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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고전 읽기/권순긍/"누가 우리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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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
권순긍
“누가 우리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줄까?”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과 ‘원귀寃鬼 이야기’
한국형 원귀寃鬼의 전형, 장화와 홍련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몸이 오싹한 공포물을 많이 찾게 된다.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를 통해 더위를 쫓을 생각에서다. 그래서 ‘납량물納凉物’이라 하지 않는가. 세계 각처에 괴물이나 좀비 혹은 늑대 인간이나 흡혈귀가 등장하는 다양한 공포물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귀신이야기가 가장 익숙하다. 어떤 괴물이나 초자연적 현상보다도 우리들에게 무서운 건 바로 원한 맺힌 귀신이 아니던가? 묘하게도 그 귀신은 대개가 여성, 그 중에서도 처녀 귀신이 많다. 왜 그리 젊은 여자들이 원한이 많을까? 그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모두가 다 잠들은 깊은 밤, 찬바람이 일어나 촛불이 꺼지며 철산부산의 앞에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나타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자신들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한다. 바로 계모의 박해로 누명을 쓰고 죽은 장화와 홍련의 원귀寃鬼가 출현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았는데 원귀와 마주친 사또들은 놀란 나머지 줄줄이 죽어 나간다. 밀양 지역에 전해지는 <아랑의 전설>에 등장하는 원귀도 마찬가지다.
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우리의 귀신은 이승에서의 원한을 해결하고자 등장한다. 이야기 송에 등장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귀신은 곧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혼”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판 공포영화는 괴물이나 초자연적 재앙이 아닌 이 원귀들에 의해 주도된다. 그 맨 앞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고전소설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이다. 『장화홍련전』은 고전소설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가 시작된 초기인 1924년 박정현 감독에 의해 처음 영화화된 이래 지금까지 무려 7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져 〈춘향전〉 다음으로 많이 만들어진 영화가 되었다. 더욱이 “조선 사람의 손으로 된 조선 사람의 생활을 표현한 영화”인 <장화홍련전>이 조선의 생활을 잘 그렸다 하여 오히려 하야가와 고슈[早川孤舟]가 1923년에 만든 최초의 민간제작 영화, <춘향전> 보다 많은 관객이 몰렸다고 당시 〈매일신보每日申報〉는 전한다.
왜 이렇게 『장화홍련전』이 소설이나 영화 등 대중적 소재로 인기가 있을까? 그것은 이 작품이 한국적 원귀의 전형으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곧 못된 계모의 박해와 음모에 따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언니 장화, 이를 알아차린 동생 홍련의의 자살, 그리고 누명을 벗기 위한 원귀의 출현, 담대하고 명석한 관리와의 조우, 사건의 해결과 계모의 처형, 인간세상으로의 환생 등 『장화홍련전』에는 박해와 신원伸寃의 전과정이 잘 나타나있는 것이다. 그러면 『장화홍련전』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철산 살인사건’과 『장화홍련전』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설화가 바탕이 된 허구인데 비해 『장화홍련전』은 실재사건과 허구가 결합한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실재 사건은 이렇다.
효종(1649~1659) 때 평안도 철산현은 매년 가뭄이 들고 부임하는 수령들이 줄줄이 죽어나가자 백성들이 떠나 폐읍이 되다시피 하였다. 이 모두가 억울하게 죽은 장화와 홍련의 원귀 때문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조정에서는 이 일을 해결할만한 사람으로 담대한 호남출신의 무장 전동흘全東屹(1610~1705)을 천거하여 철산부사로 파견하였다. 과연 전동흘은 내려오자마자 장화와 홍련의 의문의 죽음을 해결하여 그 억울한 원한을 풀어주었으며, 이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신명철인神明鐵人’이라 불리고 공덕비까지 세워지게 되었다 한다. 이 ‘철산 살인사건’이 해결된 시기가 1656년이며 소설에서 정동호 혹은 정동우로 나온 인물이 바로 실존인물 전동흘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전동흘의 문집인 『가재집嘉齋集』의 「가재공실록嘉齋公實錄」에 박인수朴人壽라는 사람에 의해 한문소설로 자세히 기록된다. 박인수는 “공의 6대손 되는 만택이 국문본을 한문으로 번역해 달라고 해서 굳이 사양했으나 제대로 되지 못하여 간략하게 그 대강의 내용을 기록한다.”고 적어두었다. 이를 보면 적어도 박인수가 작성한 한문본 이전에 이미 국문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국문소설 『장화홍련전』은 철산사건을 해결한 전동흘의 사후(1705년)와 한문본이 이루어진(1818년) 사이에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즉 국문본 『장화홍련전』은 전동흘의 ‘철산 살인사건’ 해결의 이야기가 떠돌면서 여러 화소들이 보태져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장화를 연못에 빠져 죽게 한 장쇠에게 호랑이가 나타나 두 귀와 한쪽 팔, 다리를 베어 먹는 일이나 파랑새가 홍련에게 언니가 죽은 연못을 인도하는 이야기는 박인수의 한문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흥미를 주기위하여 후대에 첨가된 화소인 것이다.
하지만 『장화홍련전』의 전체적인 내용은 박인수가 기록한 「가재공실록」의 기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전동흘에게 장화와 홍련의 원귀가 나타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고 하고 낙태한 증거물의 배를 갈라보라고 조언한 것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원귀가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 했다고 믿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장화홍련의 죽음에 관련한 ‘철산 살인사건’을 잘 해결하여 이야기가 그렇게 발전된 것이리라.
『장화홍련전』은 크게 나누어 계모에게 박해를 당하여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는 전반부와 원귀가 나타나 억울함을 신원하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는 『콩쥐팥쥐전』과 같은 ‘계모형 가정소설’의 형태를, 후반부는 ‘공안소설’ 내지는 ‘송사소설’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물론 전동흘의 ‘철산 살인사건’에서 비롯됐기에 작품의 무게 중심은 뒤쪽에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평안도 철산 고을에 배좌수가 살고 있었는데 장화와 홍련이라는 두 딸을 두고 있었다. 장화가 6살이 되던 해 부인이 세상을 뜨고, 배좌수는 후사를 잇기 위해 후처를 들이게 된다. 그리고 세 아들을 연달아 낳았다. 후처 허씨는 장화가 혼인할 때가 되자 자기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어질 것을 걱정하여 장화를 죽일 흉계를 꾸민다. 장화가 잠든 사이 쥐를 잡아 껍질을 벗겨 낙태한 것처럼 속여 이불 속에 넣고 배좌수가 오자 이를 보게 하여 양반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죄로 죽이자고 하여 동의를 얻어낸다.
이에 배좌수는 장쇠를 시켜 산 속 깊은 연못인 용추龍湫에 장화를 빠트려 죽게 만들었지만 장쇠 또한 호랑이에게 한쪽 팔과 다리, 두 귀를 잃게 된다. 집에 있던 홍련도 이상한 꿈을 꾸고 비로소 언니가 죽은 것을 알고 파랑새의 안내로 언니가 빠져 죽은 연못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
이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연못에 빠져 죽은 장화와 홍련의 원귀가 철산부사의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원한을 하소연하지만 부사들은 원귀를 보는 족족 기절하여 죽어버리고 흉년까지 겹쳐 철산은 자연 폐읍이 됐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니 철산부사로 가려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어 조정에서는 수소문 끝에 정동호(혹은 정동우)라는 무관을 천거하여 철산부사로 임명하게 되었다. 정동호는 부임하자마자 원귀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원귀의 원통한 사연을 다 듣는다.
다음날 배좌수 부부를 잡아들여 문초했으나 계모 허씨의 말에 속아 낙태의 증거물로 제시된 쥐의 시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자 그날 밤 다시 원귀가 나타나 배를 갈라보라는 조언을 남기고, 그렇게 하여 계모의 흉계임을 밝혀낸다. 정동호는 허씨와 장쇠를 처형하고 배좌수는 장화와 홍련의 간청대로 무죄방면한다. 뒤에 철산부사는 장화홍련의 음덕에 의해 황해 감사로 승진하였다.
한편 배좌수는 윤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얻었는데 장화와 홍련이 윤씨의 몸을 빌어 쌍둥이 자매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환생한 장화와 홍련은 평양의 쌍둥이 형제인 이윤필, 이윤석과 혼인하여 전생에서 못 다한 부귀영화를 다 누린다.
계모는 왜 악녀惡女일까
이상의 내용을 통해 두드러진 것은 전처 자식에 대한 계모의 악행과 살인을 같이 공모했던 아버지 배좌수에게 부여된 면죄부다. 우선 계모의 인물형상을 보자.
얼굴은 한 자가 넘는 데다 두 눈은 퉁방울 같고, 코는 질병 같고, 입은 메기 같고, 머리털은 돼지털 같고, 키는 장승처럼 크고, 목소리는 이리나 승냥이 소리 같았다. 허리는 두어 아름은 족히 되는 데다 곰배팔이에 퉁퉁 부은 다리에 쌍언청이에 입은 칼로 썰면 열 사발은 될 만큼 하고 얽기는 콩멍석 같으니 그 형용은 차마 견디어 보기 어려운데 마음씨는 더욱 망측했다. 이웃집 험담하기, 한 집안 사람들 이간질하기, 불붙는 데 키질하기 등 남 못할 짓을 찾아다니면서 하니 잠시라도 집안에 두기 힘들었다.(경성서적조합본, 1915. 현대역 필자, 이하 같음.)
이게 어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망측한 괴물의 현상이다. 왜 이렇게 계모는 모두 못생기고 마음씨도 고약할까? 배좌수는 물론 아들을 낳아 후사를 잇기 위해 후처를 들였다지만 어찌해서 이런 여자와 재혼을 하게 됐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흉측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계모 허씨의 형상은 분명 과장되거나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그것은 계모 허씨가 분명 배좌수, 장화, 홍련으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가정의 침입자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며, 그럼으로써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계모 허씨의 형상을 이렇게 괴이하게 그린 것은 뒤에 그를 희생물로 삼고자 하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내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일리언>같은 외계인의 침입을 다룬 영화나 좀비 영화를 보면 모두 그 형상이 흉측하고 괴이하다. 이들은 처음에는 인간을 위협하고 공포로 몰아넣지만 결국에는 인간에 의해 제거된다. 그 속에는 괴물로 대변되는 당시의 정치적 불안 혹은 공포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동서냉전시대에 이런 공포영화가 많이 등장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장화홍련전』도 마찬가지다. 흉악한 계모 허씨가 들어와 집안을 죽음의 수렁으로 몰고 가지만 결국에는 자신과 그 자식마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계모 허씨는 죄상이 밝혀지자 서울까지 압송되어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된 뒤 찢어진 사지육신을 팔도에 각각 보내 백성들의 경계로 삼도록 했다.”고 한다. 완벽하게 희생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하지만 유사한 내용의 ‘계모박해형 가정소설’인 『콩쥐팥쥐전』의 계모는 “인물도 과히 추하지 않고 집안일도 깔끔하게 한다.”고 하여 희생물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 다만 콩쥐에게 수행하기 힘든 과제를 무수히 제시하여 괴롭히는 정도다. 말하자면 ‘과제제시형’ 계모인 셈이다. 그러기에 살해의 역할은 계모가 아니라 시기심과 질투의 화신이 된 팥쥐가 담당한다.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해 흉측한 계모, 희생물이 필요했을까? 우리는 우선 배좌수가 아들을 얻어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해 죽은 전처의 유언도 저버리고 재취를 얻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의 후사를 위해서 딸이 아닌 아들이 필요했기에 재혼을 한 것이다. 계모 허씨가 “연달아 아들 삼형제를 낳자 좌수는 수백 가지 흉을 모른 체하고 내버려 두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것을 물려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배좌수의 재산이 “전처가 친정에서 재물을 많이 가져와 지금처럼 넉넉하게”된 것이라, 장화가 시집가면 이 재산을 나누게 될까봐 흉계를 꾸민 것이다. 이는 철산부사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는 장화, 홍련의 원귀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계모의 시기로 저희는 스물이 다 되도록 혼인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디 소녀의 어머니가 재산이 많아 논밭이 이천여 석, 돈이 수만금, 노비가 수십 명이 있사온데 만일 소녀 자매가 출가하면 재물을 많이 가져갈까 하여 그랬던 것입니다. 뒤늦게 아버지께서 언니의 혼처를 정하자 계모는 소녀 자매를 아예 죽여 없애 재산을 자기 자식들이 모두 차지하게 하려고 밤낮없이 흉계를 꾸몄습니다.
즉 계모 허씨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재산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전처자식들을 죽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콩쥐팥쥐전』에서는 콩쥐가 전라감사의 재취로 들어가 재산을 나눌 일이 없어졌기에 악녀의 역할을 오히려 팥쥐가 맡아 질투의 화신으로 콩쥐를 살해하기에 이르지만, 여기서는 재산 상속에 따르는 분배 때문에 장화를 제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화를 죽이는 데 따르는 배좌수의 어정쩡한 태도다. 비록 딸이 낙태를 하여 양반가문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렸다고 하더라도 죽이는 데까지 이를 수 있을까?
흔히 계모박해형 고전소설에는 시골의 좌수 집안이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좌수座首’가 어떤 지위인가? 조선 시대 때 지방의 수령을 보좌하는 향소鄕所 혹은 유향소留鄕所의 우두머리가 바로 좌수라는 직함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지방에서 행세하는 시장, 군수나 국회의원의 집안인 것이다. 그러니 가문의 명예를 가장 중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이 약한 고리를 계모가 파고 든 것이다.
쥐를 죽여 낙태한 것처럼 위장하여 배좌수가 알게 한 다음 계모 허씨는 배좌수에게 이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장화를 죽이는 것이 상책이라 하고 그 일을 시행하면 이웃들이 전처자식을 모해하여 죽였다고 할 것이니 차라리 자기가 죽겠다고 칼을 꺼내들고 자결하는 시늉을 하는 등 ‘생쇼’를 하여 배좌수의 동의를 받아 내기에 이른다. 이들의 대화를 자세히 보자.
“부인의 참된 마음을 내가 이미 알고 있소. 무슨 말을 하든지 탓하지 않고 그대로 시행한다고 하였거늘 어찌 이러시오?”
“그렇다면 장화를 빨리 처치하여 뒷날의 근심을 없애주십시오. 애정이 비록 중하지만 본디 남녀를 비교하면 계집자식이라는 것은 쓸 데 없는 것인데 이런 계집아이 때문에 후사를 이을 아들 자식의 앞길을 막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정한 저 아이를 빨리 처치하여 가문을 깨끗하게 해주세요.”
“알겠소. 그 계교대로 시행합시다. 그런데 누가 그 일을 해야 되겠소?”
허씨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귀신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으니 아무 염려 말라고 좌수에게 귓속말을 했다. 배좌수는 좋다고 무릎을 치고는 아들 장쇠를 불러 이리이리 하라고 시켰다.
자신의 딸을 죽이는 데 별 고민도 없이 후처의 계교가 “좋다고 무릎을 치고” 그대로 시행할 수 있는 아비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는 분명 무언가 의도가 있을 것이다. 즉 후사를 잇는 아들자식에 대한 배려와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것에 대한 응분의 처벌이 깔려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배좌수는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장화의 죽음을 묵인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했다고 봐야한다. 아들 장쇠를 시켜 장화를 살해하도록 지시했으니 말하자면 ‘살인교사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배좌수는 살인사건이 처결된 뒤에 멀쩡하게 ‘무죄방면’된다. 가장 심한 경우가 한문본에 보이는 것처럼 귀양을 가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원귀가 된 딸들은 “아버지의 형배는 도리어 절통하다.”고 한다. 능지처참 당하여 그 시체가 조선 팔도로 보내진 계모 허씨에 비하면 배좌수의 처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존재할까? 거기에는 배좌수의 무죄방면에서 드러나듯이 ‘가부장권의 수호’라는 절대적인 도그마dogma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부장권 수호를 위한 ‘악녀 만들기’
애초 전처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후처를 들인 것은 순전히 아들을 낳아 후사를 잇기 위함이었다. 조선시대에 남성에서 남성으로 이어지는 가부장권이야말로 신성불가침의 그 무엇이다. 곧 ‘남성지배’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부동의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런데 큰 딸 장화가 낙태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역 양반들의 우두머리인 좌수의 집에서 낙태사건이 일어났으니 보통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가문의 수치’를 면하기 위해 모종의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더욱이 후사를 잇는 아들 삼형제도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어 벼슬을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낙태사건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절실했다.
이 때문에 결국 장화를 제거하기에 이르지만 제 손으로 친딸에게 죽음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약간의 주저함이 보이고 이 틈새를 계모 허씨가 파고들어와 닦달한다. 그래서 실상 살해의 명령을 내린 사람은 아비이지만 장화를 죽인 죄로부터는 면죄부를 받는다.
오죽하면 못에 빠져 죽으라는 장쇠의 말에 “결코 내 목숨을 보전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계모가 계속 시기할 것이고 내가 살면 부친의 명을 거역하게 되는 것이니 내가 어쩌겠느냐?”고 장화가 하소연할 정도로 아버지의 죽으라는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원귀가 되어 철산부사 앞에서는 자신을 죽게 명령한 아비에 대해 오히려 무죄와 용서를 구한다.
만일 진상이 탈로되면 소녀들의 아비도 함께 연루되어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 제발 살려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소녀들의 아비는 터럭만치도 악한 마음이 없는 어진 분인데 간특한 계모의 꾀에 빠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특별히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는 가부장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온전히 보존돼야 한다는 절대적인 도그마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후처를 들여 두 딸들이 모질게 박해를 받는 것도 후사를 잇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낙태라는 가문의 수치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딸의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다. 집안의 명예와 가부장권의 수호를 위해 장화는 희생제물이 된 셈이다. 장화가 죽으면서 계모에게 복수를 한다기보다 오직 누명을 벗기만을 간절히 원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장화에게 죽으라고 명령을 내린 아비는 어찌 되었는가? 집안을 더럽힌 죄로 가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자결을 명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은 계모의 흉계이기 때문에 모든 죄는 계모가 뒤집어썼다. 이를테면 가부장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악녀를 만들었던 것이다. 계모 허씨의 형상과 심사가 그렇게 흉측하고 못됐는지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즉 착한 두 딸을 죽게 만든 그 엄청난 사건에 대해 희생양이 필요했고 흉측한 계모에게 희생제물의 역할이 떠넘겨졌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배좌수를 중심으로한 가부장권은 온전히 지켜질 수 있었다. 지켜졌다기보다 오히려 공고화 됐다. 후일담으로 배좌수가 다시 세 번째 부인인 윤씨에게서 장화와 홍련이 환생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이런 가부장권 수호의 대가인 셈이다.
**약력: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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