생’에 예비 된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만나는 일은 시인이 마련한 집詩集에 등불을 켜고 들어서는 일과도 같은 두근거림을 안겨준다.
여기 두 시인의 ‘첫’이 있다. “벗어나고 싶지 않은 순간”(정남석『보들레르 알레르기』시인의 말 중에서)을 마음껏 호출하는 시인과, “더러는 어지럽고” “아직도 알 듯 말 듯 한 것”들(김영미『물들다』시인의 말 중에서)을 꺼내어 유감없이 그리워하는 시인. 이들의 첫 시집은 시적詩的 시간에 대한 애틋함이 깃들어 있어 우리에게는 봉인된 ‘첫’을 활짝 펼쳐보는(감동의) 경험을 선사해준다.
1. 명명命名의 시간들 : 정남석 『보들레르 알레르기』
정남석의 두 번째 시집 『보들레르 알레르기』에는 시인의 문학적 자양분으로 짐작되는 예술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른바 표제시標題詩 「보들레르 알레르기」는 (적극적으로) 보들레르의 생애와 문학적 특징을 활용하고 있으며, 「톨스토이 증후군」은 톨스토이의 인간적 면모를 시적 극화를 통해 재현한다. 또한 「까뮈의 창 읽기」는 “사내”로 지칭되는, 소설 「이방인」의 등장인물을 불러내어 시적 화자로 삼고 있다. 이밖에도 프리다 칼로(「몇 개의 작은 상처들-프리다 칼로」)와 까미유 끌로델(「애원하는 여인-까미유 끌로델」)을 호출하여 예술의 현현을 시적 사유로써 재구성한 시편 등 많은 서양의 예술혼들이 유감없이 정남석 시의 집에 거주하고 있다.
시인은 이 외에도 우리나라 현대 화가인 박송우 화백의 심상풍경 「섬」을 통해 화가의 유년을 되새김하거나(「요나 콤플렉스-박송우 화백의 심상풍경, 섬」) 이애경 에세이집「나를 어디에 두고 온 걸까」를 시적 제재로 삼는 등(「미와 미플랫 사이의 음을 위한 D장조」)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하여 예술가의 생애를 투영하며 타 예술의 시적 재구성을 꾀하는 데에 특별한 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정남석 시인의 예술탐닉과 독서광으로서의 남다른 면모가 짐작되는 정황이 시집에는 종종 발견되는데, 미셀 푸코의 저작『감시와 처벌』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시제로 섬세하게 다룬다던가(「판옵티콘」), 들뢰즈의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가 바탕이 된 시편도 눈에 띄며(「시뮬라크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을 독특한 기교로 현대적 재해석한 시(「백가쟁명」)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김유정의 소설「동백꽃」의 대화적 장면을 시적詩的으로 활용한 시편 등(「김유정의 동백꽃에 대한 긍정」, 「김유정의 동백꽃에 대한 부정」)매우 다채롭고 많은 예술적 교감이 시집의 내부에 스며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특징적 면모는 다만 예술가의 명명命名을 단조롭게 언급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쾌한 시적 장치로 활용하거나 ‘나의 반성적 기표’로 사용하고 있어서 매우 주목된다. 이를테면,
“아내가 나와 집안을 완전히 망치고 있다”
이 말을 남기고 집을 뛰쳐나간 건 사실 잘못입니다.
어느 시골 기차역에서 세상을 떠난 후
소피아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처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지만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소피아의 손에 거쳐 태어났습니다.
사실 나의 아내도 악처는 아닙니다.
ㅡ「톨스토이 증후군」중에서
위 시「톨스토이 증후군」에서는 톨스토이의 연대기적 일화가 시적 진술로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나의 현실에 투영되어 ‘예술의 탄생’은 숱한 운명적 제압에 의해서 더욱 단단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또한「보들레르 알레르기」는 상징주의 시학에 영향 받은 시인의 시적 징후들을 여러 곳에서 묘파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시인의 칭호를 얻은 그는 여자에게 빠졌다
끝없는 반항과 모험의지에 취한 절망의 어머니
시를 사랑했으므로 어머니는 재혼을 했다
그의 유전적 항체는 상징주의 기호를 가졌다
모든 애정과 증오는 시를 통해서 교감했다
아버지의 문장 서술부분은 시에 의해서 생략됐다
시적 행간은 순수한 거짓말들로 어리둥절했다
가을의 일방적 초대에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색과 소리와 향기들, 언어에서 권태로움은 시작됐다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도 완벽하게 몰랐다
우울은 꽃들 속에서 빈틈없이 부풀어 올랐다.
ㅡ「보들레르 알레르기」전문
정남석의 시 경향을 대표하는 시로 보이는 「보들레르 알레르기」는 시인의(궁극의) 지향점이 엿보인다. 예컨대 “상징주의”, “교감”, “순수한 거짓말”, “색과 소리와 향기”, “우울” 등이 시인의 탐구적 정서와 유사한 시어들로 보이며, 시인은 보들레르로 표방되는 상징성을 베를렌느나 랭보, 말라르메와 구분하면서 그 독보적 입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정남석 시의 근거리에서 끊임없는 “교감”의 언어들을 재생시키고 있다. 그 언어는 “절망”의 곁을 위무하는 존재의 언어들이며, “알레르기”로 표현되는 민감한 정서적 반응들이라 할 수 있다. 정남석 시인은 보들레르의 “우울”과 “꽃”의 탄생에 대해, 그 “절망”의 코드에 대해, “모든 애정과 증오”가 교감하는 “시” 장르에 대해, “완벽하게” 부풀어 오른 “시작(始作이기도 하고 詩作이기도 한)”을 경험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표현해낸다.
그와의 거리를 티스푼으로 젓는다
티스푼을 따라 가나안에서 잘 지낸다고,
다시 돌아오면 안 되냐며 잔을 감싸 쥐었다
어떻게 지냈어,
요단강을 건너 왔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첫 번째 리필을 했다
너무 힘들어,
서늘해지는 기억
밀어 내고 싶어 두 번째 리필을 했다
비우면 오고
채우면 사라지는
커피 잔 하나를 두고
바람은 황급히 돌아가는 연습을 했다
턱을 받치고 있던 포인세라 잎이 툭 떨어진다
천천히 걸어 나와 잎을 우편함에 넣었다.
ㅡ「그의 안부를 우편함에 넣었다」전문
그렇다. 시인은 존재의 이유로서의 “잎” 하나에마저 그 생명성을 부여한다. 계절을 지우며 떨어지는 “포인세라 잎” 하나로 전하는(간절한) “안부”는 지난 결별의 시간을 진한 아쉬움으로 남긴다.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이별을 논하는 연인처럼, 혹은 지난 이별을 회상케 하는 아픈 시간이 거듭 떠오르는 카페에서, “툭 떨어”지는 잎 하나는 “쿵” 내려앉는 이별의 심장과 동일한 무게를 지닌다.
위 시는 “가나안에서 잘 지낸다고, 다시 돌아오면 안 되냐며 잔을 감싸 쥐”는 것이 화자의 회상이거나 실재상황일지라도(처연한) 이별의 아픔을 끊어 누르는 것과 같은 심정을 표출한 바이다. 이때에 문득(속말로) 되뇌는 말 “어떻게 지냈어, 요단강을 건너 왔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와, 비워지면 다시 채우는 “커피”의 검은 수면에서 엿보이듯이 이미 확연한 사실이 된 이별을 재차 확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부를 묻고 그리워하며 차마 보낼 수 없는 서신에 목이 메여 시적 화자는 끝끝내 “잎을 우편함에 넣”는 행위로 이별을 극복하고자 한다.
술래인 나는 골목의 끝을 잘라내고 싶었다
골목은 더디게 사라지는 것을 도왔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한발 한발 점자를 짚어가듯 모퉁이 돌아설 때
누군가 반대편에서 경계가 느슨할 때를 노렸다
이쪽이야 이쪽
고장 난 냉장고의 문을 닫고 씩씩한 속도로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서로 비슷비슷하게 기웃거리는 골목
가깝지만 아득히 먼 틈이 벌어진다.
ㅡ「끝이 훤히 보이는 것은 골목이 아니다」전문
그러나 추억은 기억 속에서 굴절되어 남기 마련이다. 유년시절 골목에서 술래 놀이하던 추억은 “더디게 사라지”는 그 “골목”의 끝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골목의 끝은 “훤히 보이는” 골목은 아닐 것이다. 골목의 끝. “가깝지만 아득히 먼” 그 시간의 틈은 그것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시간”(시인의 말)의 영속에서 정남석 시의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2. ‘순간瞬間’의 시간들 : 김영미 『물들다』
한편 김영미의 시집 『물들다』는 스치듯 지나간 과거 ‘순간’의 시간들이 현재를 이어주면서 미래의 영원한 시간과 만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시인은 “더러는 어지럽고” “아직도 알 듯 말 듯 한 것”들에 대한 애틋함과 관심으로 이미 사라진 시간의 조각을 퍼즐 판에 끼워 넣듯 잃어버린 순간을 되살려낸다.
새가 살았을 때는
바람을 품어 허공을 날더니만
새가 죽었을 때는
바람이 불어와 몸을 흔들어도
허공을 알지 못한다
ㅡ「날개」전문
창공의 새를 바라보며 시인은 위 시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시집의 ‘첫’ 시이기도 한 위 시의 제목이「새」가 아니라 「날개」인 것은 의미가 있다. 위 시에서 ‘난다는 것’은 ‘허공’과 ‘바람’을 만나 비로소 그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인데, 이 “허공”과 “바람”이 새에게는 고독이나 위험의 표상이 아니라 생명의 존재이유를 발견하는 매개로 제시된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시인은 새보다는 새의 ‘날개’를 통해, 삶의 비의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새가 난다는 것의 행위는 살아있다는 ‘몸짓’이며 그 몸짓이 지향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허공’과 ‘바람’에 의한 존재의 발견인 것이다.
또한 위 시는 시간의 영속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다 분명하게 인식된다. 시인은 생명이 영속되지 않는 것은 ‘죽음’ 때문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시간’에 의해서라고 말한다. 이 생명의 시간이 바로 새의 “날개”에서 발견된다.
시 「날개」는 날고 있는 공간이 ‘허공’이라는 사실로부터 시상이 펼쳐진다. “새”는 “허공”을 품고 있다. “허공”은 무엇인가. 공간도시간도 부재한 곳이 바로 ‘허공’이다. 그런데 “허공”은 새에게는 살아있다는 증표이고 죽었을 때 새는 “허공”을 잃는다.
“바람” 역시 삶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매개로 사용되는데 “바람이 불어와 몸이 흔들리는” 경험은 생명이 온전히 생명성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뜻 깊은 ‘흔들림’이 된다. 「날개」는 ‘허공’과 ‘바람’이라는 시어를 통해 궁극의 생명성을 확보한다.
바람이 길을 내려는지
바람 부는 날엔 귀가 더욱 가렵다
묵은 침묵을 깨고 달팽이관이 움직인다
고막 속에서 맴도는
모르스부호의 타전, 게슈타포의 걸음, 심장이 떨리는 소리
바람을 타고 오는 고주파의 변형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너무 많다
ㅡ「귀가 가렵다」중에서
“소리”는 시인에게는 시간을 인식하는 한 방법이 된다. “바람”이 “소리”를 생성하고 이 소리는 “귀”를 가렵게 한다. “귀가 가렵다”는 것은(민간에서는 흔하게) 누군가 나에 대한 소문의 말을 퍼뜨리고 있다는(막연한) 표식으로 사용되는데 “귀”는 몸에게 신호를 전하는 몸의 일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귀”만큼 외부와 긴밀하게 연결된 신체의 일부도 없을 터인데 시인에 의하면 “귀”는 외부의 암호 같은 “모르스부호의 타전”소리와 혹은 “게슈타포의 걸음”같은 무수한 공격의 발자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와 나의 “심장이 떨리는 소리”도 “고막”을 자극하는 민감한 행위로 전달된다. 이처럼 “귀가 가렵다”는 인식은 신체의 일부가 가려운 ‘순간’을 잠시 멈추게 하여 예민한 시적 촉수를 들이댄 시인의 시적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햇빛이 나무를 품어 나무는 한 쪽이 환해졌다
나무는 그늘을 품어 그늘 한 쪽이 서늘해졌다
그늘은 나를 품어 나의 몸엔 그들의 문신이 새겨졌다
나는 의자에 나를 새겨 의자가 내 모습으로 얼룩졌다
제 몸을 다 내주며 기울어져가다
이윽고 자신을 다 지우고 하나가 되며
낮은 곳을 흥건히 적셔가는 부드러운 동질감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을 품어가는 일
하나가 하나에 기대어 천천히 물들어가는 오후
오후는 아침을 아침은 어제 저녁을
말없이 고요히 다 받아들이고
하루가 되는 것이다
ㅡ「물들다」전문
노을이 물드는 시간은 햇빛이 나무를 품고, 나무가 그늘을 품고, 그늘이 나를 품고, 나는 그것들을 의자에 앉아 모든 빛의 투영을 새겨 넣는 시간이 된다. 위 시는 일몰의 시간에 사물이 사물에게 혹은 사물이 나에게 물드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내 모습”이 얼룩지는 시간을 목도하고 있다. 이처럼 물든다는 것은 노을의 그것처럼(예컨대 ‘노을이 물들다’나 ‘노을이 지다’ 등의 표현처럼)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을 품어가는 일”이며 마침내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임을 설파한다. 물든다는 것, 이를테면 “하나가 하나에 기대어 천천히” 스며든다는 것은 온전히 “하루”를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내어주고” “모든 것을 품어가는” 노을의 일처럼 “사랑”의 일이 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노을로 물들어가는 하늘가에서 문신으로 새겨지는 ‘물든다는 것’의 의미를, 그 순간을, 시인은 깊은 사유의 지속적인 시간 안으로 이끌고 있다.
너에게 있어 가장 단단한 심장이고 싶었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가장 맑은 한 점
너에게로 향하던 고집스런 마음의 결
ㅡ「옹이」 전문
그렇게 (마음의) “옹이”가 지는가 보다. 너에게 향하는 “마음의 결”이 단단해“지고 ”부서지지 않는“ 한 점으로 남아 ”옹이“처럼 ”고집스런“ 시의 무늬를 새길 수 있는가 보다. 순간이 영원이 되는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보다. 시인의 ‘순간瞬間’은 시적詩的 시간 안에서 의미 있는 빛을 발하고 있다.
**약력:2005년 《문학선》 평론 당선. 평론집 『목어와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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