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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미니서사/박금산/아뇨증에 좋은 개와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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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박금산
아뇨증에 좋은 개와 상사
직장 상사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뒤부터 남자는 밤에 이불을 적시기 시작했다. 변기에 들어 있는 상사의 얼굴을 향해 소변을 보았고, 나무에 가려진 옹벽에 들어 있는 상사의 얼굴을 향해 소변을 보았다. 꿈 속의 일이었다. 상사는 꿈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오줌은 몸에서 빠져나가 속옷과 잠옷과 이불을 적셨다. 상사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에 현관을 향해 생식기를 쳐들었는데 그것 역시도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상사가 꿈에 나타나는 시각은 새벽 세 시 몇 분이었고 상사가 나타날 때마다 남자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새벽이라 층간소음 때문에 세탁기를 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남자는 최대한 조용하게 속옷과 잠옷과 이불을 빨았다. 그리고 물이 질질 흐르는 이불을 끌고 거실을 가로질러 걸어가 베란다로 나가 난간에 이불을 걸었다. 이불 빨래를 난간에 널어놓고 돌아보면 거실에 떨어져 있는 물방울이 꼭 걸으면서 바짓가랑이 사이로 흘린 오줌 같았다. 남자는 오줌을 닦는 기분으로 물방울을 닦았다.
어느 날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상사를 만났다. 상사가 말했다.
“회사에서는 안 그렇게 봤는데, 결벽증 같은 게 있나요?”
“무슨 말씀이시죠?”
“이불 빨래를 자주 하잖아요.”
“아닙니다. 개를 기르는데 녀석이 자주 실수를 합니다.”
“훈련소에 보내 보세요. 함께 살려면 가르쳐야죠. 돈이 좀 들지만 훈련사가 아주 기가 막히게 고쳐놓는다는데.”
남자는 뭐라고 말을 할까 망설이다가 회사에서 하는 대로 대답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남자는 상사와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 남자는 회사에서 컴퓨터를 열고 부동산 사이트에 접속했다. 집을 수소문하다가 그만두었다.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집을 옮기려면 감당해야 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집에서 키우는 개를 풀어서 상사의 생식기를 물어뜯는 훈련을 시켜서 상사를 내쫓는 것이 더 빠른 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하루 종일 곤욕이었다. 상사가 아침에 퇴근을 함께 하자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집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어느 날 승강기 거울 옆에 공고문이 붙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으니 베란다에 이불을 너는 일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남자는 승강기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시티브이 카메라에서 등을 돌린 후 오른 손 중지를 추켜세워 퍽큐를 날렸다. 상사가 오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것은 상사에 의해 작성된 문장이었다.
▶박금산_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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