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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신작시/김관용/여름의 촉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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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89회 작성일 17-10-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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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관용





여름의 촉감



기억하자면, 폭우 속의 포도밭, 출구라 부르던 것들, 아슬아슬한 날들이 달력에서 흘러내리고 녹슨 나사처럼 지구는 헛돈다. 약간의 현기증으로 평화로웠다. 거실에서, 공터에서, 튀어나온 대못에 걸린 듯 조금씩 여름이 찢어지고 땅의 모세혈관으로 파고드는 포도알, 점심시간의 숲은 고열에 시달린 열매처럼 무릎으로 기어왔다. 돌멩이 하나 주워 공터에다 줄을 긋는다. 하늘에도 그렇게 줄을 그어서 겹쳐본다. 어떤 감각은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서 실패했다. 고백컨대, 한 켤레의 신발은 자신이 꺼내놓을 자취를 상상만 하다 허공이 되는 것. 공터의 혀 위에서 새가 녹는다. 새의 동공 속에서 바람을 좇던 아이. 아이를 향해 팔을 벌린 여자. 아이는 여자에게 달려간다. 아이는 느린 동작으로 여자를 통과한다. 여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여자의 잔상이 없다. 이를테면, 아이에게 여자는 이상한 도형이다. 여자를 뒤지며 멸종한 색을 찾는다. 여름의 입속엔 혓바늘이 돋고 일제히 날아오른 검은 봉지 속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왔다. 다시, 공터의 혀 위에서, 꿈틀거리던 새가 녹는다. 아이는 트레이싱페이퍼처럼 얇아져서 여자를 밀봉한다. 여자는 외롭고 아이는 좁은 방이다. 약간의 현기증으로, 여전히 포도알 같은 새의 동공 속에서






전신마취




귓속말을 하면 자꾸 노을이 만져지는데 간혹 찌릿하게 느껴지는 침묵, 비닐하우스처럼 핏대가 섭니다 그때 나의 심장은 장물이었던 것인지


우리가 지나온 길은 고슴도치 같았고
우리는 지나온 길에서 갈증을 느꼈습니다


나를 건드린 바람이 당신에게 갈 무렵 당신의 가지 위에서 편견으로 얼룩지던 목젖, 내 이름 적힌 책에서 튀어나온 이상한 천국은 누군가의 땀 냄새가 밴 홑겹 시트였던 것입니다


얼어붙은 대야에서 평화가 출렁거렸다면 그때 난 너무 허우적거렸던 것일까요 어떤 가능성으로 고독은 직립하는지


창문은 미로를 닫아버리고 비가 되었고
연민으로 다독이던 음악은 거짓이었습니다


저녁 숲의 장면을 죽은 사람의 맥박으로 세어봅니다 주먹을 움켜 쥔 건 습작이었고 완성되지 않은 모방에 불과했을 뿐, 긴 문장에선 여전히 낙오자가 속출합니다







김관용_2015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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