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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신작시/박가경/스쿼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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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가경
스쿼시
당신을 반복하듯 공을 반복한다
내 어깨 위에 붙어있던 집착을 내려놓고
차오르는 숨이 턱 밑에 다다랐을 즈음
벽으로 빠르게 보낸 나의 질문에 독까지 품은
당신의 대답이 더 빠른 속도로 내게 날아온다
대답은 정교하다 내가 가격한 지점으로부터
한 번 더 뒤틀린 채 다가와 추궁한다
당신의 시선은 내가 아닌
오직 목표물로만 돌진하고 있다
땀방울이 서로의 구역 없이 함께 뒹굴고
미끄러지고, 같이 날아다니는데
우리는 더 이상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벽을 통해서만 이별을 즐긴다
저 흰 벽이 삼켜버린, 아니 지워버린 것은
나와 당신 사이의 속도뿐일까
차가운 스매싱이 나의 심장을 자꾸 파고드는데
공혈견供血犬
―김춘수의 ‘꽃’ 패러디
사랑스러운 그가 짖어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한 마리의 어둠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나의 야성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그의 혈족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로 언제든 갈 준비가 되어 있다
아픔도 없이 죄도 없이
용서도 없이
그가 나의 광기를 가져간 것처럼
그의 왕성한 발톱에 알맞은
깨끗한 야만을 내게 다오
나는 오직 하나의 기록으로
찬양되고 싶다
나와 동료들은 모두
뼈와 살을 버리고 죽음 직전이 되고 싶다
그와 그들에게로 가서 붉음을 덧칠하며
흩어지는 맥박이 되기 위해
비명을 삼키고 싶다
박가경_2015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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