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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특집/시와영화/서화성/스물여덟, 뜨거웠던 꽃잎이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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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성 (시인)
스물여덟, 뜨거웠던 꽃잎이 떨어지다
-영화 『동주』와 시 「서시」
시 읽기에 행복한 계절은 없다. 시와 영화는 독자와 관객에서 비롯되고 낯설거나 때로는 서로가 맞지 않는 관계인 듯 보이지만 각자가 바라보는 측면은 같다. 요즘 관객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독자는 줄어드는 현상이다.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는 사회, 행복마저 성적순이 되어버린 사회지만 독자가 늘어나고 시가 조금 더 당당했으면 하는 계절이다.
요즘 세대의 트렌드는 영화산업이다. 영화에 투자하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며 도시의 이기적인 문명 때문에 영화산업은 거대하게 급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와 반대로 시는 차츰 사라져가고 대신 그들은 영화관에 간다. 박스오피스에 순위가 매겨지고 영화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7,80년대 만해도 우리는 시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다른 시절을 꿈꾸며 살고 있는 것 같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을 보며 나는 시를 생각한다. 봄날, 첫사랑을 못 잊어 차창 밖에서 놓쳤다면 이 얼마나 안타깝고 설레는 고백이겠는가, 길을 가다가 문득, 시가 내 곁으로 오는 순간 동주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변의 사물들을 운율 있는 언어로써 ‘시는 율어에 의한 모방模倣이다’ 라고 했으며 또한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체험들을 릴케는 ‘시는 체험이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는 우리 주변에 있으며 우리 생활에 밀접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생물 같은 것이다.
시를 주제로 한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시』, 시인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 마이클 래드포드의 『일 포스티노』 등이 있지만 그보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동주』는 시인과 시를 주제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어느 영화보다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시대를 아우르는 시인 윤동주는 영화 속에서 살아 있었으며 그는 고스란히 시가 되어 우리에게로 왔다.
올해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다. 영화는 짧게 생을 마친 시인의 삶과 그의 시를 온전히 옮겨 놓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압권은 흑백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진 속 동주의 모습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영화를 흑백으로 입힌 것이다. 흑백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하며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봄볕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기에 더할 나위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흑백의 시, 『동주』는 시와 흑백의 조화調和가 잘 어우러진 영화다. 흑백은 보다 현실적이면서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관객은 과거로 돌아가기에 적합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곰방대를 물고 먼 산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와 가족사진, 그 낡은 흑백사진은 대청마루 위에 걸려 있고 이것은 추억을 곱씹기에 좋은 것이다. 그런 흑백의 『동주』.
윤동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고 만나지 않았지만 어디서 만났을 것 같은 시인이다. 누구나 그의 시 한 편을 호주머니 깊숙이 넣고는 읽거나 암송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동주.
이준익 감독은 시와 영화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시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택했다고 한다. 배우 강하늘의 차분하면서 구슬픈 목소리가 동주의 시를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가 온몸으로 시를 노래하고 얼마나 아파했음을 관객은 알고 있었다. 『동주』는 자기 자신보다 더욱 시를 사랑했던 동주를 관객은 만난다.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꿈과 자신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암흑시대에서 시인이 되고자 했던 소망과 시에 대한 열정과 청년시절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고 있다. 시를 쓰고 싶었던 동주와 의사가 되기를 바랬던 아버지와의 갈등, 신춘문예에 당선된 동갑내기 몽규에게 느끼는 열등감, 창씨개명 강요, 이 모두가 시를 통해 한 시인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결코 시인일 수밖에 없었던 동주, 그렇게 목숨보다 시를 사랑했던 동주는 일본 유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도쥬가 된 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라는 시 『참회록』의 한 구절에서 보여준 시인의 고뇌와 시대적인 아픔을 엿볼 수 있다.
“당신 말을 들으니까 정말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못 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서명을 거부한 동주.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점점 피폐해가는 동주의 모습과 강하늘이 읽어가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동주, 「서시」는 마치 그의 비극을 예견이나 하듯 절망과 안타까움을 준다. 그리고 치욕스런 나라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동주의 삶과 후쿠오카 형무소 밤하늘에 외로이 별이 된 동주,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름 윤동주였다. 그를 그리워하는 것만 아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함에 대한 감사까지 생각하게 하는 『동주』.
작가는 “윤동주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한 청춘이었다. 동시대에 인정 받지 못하고 활동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의 시가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며 그 시대의 시인들 중에서 특히 윤동주에게 끌렸다고 말했다. “어느 시대나 청춘은 있었고, 청춘은 언제나 시대 때문에 아파왔다. 지금의 세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는 감독의 말처럼 시인이 되기가 부끄러웠던 시대, 때로는 영화 속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시대적 아픔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면서 말이다.
혼돈된 사회를 살아가면서 때로는 방황과 좌절이 있을지라도 인생의 한 부분, 가장 뜨겁고 가슴 한쪽이 시리도록 아파했을 어느 밤처럼 앞서 살았던 두 청춘과 다를 바 없는 현재,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에 『동주』는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남을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처럼.
『동주』의 시 대신 무거운 발걸음으로 화답한다. 한바탕 봄꽃이 휘날린 거리에서 슬프고 때로는 눈물이 메말라 버린 오늘,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아픔을 시가 아니면 영화가 그것을 위로해주는 촛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별이 사라진 하늘에서 나는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해 올까, 왜.
▶서화성_200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아버지를 닮았다』, 『언제나 타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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