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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신작시/김지희/자동판매기에서 하나님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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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448회 작성일 17-10-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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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지희





자동판매기에서 하나님이




커피를 마실까 석류 주스를  빼 먹을까
붉은 석류나무를 뿌리까지 다 마셔버려야지
하지만 싱싱한 거품만 넘치고
먹다 버린 석류 알 하나 없는
청청 웰빙 석류 주스
고정관념으로 굳어 있는 당신의 머리가 작동한다
닫혀 있는 사랑과 열려 있는 절망처럼


종일 햇빛 속을 떠돌다 어둠에 눌려 납작해진 당신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지만
빛을 안고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상 보이지 않고
한 컵의 쾌락만 흘러 넘친다


이 작은 세계엔 어제 슬픔이 맑게 피어나는
착한 이름들로 충만하다
몇 분 동안의 희망들이 길 잃은 바람처럼 떠밀려온다
당신과 나 사이 빈터에
동전 몇 개로 쾌락 한 컵을 만들 수 있는
일회용 사랑 같은 커피 또는 사이다
아직도 지독하게 잉잉거리는 밀폐 된 가슴속
등불을 켜듯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는다
입안에 사는 달콤한 하나님이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녹슨 쇠냄새가 난다
허공에서 뜨거운 커피가 줄줄 흘러 내려온다
손이 다 젖는다
이 한 캔의 진한 삶을 맛보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돈만 자꾸 넣으라는 자동판매기


구겨진 캔, 찢겨진 종이컵 그 삶에 중독되어 웃는 당신
순간 달콤한 몰락을 주는 삶
껍데기에 쌓인 포도 알갱이처럼 힘없는 호주머니를 자꾸 터는
그 자동판매기는
몇 분간 당신 목마른 삶 축여줄 구원의 메시지?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죽음의 푸른곰팡이!







사이버 블링cyber bullying*




밤의 창문처럼 켜져 있는 모니터 속
죽어 있는 저녁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전선의 불을 타고 온 몇몇의 혀가
절벽 위에 서 있을 언어를 찾아 몰려다닌다


낮과 밤이 경계 없이 지내듯
손바닥에 불이 가득한 채 모니터 밖으로 튀어나올 듯
자신마저 잊고 격정적으로 플라맹고 춤추는 사람은 없고…
햇빛을 모아 태워버리고 싶은 모니터 속 언어들
흡반같이 사람들 몸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메마른 나뭇가지는 제 목소리로 툭툭 부러지고
길 잃은 말들은 미친 듯
사막에 난 길처럼 사람들 마음속을 무단 횡단한다
얼굴도 없이 혀만 날름거릴 뿐 어떤 의미에도 닿지 못하고
온갖 칼 휘두르는 말
뒹구는 죽음을 빨아먹고 버려진 절망도 핥아먹으며
수천만 개로 쪼개진 새의 날개를 강물에 던져
길 밖으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
참 위태로운
말풍선들이 터질듯 부풀어져 있다
밤 지새우며 켜진 모니터
제 자신은 아무것도 비치지도 못한다


울음이 지켜선 밤 이윽고 아득한 별빛
한 여자가 창틀을 쥐고
가슴속 붉은 실타래를 풀어
오늘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암흑 속에 수를 놓는다
죽어도 살아있는 것
죽은 나무가 살아 연주하는…
피아노의 맑은 옥타브를 이루고 있다


   *사이버블링: 사이버 상에서 한 개인이나 그룹이 특정인을 의도적 악의적(악성 댓글 적대적 발언 등)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동 그러한 현상.









김지희_2006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2014년 〈영주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토르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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