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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신작시/이외현/매운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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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외현
매운탕
―양파
목을 여민 감색 블라우스를 벗기고
젖은 날개 시스루 슬립을 벗기고
치마, 브래지어, 팬티를 말끔히 벗긴다.
시퍼런 칼날이 하얀 목덜미를 가르고
가슴 저미며 아랫배를 지그시 누른다.
난도질한 몸뚱이를 그러모아
끓고 있는 탕 속으로 데려간다.
탱탱한 속살이 자맥질을 하며
엎치락뒤치락 다른 몸과 섞인다.
부엌에 맵싸한 살 냄새가 진동한다.
그때, 식탁에는 밥이 차려지고 있다.
그녀의 시간은 어제입니다.
시간을 건너다 뒤집혀 허공에 빠진다.
헤엄을 쳐서 구름 위로 기어오른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모르는 시간들이 다녀가고
결핍缺乏과 부족不足이 따라온다.
결핍은 분分 같고
부족은 초秒 같다.
결핍은 한자 같고
부족은 한글 같다.
결핍은 아물지 않은 상처 같고
부족은 여물지 못한 열매 같다.
결핍은 많이 모자라 불쌍한 생각이 절로 들고
부족은 조금 모자라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인
이슬에 매달린 결핍의 손은 노랗고
서리에 굳어진 부족의 알은 파랗다.
결핍과 부족은 내일을 그리워한다.
그냥, 초록 시계의 어제 생각이다.
이외현_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계간 아라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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