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5호/단편소설/박종관/숨
페이지 정보

본문
단편소설
박종관
숨
너는 저번 달 휴일에도 처의 손을 잡고 낯선 산야로의 여정을 감행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사십여 분만에 내린 시골 마을 앞은 황량했다. 생기를 잃은 밭작물들만이 사나운 비바람에 흙밥마저 다 잃고 고단한 뙤약볕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출하시기에 가격이 폭락하여 그대로 방치된 것들이었다. 환금성으로 너무도 쉽게 용도 폐기된 목숨들의 신음소리가 허공마저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너희 부부 뒤에서 차를 내린 여자가 흘긋거리면서 지나쳐 간다. 굳게 잡은 너희의 손을 보면서 늙은 것들이 대낮부터 무슨 짓이냐고 힐난하는 마음일 터였다. 시골 여편네답지 않게 얼마나 화장을 두텁게 했는지, 햇살 아래 드러난 이마가 법랑琺瑯을 칠한 도기의 표면처럼 무지근하게 번득였다.
너는 잠시 서서 마른갈이를 마친 논배미들을 바라본다. 혐인嫌人의 감정이 다시 끓어오른다. 노란 비닐 끈으로 이마를 동여맨 통배추들이 한 자 간격으로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선 밭도 있다. 머리만 내놓고 땅에 묻힌 죄수들 같다. 때 묻은 지폐를 침 묻혀 갈무리해 넣고 잘 벼리어진 왜낫을 내어 버팀목도 없이 간당간당 지탱해온 머리를 툭툭 쳐내는 환영도 어른거린다.
인적이 끊긴 마을 한가운데의 공터에서도 여름내 고샅길 가장자리를 차지한 채 거치적거렸던 쑥대며, 엉겅퀴며, 도꼬마리 따위들을 뽑아내어 태우는지 검은 연기가 꾸역꾸역 솟구쳐 오른다. 저쪽 산 아래 편의 버쩍 말라 갈라터진 논배미에서는 포클레인과 덤퍼 트럭을 앞세워 흙들이기가 한창이었다.
너의 처가 슬그머니 손을 빼내더니 양팔을 벌려 심호흡을 한다. 흙내라도 맡는 모양이었다. 잔뜩 주눅이 든 마음이어서인지 흙내가 향기롭다는 건 바로 생명의 어머니인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글귀가 불현듯 떠오른다. 죽음에 대한 달관이 느껴지는 멋진 말이었지만 처의 모습을 보니 다시 가슴이 섬뜩해진다. 죽음을 흙 보탬으로 표현한 책도 있었다. 죽어서 한 줌 흙으로 이 대지에 보태어진다는 말인데 흙의 향기 운운하는 것보다는 한 수 위의 표현인 것 같았다.
너도 처의 행동을 좇아 가슴을 활짝 펴본다. 딸의 삶에 온 마음으로 몸흙이 되고자 했던 어미, 자식의 생애에 한 숟가락이라도 더 질 좋은 흙밥을 얹어주기 위해 제 몸을 혹사시켜온 여자가 바로 네 앞에 서 있었다.
황토 빛 흙가루들이 뿌옇게 하늘을 가린다. 함부로 뭉그지르고 파헤쳐진 논틀밭틀을 따라 건너 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알프스 산장 풍의 전원주택이 버티고 앉은 계곡 입구에 이르렀다. 너는 다시 처의 손을 쥐고 포장된 농로를 따라갔다.
버썩 마른 수꽃을 단 옥수숫대들이 일렬종대로 밭둑을 따라 풀 죽은 자세로 서 있다. 외딴집 입구로 올라가는 물매 싼 둑길에서 노인 한 분이 리어카를 끌고 내려와 앞을 선다. 졸래졸래 따라 나온 강아지가 꼬리를 깔고 앉아 내려다본다. 무릎 부위가 불쑥 불거진 밤색 코르덴바지를 걸쳤다. 얼룩무늬가 희치희치해진 예비군복 상의에다가 백발의 고수머리를 연녹색의 새마을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노인과 한 몸으로 느릿느릿 올라가는 리어카의 짐칸에는 농협직매장 상호가 선명히 찍힌 거름 포대 두 개가 단출하게 실려 있다. 낯익은 뒷모습이다. 보면 볼수록 전생의 어느 한 시공을 힘겹게 건너가는 너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딸의 목숨을 앗아간 과속 차량이 횡단보도를 휩쓸면서 남긴 스키드마크는 네가 찾아간 이튿날까지도 검은 핏자국과 열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굵은 쇠 굴대도 망가졌는지, 바퀴와 굴대를 연결시켜주던 새하얀 비녀장이 스키드 마크의 맨 끝부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국립대학의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을 전전하던 딸애는 공무원 생활이 갑갑하다면서 사표를 냈다. 퇴직금과 얼마간의 융자를 합쳐 사백여 세대 남짓 되는 아파트의 맨 아래층을 전세로 들어 어린이집을 열었다. 개원하고 보니 경쟁이 치열했다. 단지 내에도 어린이집이 두 곳이나 더 있었다. 딸애는 성심껏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날도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 하나를 큰길 건너의 연립주택에 데려다주려고 길을 건너다가 변을 당했다.
아이는 딸애가 온몸으로 감싸 안고 넘어져서 별다른 외상 없이 목숨을 건졌다. 정식교사였다면 훈장이라도 탈 만한 살신성인의 자세였지만 혼자서 벌인 사업인 탓에 칭찬은커녕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만 옴팡 뒤집어쓴 꼴이었다.
자본도, 능력도 없으면서 개나 소나 다 달려들어 죄 없는 어린 것들의 생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면서 학부모들은 거칠게 항의를 해댔다. 몇몇 모도리 아낙들은 장례식장까지 찾아와 선불한 납입금의 환불을 요구했다.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은 짓거리였다. 그중에서도 목대잡이로 나선 뚱뚱한 중늙은이 계집은 어찌나 목통이 좋고 몰강스러운 쇠고집인지, 아망난 목매기송아지처럼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몽니쟁이가 따로 없었다. 무도몰륜의 난장판이었다. 너 역시도 무지렁이 노릇을 포기하고 무지망작으로 목대잡이의 얼굴을 이마로 콱 박아 버렸다.
사순절 내내 금식으로 무릎을 꿇고 간구하던 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도 지금 커다란 슬픔의 덩어리를 한 짐 가득 싣고 아무도 모르는 생의 가풀막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을 것이었다.
유난스레 선명한 색상으로 눈에 들어오는 노인의 새마을 모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지금껏 단 한 번도 처의 몸에 꼭 맞는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인다.
너는 처의 손을 잡고 좁은 계곡으로 내려서서 영감이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올라왔다. 새카만 등피의 가재들이 오글거리는 웅덩이를 층층이 품고 있는 개울이 가느다란 물줄기를 용케도 유지하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는 지칫거리는 처를 부축하면서 시멘트로 말끔히 포장된 농로를 따라갔다. 방금 올라간 노인이 첫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길은 산속으로 난 농로답지 않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너의 탄생 이전과 지금의 네가 존재하는 이 시공을 위태롭게 이어주는 유일무이한 통로가 아주 잠깐 너에게 문을 열어준 것만 같았다. 너는 거기서 홀연히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슬픔은 오직, 보다 더 큰 슬픔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는 묵언이었다. 너무나 무서운 속삭임이었다. 더 큰 슬픔이라니, 그건 또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암담한 의문에 시달리는 너의 시야로 하얗게 빛나는 농로를 한 마리 일개미처럼 고물고물 기어오르는 영감의 모습이 다시 들어왔다.
이부쯤으로 짧게 쳐올린 아랫머리와 낡은 예비군복 상의와 밤색 바지는 희끄무레한 이내 속으로 곧장 흡수되어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보이지 않고 그의 뒤를 벗어던질 수 없는 숙명처럼 무겁게 매달려 끌려 올라가던 리어카만이 새롭게 목숨의 상을 부여받은 돌연변이 생명체인 양 꿈틀꿈틀 솟아올라 새로 구입한 것이 분명해 뵈는 새마을 모자를 연녹색의 작고 날카로운 눈동자처럼 이마 한가운데에다가 매단 채 초가을의 따가운 햇살 속을 끈질기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돌연히 부각되는 낯선 이미지들이었다. 일견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이는 풍경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세상에 뜻을 두었으나 사람에게 절망하여 가슴을 치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절실한 마음으로 던지게 할 것 같았다. 인간에게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
너 역시도 처의 손을 잡은 채 노인을 감쪽같이 흡수해 버리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허공을 향해 묻고 있었다. 우리네 인생에서 저 리어카와 그 위에 단출하게 얹힌 거름 포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걸 저리도 온 힘을 다해 무한 허공 속으로 끌고 사라진 노인은 또 누구일 것인가.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깊은 해저처럼 캄캄한 어둠의 벽으로 꽉 막힌 너의 마음속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솟아나지 않았다.
목이 탔다. 너는 수통을 내어 처에게 먹이고 너도 꿀꺽꿀꺽 마셨다. 새파랗게 깊어진 하늘이 거대한 깔때기의 바라진 입구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산과 구릉과 들판이 모두 다 엄청나게 깊고 넓은 아이스크림 콘cone 속에 박힌 땅콩이나 호두 조각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너희 부부는 너무도 미미하여 존재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엇하러 그리도 아등바등 애를 끓이면서 살아왔던가. 독한 회한도 구물구물 솟아나 네 마음의 어둠을 마구 덧칠하고 있었다.
너는 거기서 네가 화려한 명주잠자리의 삶을 꿈꾸어 온, 한 마리 개미지옥이었음을 절감하였다. 보다 호활하고 대범하게 처자식을 포용하면서 사랑하지 못하고 근거 없는 박탈감과 상실감에 사로잡혀 늘 쫓기듯 삶을 견뎌왔다는 자책감도 따갑게 솟아나고 있었다. 아비의 그 난해한 눈빛을 접할 적마다 딸애의 시간들은 얼마나 무겁고 거추장스러웠을 것인가. 아들을 고대하는 아비의 낯선 시선 속에서 딸아이는 단단한 각피 속의 투구 게처럼 갑갑한 시간을 살아냈을 것이었다.
사는 것과 삶을 견뎌내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일 터였다. 한쪽이 날개를 활짝 편 장수하늘소라면 다른 한쪽은 다리가 모두 끊어지고 목까지 비틀린 채 발랑 뒤집어진 투구 풍뎅이의 처지일 것이었다.
너는 대를 이어줄 아들을 학수고대했다. 가망 없는 줄 빤히 알면서도 딸이 얼쩡거리면 짜증을 내고 두 눈을 부릅떠 모처럼의 휴식시간마저 들쑤셔 놓았다. 너에게는 열 명의 딸보다 불확실한 꿈과 미래를 너 대신 짊어지고 묵묵히 가파른 생의 굽잇길을 올라가 줄 단 하나의 아들이 필요했다. 차마 못할 노릇이지만 너는 딸을 잃은 이 순간에도 그런 아들을 걸쌈스럽게 찾아 헤매고 있었다. 너의 딸은 아비의 이런 속마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너는 딸의 죽음 앞에서 구제불능의 이중인격자였다. 못 말리는 옹춘마니 놀부였던 것 같았고 비정한 철가면 속에 야마리 없이 깊숙이 은신한 비겁자이었던 것만 같았다. 죽은 딸이 아비인 너에게 남긴 것은 예리한 미늘창으로 네 마음을 후벼대는 죄의식이었다. 너희 부부는 나날이 날카로워지는 예리한 날을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심신으로 안간힘을 다해 견뎌내는 중이었다.
네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술이었다. 차가운 한 병의 소주만이 마음의 감옥에서 너를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유예된 상태였다. 나날이 흉해지는 피해의식만이 시커멓게 탄 불당그래처럼 가슴 속의 불덩어리들을 밤마다 헤집어 대고 있었다.
너는 처의 손을 쥔 채 딸아이가 들어선 영원의 문을 생각했다. 수시로 낯선 바이브레이터처럼 솟구쳐 오르면서 너의 마음을 휘젓는 죄책감과 죽음에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었다. 진동의 폭이 커질수록 마음 깊이 봉창질 해둔 기억들도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너는 처의 어깨를 안으면서 안색부터 살폈다. 그녀의 퀭하게 열린 눈동자 속에서도 쪽빛 하늘과 흰 구름은 한없이 평화스럽게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눈물이 팽 돌았다. 너는 모든 것을 네게 맡긴다는 듯 우두망찰한 낯빛으로 서 있는 처의 볼을 가만히 감싸 쥐면서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영원의 문은 멀리 있지 않았다. 늙은 처의 찔꺽눈이 바로 그것이었다.
너의 처도 뭔가를 감지한 듯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볼을 가만히 쓸어주고 있었다. 너는 번들거리는 처의 눈동자 속에서 너 자신의 진면목을 보았다.
네 처의 눈동자 속에 든 너는 아주 작은 눈부처였다. 하나의 까만 점처럼 박힌 그것이 영원의 문 바깥을 서성거리는 너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웃음을 잃어버린 늙은 처의 오련한 눈동자 안에서 울밀한 산야와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점 티끌로 박힌 너는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존재였다.
저 이는 저 몸으로 어떻게 생업을 꾸려 나아가면서 자식들을 길러 예까지 온 것일까. 너는 뜨겁게 치솟는 연민의 감정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열기를 느꼈다. 너의 처도 초라하게 늙은 남편의 눈동자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동자부처를 본 듯 촉촉이 젖어오는 눈길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 마음을 다 알고 있으니 두려워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행하라는 신호였다. 너는 그 믿음 앞에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너의 처는 말없는 말로 네게 말하고 있었다. 노인이 리어카에 싣고 올라간 것은 비료 포대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귀한 사람의 마음을 가득 싣고 올라갔을 것이라는 속삭임을 너는 늙은 처의 맥없는 손길을 통해서도 듣고 있었다.
너희 부부는 영화 속의 젊은 연인들처럼 산기슭 아래의 호젓한 들길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오랫동안 서있었다. 아득한 햇살의 미로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 같은 나른함이 너의 마음을 가만한 손길로 다독거려 주고 있었다. 한 뿌리의 같은 줄기에서 솟은 두 송이의 상사화처럼 너희는 서로의 눈 속에 박힌 동자부처를 응시하면서 꼼짝 않고 서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두둥실 떠올라 따갑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역류하여 머나먼 천궁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산 아래를 엷은 띠처럼 에두른 푸른 보랏빛 대기 속에서도 싱그러운 바람은 간단없이 불어와 한껏 감상에 젖은 너희 부부의 마음을 수수꾸듯 희롱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네 처의 주름 많은 볼로도 우련한 붉은 기운은 새벽 물안개처럼 수줍게 피어나고 있었다.
처의 눈을 통해 우연스럽게 대면한 눈부처였으나 태어나기 전부터 너를 지켜봐 온, 본래의 너 자신인 듯 잊히어지지 않고 네 안에다가 굳건히 똬리를 틀었다. 반갑기도 하고 까맣게 잊고 지내온 첫사랑 연인의 해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는 대면이었다.
인생의 모든 근심과 슬픔이 그로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너는 자주 눈부처를 향해 물었다. 지금의 이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이 과연 무엇이냐고. 그러나 그에게서는 언제나 그랬듯 아무 대답이 없었다. 너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너 자신의 분신을 만나기 위해 가끔씩 처를 안고 그네의 눈동자를 그윽이 들여다보곤 했다.
그는 너 자신이 분명했지만 희한하게도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는 작았다. 강변의 모래알보다도 더 작게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힘이 세고 키가 커도 타인의 눈 속에서는 누구나 다 보잘 것 없는 눈부처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출세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너 역시도 타인의 눈 속에 들어가서는 무르익은 늦가을 햇살 속으로 톡톡 튀어 올라 떨어지는 깨알처럼 작은 존재일 뿐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뜻하지 않게도 밤마다 새파랗게 날을 세워 일어서는 자책과 자괴의 감정을 너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눅여주고 있었다.
동자부처를 인식하기 전의 네 꿈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악몽이었다. 너는 자주 검은 거머리 떼에게 살을 뜯기고 피를 빨리는 악몽에 시달렸다. 삼천 원짜리 잔치국수에 올리는 소박한 알반대기 채를 보면서도 그 섬뜩한 이물들을 떠올리곤 했다. 어쩌다 올려다보게 되는 만월 속의 얼룩점을 보면서도 너는 네 안에서 구물구물 솟아나는 흡혈 거머리 떼의 집요한 몸부림을 생각했다. 삶을 긍정하는 힘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오비어 대는 흉물이었다. 딸의 죽음이 몰고 온 죄책감은 매일매일 흉측한 이물로 증식되면서 너를 끝없는 불면과 자학적인 음주행위 속으로 몰고 갔다.
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된장찌개가 일품인 정식차림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주문이 밀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영감님. 여기 국하고 김치 좀 더 주세요.”
한 자리 치우고 빈 그릇들을 모아 돌아서는 너에게 옆 테이블에서 중년사내가 청한다. 너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타인의 호감으로 먹고 살아온 자의 버릇이었다.
오늘도 사위는 나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본인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졸지에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너는 자식처럼 아끼고 의지해온 사위에게서도 훌쩍 멀어진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라도 무심함과 게으름을 탓하는 꾸중으로 오해할까 싶어서 사소한 안부조차도 묻기가 저어되었다.
너는 자주 소주병을 내어 잔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이 아니더라도 눈을 뜨는 새벽 댓바람부터 어김없이 비워내게 되는 술이었다. 모든 것이 다 사막의 신기루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생의 기쁨과 환상을 한껏 부풀려 주었던 시간마저도 냉혹한 때림도끼로 변하여 너의 메마른 가슴을 밤마다 쪼개고 부수면서 더욱 더 깊숙이 박혀 들고 있었다. 달콤했던 딸 내외와의 추억도, 가슴 뭉클했던 따듯한 미소와 부드러운 음성도 가뭇하게 잊히어지고 있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마저도 허위와 위선의 가면이었던 것만 같은 자학의 나날이었다. 그 허망한 슬픔의 늪지대 위로 망설임 없이 부어지는 것들은 독한 술이었다. 오로지 술로 견뎌온 시간들이었다. 허물없이 지내온 친구들과 이웃들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고 고맙게 여겨지는 것도 술이었다.
주방 입구의 벽거울로 너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손님들의 시중을 가장 성실히 들어주어야만 하는 식당 주인으로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이따금씩 시선이 마주쳐도 너는 너를 보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듯 무심한 눈길만을 아주 잠깐 줄 수 있을 뿐이었다. 누르스름하게 색이 바래가는 쟁반 위에다가 국그릇과 김치보시기만을 기계적인 동작으로 올려놓으면서 너는 저것 또한 분명코 내 진짜 얼굴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게 된 가면임이 분명하다고 스스로를 부정하곤 했다.
너는 너의 움직임을 좇아 집요하게 매달리는 거울 속의 시선을 끝까지 외면한다. 부드러운 계란형 면상面相으로 덕이 넘치는 보살상이라는 평을 얻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탐스러웠던 볼 살도 쏙 빠져 움푹 꺼진데다가 눈 아래의 살가죽도 서너 겹으로 접힌 채 축 쳐져서 부드럽고 원만한 인상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극심한 탈모현상도 일어 아침마다 베갯잇이 허옇게 변했고 가슴과 어깨와 허벅지와 엉덩이에서도 살이 쑥쑥 내려 속옷부터 양복바지까지 모든 게 다 헐렁해졌다. 손이 가고 시선이 머무는 몸뚱이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잡혀지는 것들도 거친 주름살과 탄력을 잃은 살가죽들뿐이었다.
너의 처는 급격히 쇠약해지고 추레해지는 남편의 몸 상태를 안타까워하면서 자기만 아는 한숨을 가만히 내쉬곤 했다. 영업을 마치고 한꺼번에 몰려온 노곤함에 짓눌려 네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너의 처는 또 소리 없이 다가와 훌쭉해진 볼의 주름을 안타까운 손길로 쓸어주곤 했다.
너는 그때마다 눈을 감고 자는 체하면서 죽음과 행복이라는 상반된 관념과 함께 솟구치는 설움 덩어리를 먹먹한 심정으로 남모르게 삭여내야만 했다. 수십여 년을 지속시켜온 부부생활마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맡게 된 임시방편의 역할대행인 듯 귀찮고 하찮은 것으로 나날이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내는 네 처의 손은 늘 물에 젖어 있었다. 마디마디가 모두 조금씩 휘어지고 단단하게 굳은살까지 밴 손가락들이어서 막노동에 시달려온 사내들의 그것들처럼 두툼하고 거칠었다. 온갖 양념 냄새까지 깊숙이 육화肉化된 손이어서 눈을 감으면 어릴 적에 옆집 계집애들과 자주 소꿉을 놀았던 장독대에라도 나와 앉은 것 같은 애잔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했다.
너의 처도 남편의 이런 마음을 다 읽고 있는 듯 가끔씩은 혀까지 끌끌 차면서 안타까운 손길로 너의 가슴을 어루만지다가 덥석 물고 흔들면서 흥흥 새끼를 어루꾀는 어미 여우처럼 장난을 치기도 했다. 너의 처도 장독대 앞의 놀이터에서 자주 신랑각시 놀이를 벌였던 옆집 계집애들 중의 하나였다.
너의 처도 수시로 열꽃이 피어나는 고열에 시달렸다. 냉장고 안에는 새하얗게 언 수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너희 부부는 밤마다 너희들의 영혼처럼 꽁꽁 언 그것들을 내어 서로의 몸을 닦아 주면서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냈다. 너는 매일 소주에 취했다.
어느 날인가, 한밤중에 안주도 없이 들이킨 양주에 취해 앉은 채로 말뚝잠에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처가 보이지 않았다. 찌뿌드드한 몸을 풀면서 거실로 나오니 만귀잠잠한 시각임에도 딸이 시집가기 전에 썼던 방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반쯤 열린 문을 통해 형광등 불빛이 어두운 거실의 카펫 위로 길게 흘러들어 빙판 위에 고인 물처럼 번들거렸다. 처의 들피진 등이 반쯤 눈에 들어왔다. 동지를 맞은 제웅처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뒤태였다. 낯익은 집안이 분명한데도 사람을 너무나 건혼나게 하는 분위기였다.
마른 겨릅대처럼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은 처가 두툼한 앨범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숨 죽여 울고 있는지, 가냘픈 어깨도 들썩거렸다. 너의 처는 앨범 위에다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다시피 집중한 채로 가위질을 하여 잘게 잘라낸 것들을 입에 넣고 올공거리고 있었다. 마른 고구마 조각이라도 녹여먹는 것 같았다. 무슨 짓인가, 이 한밤중에. 너는 기연미연하면서도 어마지두해지는 심정으로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한밤중에 죽은 딸의 방에 들어가 무얼 저리 진지하고 심각하게 들여다보면서 먹고 있단 말인가. 낫공치처럼 잔뜩 숙여진 등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풍겨났다. 얼른 들어가서 살펴줘야 할 것인데도 망설여졌다. 메마른 어깨에 손을 얹으면 대번에 한 줌 재로 변해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너는 조심스럽게 돌아섰다.
날이 밝자 말자, 너의 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당으로 나아갔다. 너도 평소처럼 일손을 돕다가 한가한 오후 시간에 집에 돌아와 딸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눈에 익은 것들도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너는 담배를 피우면서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앨범을 무심코 펼쳐 보았다. 딸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사진들이 수줍게 나타났다. 흑백 사진 한 장이 낙엽으로 떨어지는 오동나무 잎사귀처럼 소리 없이 날아 내렸다. 딸의 첫 소풍을 기념하면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그런데 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너희 부부가 아이를 앞에 앉히고 찍은 사진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가 예리하게 도려내져 뻥 뚫려 있었다. 딸아이의 목 위에 올라앉은 것은 낯익은 얼굴이 아니라 검은 구멍이었다. 뭔가를 끊임없이 올공거리던 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진 속의 딸은 얼굴도 없이 한 손으로는 솜사탕 막대기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인지와 중지를 세워 브이 자를 내보이고 있었다.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메트로놈이 낯선 소리를 규칙적으로 토해내면서 전혀 다른 시공을 직조해 내는 것 같았다. 구멍 난 사진은 한두 장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다 찍힌 장조카의 결혼기념 사진에서도, 너희 부부와 딸 내외가 함께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에서도 딸의 얼굴은 말끔히 오비어내져 있었다. 소름이 쪽 돋는 전율이 솟아났다. 머릿속이 휑하니 비어가고 심장의 박동 소리도 빨라지고 있었다. 너는 얼른 앨범을 덮고 방을 나왔다. 너의 안에서는 무수한 감정들이 낯선 형상으로 마구 솟구쳐 올라 아가사리 끓듯 했지만 너는 정작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너는 오디오가 들어앉은 콘솔 박스 아래의 서랍에서 혈압 약을 내어 물도 없이 서둘러 삼켰다. 서너 번을 우려내 먹은 대추 물처럼 누르스름한 물기에 흥건히 젖어 있던 너의 두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지고 있었다.
국과 김치를 겸손한 어투로 청한 사내는 굵직한 저음의 소유자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살집이 눈에 보지 않는 둥근 테두리처럼 턱살을 좇아 보기 좋게 솟구쳐 올라 있어서 일견 무척 둔해 보였다. 식당 뒤쪽의 인테리어 시공사에서 타일 공으로 밥을 먹는 오성일 씨였다. 그는 요 며칠 야간작업으로 과로를 한 탓인지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낯이었다. 너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 김치와 콩나물국을 넉넉히 담아 가져다주었다. 사내가 특유의 어투로 머리까지 숙여 보이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지만 너는 혹시라도 사위의 안부를 물어올까 싶어 서둘러 돌아섰다.
너는 너의 딸이 생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던 아이였다. 공부, 운동, 놀이, 여행, 음악, 미술, 웅변 등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는 소리가 아깝지 않던 아이였다. 너의 딸은 먹는 것도 잘 먹었고, 잠도 잘 잤고, 키도 컸고, 한 미모 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뭐든 활짝 열린 마음으로 즐기는 아이였다. 검도, 유도, 태권도, 합기도의 단증을 모두 합산하면 6단이나 된다고 사내아이들과도 당당히 맞장을 뜨던 아이였다. 고교 시절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하여 민첩한 순발력과 탄탄한 근육을 소유한 미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너의 딸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몸 쓰기를 좋아했고 사람 사귀기도 즐겼다. 성취욕도 강해 뭐든 했다하며 끝을 보는 성미여서 공부와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너는 딸을 대할 때마다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해 가슴을 치면서도 생을 찬미하는 웅장한 찬송가 소리를 듣곤 했다. 무신론자였지만 너는 자주 하늘을 우러러 남모르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너의 딸은 고교 이 학년 때에 사위를 제일 좋아하는 남자 친구라면서 집에 데려왔다. 장신에 단아한 용모였으나 왠지 모르게 짙은 그늘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갓난아기 적부터 고아원에서 성장했다고 했다. 생각과 언행이 조숙했고 자제력도 상당해 보였다. 가끔씩 본인도 모르게 드러내는 우울한 눈빛이 몹시 꺼려졌다. 생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고민하는 눈이었다.
일요일이면 딸은 가끔씩 소년의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아들의 식사가 형편없다고 투덜거리더니 요리학원에 등록하겠다면서 손을 내밀었다. 너의 딸은 그 해 봄 내내 실습한 결과물이라면서 어설픈 모양의 케이크며 떡이며 탕수육 같은 것들을 일회용 용기에 담아 가져왔다. 가끔씩 앞치마까지 두르고 자장면에 비빔국수 같은 것을 만들어 내놓는 폼이 고아원에 가서도 자주 원아들에게 요리 솜씨를 자랑하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영감님. 뭐든 이렇게 다 푸짐하고 넉넉하게 내주시니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갑자기 들려온 덕담에 너는 또 화들짝 놀라 얼른 정신을 수습했다. 여러 사람 사이를 쉼 없이 오가면서도 어떻게 그리 현실을 깜빡 잊게 되는지 덜컥 겁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런 망아의 지경에 처해서도 손님이 청하면 별다른 동요 없이 물병과 물수건을 가져다주고 반찬과 국까지 날라다 주었으니 어느 것이 진정한 너인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너를 현실로 이끌어 준 이는 고물상 사장 김용환 씨였다. 그는 주발 뚜껑에다가 갈치토막을 덜어내어 꼼꼼히 발라먹는 중이었다. 몇 번 배달을 나아가 본 적이 있는 고물상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눈에 어렸다. 엄청난 높이로 집적해 놓은 갖가지 종류의 고물과 폐지가 모든 것을 단숨에 압도해 버리는 곳이었다.
김 사장과 평생의 라이벌이라는 윤판용 씨의 음울한 눈빛과 완강한 몸집도 얼핏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두 사람 다 못 말리는 뿌다구니 성격으로 서로를 함부로 훌닦으면서 야마리 없는 잡살뱅이로 취급하고 있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뱅충이, 둔패기. 무지렁이라고 서로를 몰아세우면서 거품을 뿜어내는 꼴을 대하고 있노라면 보고 듣는 너의 눈과 귓속까지 한껏 친친하고 던적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김 사장의 훌렁 벗겨진 이마에서 맑은 땀방울이 방울방울 끊임없이 솟아올라 반짝거린다. 참으로 드넓은 이마였다. 그의 국 그릇 옆에는 땀을 닦아낸 휴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식당에서 내주는 물수건은 모두 다 세균 덩어리라면서 쳐다보지도 않는 이였다. 아무리 삶아 빤 것이라고 강조해도 마이동풍으로 휴지만을 통째로 요구했다. 대단한 고집이었다. 정이나 미안하면 얼음이 둥둥 뜨는 육수로 말아낸 냉면을 먹으면서도 팥죽 땀을 줄줄 흘리는 반편이라고 과장되게 엉너리를 치면 쳤지 한 번 먹은 보짱은 바꾸려 들지를 않았다. 땀방울이 한창 솟구쳐 오르는 그의 널찍한 이마를 내려다보며 지나치려니 폭염 아래에서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소금밭이 떠올랐다.
너는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땀과 양념으로 뒤발한 채 꾹꾹 뭉쳐 쌓여 있는 휴지덩어리를 조심스럽게 들어내 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다가 새 물수건을 세 개나 놓아 주었다. 그제야 그도 전과 다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옴팡눈으로나마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십대 후반의 나이인데도 어찌나 목청이 좋은지 마주하고 앉으면 땅 속 깊이 묻힌 콘크리트관 속에라도 들어앉은 것 같았다. 정력가로도 소문이 자자하지만 부부간의 금실은 좋지 않았다. 숱한 외도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남편 못잖게 그의 처도 만만치 않은 여걸 풍이어서 한 번 부딪치면 불협화음이 요란스레 오래갔다. 몸집과 씀씀이와 배포가 어찌나 닮았는지 겉보기로는 천생연분이었으나 둘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상대의 가슴에다가 깊은 상처를 겁도 없이 내주고 있었다. 칼로 입은 상처는 쉬 아물어도 말로 당한 아픔은 오래오래 간다는 속담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부부였지만 오히려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면서 각자의 삶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작은 규모의 인테리어 회사와 노후 주택을 개조, 수리하는 영세 설비공사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바쁜 시간대를 피해 몰려오는 이들이라야 계모임을 끝낸 주부들이 대부분이었다. 먹성도 좋고 엉덩이도 바윗덩이처럼 무거워 그네들이 일어서면 음식물 쓰레기가 커다란 봉지로 하나 가득 나왔다. 아무리 바빠도 할 말은 다 해야 일어서는 이들이어서 감정의 기복도 심했고 선호도도 칼날 같아서 조금만 눈치가 이상해도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 모든 사소한 일상들이 오히려 너에게는 마지막 끈 같은 것들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다가 너의 목숨을 묶어 놓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 노릇을 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너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고마웠다.
너는 상 위로 상체를 길게 숙여 빈 그릇들을 모으면서 주방에서 한창 바쁘게 땀을 쏟고 있을 처를 생각했다. 네 처의 얼굴은 항아리손님을 맞이한 듯 늘 고통에 짓눌린 표정이었다. 너희 부부는 자식의 장례를 치른 후부터 심각한 실어증에 시달렸다. 아주 쉬운 단어와 단순한 문장도 전처럼 발음해 낼 수가 없었다. 상대와 시선이 마주치게 되면 그가 누구이건 간에 배꼽노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가슴이 후들후들 떨렸다. 아무 탈 없던 혀도 뻣뻣하게 굳어져서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서 대문니로 아랫입술만 자근자근 씹어대야 했다. 간단한 음식주문에도 너는 흠칫 놀라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들어줄 수 없는 주문도 거절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주방으로 들어와 손님을 하세월로 기다리게 하기도 했다.
너는 자주 참혹한 자기 환멸의 감정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렸다. 몸은 늘 피곤에 절어 있었고 술에 절어진 정신도 갈수록 흐리마리해지고 있었다. 친구도, 친척도 하나둘씩 소원해지다가 연락이 끊겨 너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런데도 너는 사람 만나는 것을 일삼아 피했다. 사람을 만나면 꼭 상처를 입게 된다는 강박관념도 예민하게 날을 세워 너를 더욱 더 깊고 좁은 너만의 굴속으로 몰아넣었다. 휴일에도 너는 집에서 쉬지 못하고 식당으로 나와 아무도 없는 좁은 실내를 술에 취해 슬리퍼가 닳도록 맴돌았다.
설비공사 팀이 일어선다. 너는 서둘러 다가가 그릇들을 모으고 상을 닦아냈다. 아무도 올려다보지 않는 텔레비전에서 사십대 부부가 빚에 몰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를 데리고 극단의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아이엠에프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라는 전문가의 견해도 이어진다. 헐벗은 야산을 배경으로 외롭게 서 있는 봉고차 앞에서 차분한 음성으로 사연을 전하는 여기자는 젊고 아름다웠다. 가장이 남긴 유서에는 빚을 갚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너무 죄송하다는 글자들이 혈서처럼 박혀 있었다고 기자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너도 한때는 절망에 빠진 처를 태우고 수도 없이 낯선 길을 헤매고 다녔다. 외진 곳에다가 차를 세우고 우두커니 들어앉아 있으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쉴 수도 없었다. 너희는 너희들 자신마저도 믿을 수가 없었다. 두렵고 혼란스러운 세월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꾀를 내어 차를 버리고 시내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식당 앞의 버스 정류장에는 시 외곽으로 나아가는 시내버스가 많았다. 너희 부부는 그것들 중 아무 것이나 올라타고 종점까지 가서 낯선 산야를 피곤에 지쳐 주저앉을 때까지 돌아다녔다.
제일 두려운 건 방문과 창을 모두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밤 시간대였다. 불도 못 끄고 서로의 손만을 꼭 잡고 누워 있으면 세상 모든 이들이 너희 부부가 선택할 극단적인 행위를 이제나 저제나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밤중의 방안에 누워 있는 것이 차를 몰고 낯선 곳을 돌아다닐 때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길게는 한 시간, 짧게는 삼십여 분만에 가 닿는 시골마을의 종점은 어디나 할 것 없이 쓸쓸할 정도로 한적했다. 너희 부부는 외진 산속 폐가의 박공 위로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열쭝이들처럼 서로의 손만을 꼭 쥔 채 악착같이 붙어 다녔다. 낯선 산속에서 길도 여러 번 잃었지만 전망 좋은 언덕이나 나무 아래의 양지바른 바위라도 만나면 등을 바싹 붙이고 퍼질러 앉아 저마다 도리암직한 자태로 의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생을 영위해 나아가는 초목들을 한참씩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런 평화와 여유는 오래 가지 못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너희 부부의 눈에 자주 들어온 것은 다람쥐를 산 채로 움켜쥔 채 뜯어 먹는 청설모였고 커다란 지렁이의 몸에 새카맣게 달라붙은 개미 떼였다. 소박한 시골 마을의 야산도 치열한 생존의 각축장일 뿐이었다. 아주 여린 잎사귀 하나, 풀잎 한 줄기에도 피비린내 나는 사투가 숨겨져 있었다. 딱따구리 둥지를 습격하여 털도 안 난 새끼를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쪼아 갈가리 찢어 먹는 까치도 보았다. 풀 섶 둥지에 소복이 담긴 메추리알을 한순간에 삼켜 버리고 의기양양하게 사리지는 먹구렁이도 보았다.
끔직한 광경을 접할 때마다 너의 처는 무섭다고 속삭였다. 이곳도 우리가 편히 마음을 쉴 곳이 아닌 것 같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자고 졸랐다. 그러나 너는 괜찮다고 말했다. 저것들이나 우리나 모두 똑같은 처지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 처지이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도망칠 이유가 조금도 없다고 너는 처를 달랬다. 숨이라고요? 너의 처가 무슨 영문이냐는 듯 의아한 시선으로 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 괸 눈으로 희미한 미소를 내보였다. 너도 마른 짚단처럼 가벼워진 처의 몸을 힘주어 안으면서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바싹 야윈 몸이었지만 가녀린 뼈와 뼈 사이를 뭔가가 한없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 어떤 이해 불가의 상황에서도 저 홀로 끊임없이 이어져 나아가는 목숨 줄인 것만 같았다.
이때부터 너희 부부는 참혹한 광경을 접하게 될 때도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숨, 하고 가만히 발음하면 답답했던 가슴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너는 말 못하는 짐승의 절망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 너 자신의 가여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숨이 일깨워준 긍정적인 생의 의미를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의 처도 마찬가지인 듯 보지 않아도 좋을 자신의 내면을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본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면서도 너의 시선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한 번은 갓 부화한 새끼들을 일곱 마리나 거느리고 이소하는 어미 까투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아직 날개 죽지도 나오지 않은 새끼들은 난생 처음 보는 세상 풍경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내달렸다. 어미는 애가 달아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새끼들을 불러 모으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잔뜩 긴장하여 새끼들을 돌보고 사방을 경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조금만 방심하면 새끼들을 모두 잃을 판이었다.
너희 부부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어미는 얼마나 급했는지, 너희 부부가 앉아 있는 것도 모르고 서너 걸음 앞을 전전긍긍 새끼들을 몰아대면서 지나갔다. 안타깝고 애처로우면서도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넉넉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모성의 의연한 자태였다. 네 처의 얼굴에서도 모처럼 따듯한 미소가 아침 햇살을 맞이한 호수의 잔물결처럼 반짝거렸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어미 새의 위기는 다른 목숨들에게 절호의 생존 기회였다. 한 줄기 검은 빛이 화살처럼 내리꽂히는가 싶더니 통통하게 살진 까마귀가 새끼 하나를 순식간에 낚아채어 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놀란 어미 까투리가 악을 써 울어대며 까마귀를 쫓아 날아오르니 기다렸다는 듯 높이 솟은 상수리나무에서 청설모가 쪼르르 달려 내려와 뒤에 쳐진 새끼를 덥석 물고 사라졌다. 곧이어 물수리와 새매와 황조롱이들이 차례로 달려들었다. 새매와 황조롱이는 부부인 듯 각기 한 마리씩 익숙한 솜씨로 낚아채서는 기꺼운 날개 짓을 퍼덕거리면서 사라졌다. 네 처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는 처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았다. 너무나 비정한 현실이었다. 누군가의 곤경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기회가 되는 곳이 이 땅의 생리였고 질서였다.
어미 까투리가 숨이 턱에 차 돌아왔을 때에 일곱 마리나 되던 새끼들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새끼를 부르는 어미의 애타는 울부짖음만이 비바람에 찢겨 흩뿌려진 배롱나무의 붉디붉은 꽃잎처럼 검은 땅 위로 점점이 박히고 있었다. 너희 부부는 어미 까투리가 날아갈 때까지 서로의 동계動悸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꼭 껴안고 있었다. 마침내 어미 까투리도 비통한 울음을 길게 토해 내면서 사라졌다.
너희 부부는 그 텅 빈 공허를 응시하면서 양손을 깍지 낀 채로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비통한 울음 속으로 아득히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현기증이 솟아났다. 울컥 솟구친 울음도 목울대를 꽉 짓누르고 있었다. 딸아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처음으로 너의 몸에서는 맹렬한 성욕이 끓어올랐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욕망이었다. 살아야 한다는, 아니 반드시 살 수 있다는, 근거 희박한 자신감도 비명 한 마디 내지르지 못하고 사라진 일곱 마리 새끼들의 모습으로 떠올라 너를 부추기고 있었다. 네 처의 눈에서 솟은 더운 눈물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들었다. 너는 얼굴을 들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처의 눈 속에 까투리 새끼처럼 아주 조그맣게 숨어 있는 너 자신의 눈부처를 홀린 듯 들여다보았다. 너희 부부와 죽은 딸이 모두 다 그 일곱 마리 열쭝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목숨들인 것만 같았다.
이튿날 너희 부부는 아무런 사전 약속도 없었지만 예전처럼 일찍 일어나 새벽시장을 보러 나아갔다. 이른 아침부터 주방에 들어 바쁘게 돌아치는 처를 도와 너도 식당 안을 구석구석 쓸고 닦으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딸의 49제를 치르고 나서도 근 달포의 시간이 무딘 칼날처럼 너희 부부의 달창난 가슴을 난도질하면서 지나간 후였다.
전업사電業社 인부들이 들이닥치고 식사를 마친 한 무리의 회사원들이 일어선다. 너는 나가는 이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네고 들어오는 이들을 위해 생수통과 컵과 물티슈를 내어 쟁반으로 하나하나 옮겨 담았다.
누군가가 스테인리스 주발 뚜껑을 떨어뜨렸는지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난다. 너의 딸도 주말에 가끔씩 나와 식당 일을 도울 적이면 자주 밥주발과 접시를 떨어뜨렸다. 그때마다 너의 처는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좇아 나와 딸의 몸부터 살폈다. 딸은 임신 중이었다.
혼자서 정식차림을 받고 앉은 손님이 달력이 걸린 벽 쪽으로 바투 들이대어 설치한 탁자 위로 주발 뚜껑을 올려놓는 게 눈에 들어온다. 낯선 얼굴이었다. 별거 아닌 자동차 소음에도 깜짝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면서 숨을 곳부터 떠올리게 되는 증상도 너희 부부가 새로 얻은 마음의 병이었다. 애청하는 연속극을 보다가도 너의 처는 자주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까짓 소음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식당 안을 가득 채우다시피 모여 앉아 묵묵히 먹는 일에 몰입해 있는 사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감동이 밀려온다. 아무리 뭐가 어떻다고 부정해도 삶은 여전히 소중한 것이고 그것을 최후의 순간까지 지탱해주는 밥도 대체 불가능한 불변의 가치라는 것을 그들은 말없는 말로 웅변하고 있었다.
한 끼의 밥 앞에서는 죽음마저도 무릎을 꿇는다. 지위와 권세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뼈저린 상실감 속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허기가 인다. 목숨의 본래 모습만이 의연하게 솟아올라 하늘이 되고 산이 되고 사람으로 변해 이 세상을 힘차게 꾸려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생김새가 제 각기 다른 얼굴들이지만 함께 밥을 먹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신없이 먹어대는 저 침묵 속의 얼굴들이 왜 이리도 경이롭게 다가서는 것일까. 너는 다시 무척이나 헌걸찼던 딸의 살아생전 모습을 그려본다.
숲 속의 까투리 가족도 생각났다. 그 가엾은 일곱 마리 새끼들도 누군가에게는 죽어가는 목숨을 회생시켜주는 밥이었을 것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밥을 먹을 때면 모두가 같은 목숨이다. 딸도, 너희 부부의 얼굴도, 까투리 가족과 까마귀와 물수리와 청설모와 먹구렁이도 그들 사이에 껴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앞앞이 놓인 밥과 국에서 솟구치는 열기와 시샘하듯 후후 불어대는 입김과 경쟁하듯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까지 똑같다.
수많은 인총들과 제 각각의 형상으로 목숨을 부여받은 숱한 생명들이 정답게 모여 앉아 우주라는 큰 유리그릇에 담긴 아름다운 이 행성을 아이스크림 속에 박힌 달콤한 초콜릿처럼 오물오물 녹여먹는 것만 같다. 오늘의 시간을 떠받치고 있는 하찮은 일상마저 소중하고 눈물겨운 축복의 선물로 다가온다.
살아야 한다. 딸의 몫까지 반드시, 꼭 살아내야 한다는 다짐의 소리도 다시 울려난다. 너는 열심히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추가 주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먹고 마시는 흥겨움에 식당 건물마저 크게 한 번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 같았다.
▶박종관_ 199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작품집 『길은 살아있다』, 『제3지대』. 김용익 소설문학상 수상.
- 이전글65호/고전읽기/권순긍/새로운 시대를 향한 날카로운 메시지 17.10.13
- 다음글65호/미니서사/김혜정/나타샤 17.10.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