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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신작시/이윤훈/아나키스트 김산을 만나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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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58회 작성일 17-10-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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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윤훈





아나키스트 김산을 만나다




불 뿜는 용처럼 생긴 과일
처음 본 순간 
당신의 붉은 얼굴이 환영처럼 비쳤답니다


속속들이 짙붉은 홍육화룡과紅肉火龍果
그 안을 열다 내 손이 뻘겋게 물들고
핏물이 흐르는 은빛 칼


아, 뼛속까지 붉게 물들어야 혁명이겠지요


세상의 모든 것에 졌지만 나 자신에게는 승리했다
당신의 말을 입술에 얹어봅니다
온몸이 뜨거워지고
혁명과 함께 당신이 다시 내게 태어납니다


숨을 헐떡이며 비틀비틀 일어서는
난산의 포유류 새끼
혁명은 그런 것이겠지요


화룡과 하나 핏빛 손으로 받아듭니다


   *김산(1905∼1938): 혁명가, 항일독립투사, 아나키스트.






등부터 겨울이 온다




등부터 겨울이 온다
반쯤 열린 뒷문의 귀가
마른 풀 살랑이는 산그늘 쪽으로 기울고 
웅덩이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한다
그대의 등이 설핏 보였을 때 그곳이
그대의 속울음이 고였던 자리라는 걸 
나의 벽지라는 걸
시린 등으로 알았다 
그대 없어 등이 더 어둡고 시리다 
뒷문 곁 강아지 등에 손을 얹는다 
앞산 뒤켠으로 아직 남은 빛이 환하다
한때 비겁하게 비수를 감춘 적이 있다 
내 등에 통증이 왔다 
내 등이 얼마나 가파른지
지나는 바람이 일러주었다 
가끔 내 등에서 벌레 먹은 가랑잎이 서걱인다 
이제 쓸쓸한 등으로 나를 다 보이고 싶다 
서글픈 일로 서글프고 싶다
어둠이 오고 저마다 제 깊은 곳으로 들어선다
군불을 지펴 지붕 위로 순한 연기를 피워 올려야겠다 
겨우내 그대의 등에 곤히 등을 대야겠다






이윤훈_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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