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6호/특집/시와영화/김유석/동사서독東邪西毒
페이지 정보

본문
특집
시와영화
김유석 (시인)
동사서독東邪西毒
-영화 『동사서독』과 시 「동사서독」
떠날 수 있는 이의 행장은 가벼우리.
무거운 것은
먼지와 고요, 햇빛.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꾼 적 있는 꿈을 다시 꾸는 일.
피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홀린 이들이 스치듯 마주치는 사막여관.
동쪽 언덕에서 기다리는 처녀는 베일보다 긴 머리칼로 표정을 다 가렸다.
썩지도 부화하지도 않는 계란 한 바구니와 여윈 당나귀가 지키는 하염없는 기다림, 복수.
너는 바람을 벤다. 날 선 장검으로 눈물의 한가운데를 벤다.
밤의 이슬점에 닿기 전에 증발해 사라지는
복사꽃 폭포. 꽃잎 대신 피가 묻어있는 칼날.
숨을 곳 없는 고요가 죽은 나무 밑동에 취생몽사의 졸음을 쏟는다.
환각의 칼끝이 잠을 스칠 때
피복이 벗겨진 햇살에서 불꽃이 튄다. 세월이 탄다.
지워지는 모래의 문지방들.
다른 곳에서는 여자와 나와 기다림이 같은 운명으로 늙어간다.
깨진 칼날이 다시 거울이 된다.
―박정대 「동사서독」, 시인세계 2010 봄호
“얼마 전에 어떤 여자가 술 한 병을 주었는데 술 이름이 취생몽사醉生夢死야. 마시면 지난 일을 모두 잊는다고 하더군……. 인간이 번뇌가 많은 건 기억 때문이란 말도 하더군.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 매일이 새로울 거라 했어.”
이것은 무협극이 아니다. 이 영화는 기억에 대한 쓸쓸한 묵시이다. 그 기억은 상처의 흔적이며 그 흔적은 사랑, 또는 연緣의 잔상들이다. 여차하면 시시껄렁해지거나 난해할 수도 있는 주제를 무협 형식에 입혔다. 상영된 지 이미 오래여서 평자들과 마니아들로부터 충분한 평을 얻은 터, 따로 사족을 달 여지가 별로 없지만 다시 볼수록 주관적 해석이 열려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자체로서의 줄거리나 플롯, 미장센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는 점에 주안해서 즉, 시와 연관해 재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영화라는 얘기다. 그 몇 가지를 짚는다.
상처 난 기억들을 하필 무협극에 적용한 까닭이 우선 새롭고 모호하다.
웬만한 무협마니아들이라면 『동사서독』(Ashes of time, 리덕스 : 왕가위 감독, 2008)이 ‘김용金庸’의 대하무협소설 『사조영웅전射調英雄傳』의 일부분임을 알 것이다. 우리나라엔 『영웅문』으로 소개되었었고 한 시절 풍미했던 많은 무협물들이 그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책의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다. 구양봉(동사), 황약사(서독), 독고구패 등 인물들만을 모티브 했을 뿐 주제와 스토리, 배경 등은 많이 동떨어져 있다. 『영웅문』에서 절대고수들인 이들이 여기선 모두 사랑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제작 당시 유행하는 테마였던 무협극들을 염두에 두었을지 감독의 의중이야 알 수 없겠지만 아마 주제에 밀착해서 고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동적인 대다수 무협물에 비해 이 영화는 좀 지루할 정도로 정적이다. 무협활극인 줄 알았던 많은 마니아들을 실망시켰을 만큼 정적인 데에는 주제와 관련이 깊다 할 것인데, 이를테면 고전무협을 설정하고 그것을 정적으로 전개시킨 까닭은 ‘기억’과 연관해서일 것이다. 지난 일로부터 비롯된 사랑의 상처는 매우 정적인 진행형 과거이고 영화의 인물들은 그것을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 고독한 사람들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지향하는 듯한 주제를 시류와 감독의 취향 외에 과거형이며 정적인 무협을 바탕으로 이끌지 않았나 짐작한다.
만약 이 영화의 공간을 현재의 장으로 설정하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좀 식상했을 주제 아닐지 모르겠다. 장인의 솜씨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종합예술로써의 영화를 내용만 쫓아 보는 건 물론 아니지만 무협의 공간을 설정하여 주제를 설득한 것은 의외로 그럴 듯하다. 시를 쓰는데 있어서도 이 점은 유사할 것이다. 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공간설정에 따라 그 정감이 달라질 수 있고 그것이 현대시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동사서독』은 구양봉(동사)의 독백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중간에 맹무살수의 자조적인 독백이 잠깐 끼어들지만 극 전체를 관통하여 주제를 이야기하는 건 동사의 역할이다. 사막 초입에 터를 잡고 해결사 노릇을 하는 동사를 중심으로 스쳐가는 사람들의 사연과 내면을 경칩驚蟄에서 다음 경칩까지 얽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이 영화에는 시간의 흐름이 없다. 절기를 구분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그것들은 동사에 의해 묘연하게 설킨다. 동사에 의한 전지적 시점에서 스토리의 맥락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낯설면서 독특한 이 플롯 또한 이 영화의 매력일 수 있겠는데 한 번 봐선 개연성의 혼란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사랑으로 입은 상처의 내면이 각자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잃은 뒤에야 사랑을 깨닫는 남자, 떠나보내고 못 잊는 여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남자, 어긴 사랑을 믿는 여자, 배신당하고 그리워하는 남자, 배신하고도 기다리는 여자 등 사랑의 상처라도 저마다 미묘한 심리가 있다. 자책과 원망, 가학과 피학, 그리고 이중성의 상처까지 영화는 세심히 이야기 한다. 사실 좀 놀랍고 난감한 부분은 이중성의 상처인데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겐 설명하기 썩 어렵다.
한 사람의 가슴에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두 가지 상처가 존재한다. 하나는 상대적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성을 띠고 있다. 상대적 상처는 뻔한 멜로다. 문제는 상대를 사랑하면서 스스로 입는 내상이다. 그것의 주체는 나르시시즘이고 자기 자신에게 애착을 느끼는 자기애는 누구의 가슴에나 다 있다. 누구를 사랑하게 되면 자기애가 엷어진다. 그러나 그 사랑에 상처를 입으면 희미하던 자기애가 강렬한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 식으면 별 탈 없지만 여전히 사랑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예전보다 심란한 자기애에 빠지는 것은 애증의 모습이자 일종의 병적 심리이다. 사랑으로 좌절한 한 사람의 가슴에 든 두 사람의 심리를 삽화처럼 끼워 보여주는 이 영화는,
굳이 보는 이들을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동사의 독백을 통해 엿보일 뿐이다. 동사의 독백은 거의 아포리즘이다. 캐릭터들의 대화 또한 그렇다. 그리고 이 아포리즘적 대사들은 극중 흐르는 심리를 정적으로 함축시킨다.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다. 그대의 마음이다.”
“술과 물의 차이점을 아나? 술은 마시면 몸이 달아오르지만 물을 마시면 몸이 차가워지지.”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의 모습이 때론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산을 보면 그 너머에 뭐가 있나 궁금해 한다. 막상 산 너머에 가보면 별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차라리 여기가 낫다고 여긴다.”
“그와 혼인할 줄 알았는데 왜 하지 않았소? 날 사랑한다고 말을 안했어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소.”
“이 사막 너머에 뭐가 있죠? 또 다른 사막이 있지.”
그야말로 향연인 아포리즘을 시적 정취 속으로 몰입시키는 것은 영상의 힘이다.
왕가위 감독은 이미 정평 난 몇 가지 고유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가진 서사와 음악, 카메라와 편집 방식은 관능적이면서 탐미적이다. 저속으로 촬영한 후 필름의 특정부분을 복사해 붙임으로써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스텝프린팅Step printing 기법이랄지, 광각렌즈를 이용한 정교하고 화려한 MTV스타일의 영상미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세계에서도 『동사서독』은 대사와 함께 전개되는 영상들이 가히 압권이다.
한 컷 한 컷 멎을 듯이 담은 파스텔풍의 풍경들은 한 폭의 그림이자 영상시라 할 만큼 서정이 넘친다. 현실세계를 비유한 듯 보이는 배경의 사막을 다소 흐리게 담아낸 앵글을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아련한 사막을 스치는 듯하다. 아름다운 것은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인물들의 심리묘사에서도 섬세한 영상미를 보인다. 특히, 이중적 심리상태를 보이는 여자의 얼굴에 조롱鳥籠의 그림자를 겹쳐 묘사하는 장면이나 물가를 걷는 여자의 그림자를 세 개로 비춰 보이는 그림들은 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탁월한 비주얼들이다. 대사와 영상만으로 끌어가는 나른한 감성은 내용을 떠난 이 영화의 또 다른 시적 정취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대중성에 의지한다. 그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대개 스토리와 배우의 역할이 크다. 상업적인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의 영화관은 좀 다르다. 주제(스토리)를 쫓는 건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취향에 따르지만 영화 속의 공간(배경)과 영상미, 비유적인 대사와 음악 같은 부분에 따로 각별한 비중을 둔다. 공간은 간접적인 경험일 수 있고 나머지 것들 역시 시적 상상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데 있어 인접예술들은 많은 도움이 된다. 미술, 음악, 건축, 사진 같은 다른 장르로부터 끌어들일 수 있는 상상력은 시의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제의 심층을 한결 깊게 하는 까닭이다. 많은 시인들이 이미 그렇겠지만, 나는 그 모든 요소들이 들어있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 앞서 얘기한 디테일 외에 최종적으로 감독을 의식하곤 한다.
흥행성을 떠나 작가주의적인 감독이 좋다. 우리의 김기덕(‘섬’ ‘피에타’ 등), 할리우드의 크리스토퍼 놀란(‘메멘토’ ‘인셉션’ 등)과 또 한 사람, 중화권의 왕가위 감독에 인상 깊다. 그 가운데도 딱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왕가위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다 봤다. 대표작이라 불리는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은 두서너 번, 여기 『동사서독』은 리덕스판까지 몇 번이나 섭렵했다.
그의 영화들은 편편마다 독특한 개성이 있고 통틀어 일관적인 바탕이 있다. 생략적인 플롯, 화려한 비주얼, 세련된 대사와 음악, 우수어린 캐릭터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상처 난 기억’에 천착하고 있는 주제론 또한 그렇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목적 없이 살아가는 우울한 청춘들을 그린 『아비정전阿飛正傳』은 무엇보다 오래도록 세간에 회자된 대사가 백미이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1960년 4월 16일 3시, 나는 1분간만 너와 함께 있었어. 이제 오후 3시만 되면 넌 나를 생각하게 될 거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감미롭고 애절하게 그린 『화양연화花樣年華』도 냇킹콜Nat king cole의 음악과 어두운 색감, 다양한 치파오 의상을 빈 내밀한 감정의 여운만으로 여타의 그것들이 범하기 쉬운 적나라한 상황이나 감정노출을 생략한 채 불륜의 멜로에 지나지 않는 것을 진하게 잡아냈다.
그리고 나서 “사랑은 사랑을 낳고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는 『동사서독』이다.
왕가위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해도 그럴만한 이 영화는 사실 『화양연화』보다 먼저 나왔다. 1994년 개봉했던 것을 2008년 리덕스판으로 다시 선보였다. 그만큼 감독의 애착이 묻은 작품이라 하겠다. 각설.
박정대의 『동사서독』은 아마 재개봉된 리덕스를 끌어온 것 같다. 초판이든 리덕스든 눈에 띠게 다른 부분이나 느낌은 없으나 시의 발표 시점으로 보아 그렇게 생각된다. 왜냐하면 박정대는 일찍이 그의 시 「페루여관에서」도 이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시 속에는 영화의 감성과 언어, 몇 장면들이 짙게 서려있다. 한 편의 그림인 영화 속에 자신의 기억을 우려 넣은 솜씨가 거꾸로 필름을 감는 듯 선하다.
그 외에도 『동사서독』에 취한 시인들이 몇 있다.
▶김유석_1989년 <전북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1990년 <서울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2013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 본지 편집위원.
- 이전글66호/특집/시와영화/서화성/스물여덟, 뜨거웠던 꽃잎이 떨어지다 17.10.13
- 다음글66호/권두칼럼/장종권/이 시대 시는 무엇을 노래하나 17.10.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