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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소시집/박하리/맙소사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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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06회 작성일 17-10-1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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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박하리




맙소사 외 4편



소식小食을 해요
혼밥을 즐겼어요
배는 빵빵하고 더부룩했어요


일을 하긴 했어요
들은 말을 전하기도 했어요
지켜지지 않으면 생각이 가출했어요


출근하지 않아도 머리는 만져야 해요
그래야 출근한 것 같다고 해요
머리를 만지지 않은 날은 머리가 없어져요


저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기억나지 않아요
나는요 나예요 나라니까요 모르시나 봐요
저는 공주라고들 해요


거울 앞에서 중얼거리는 그녀의 얼굴은 그녀가 아니다


맙소사






대해와 통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누워버리는 상황에 대해


먹물로 도배하는 상황에 대해
오물로 도배하는 상황에 대해


자신만 깨끗하다고 억지를 부리는 상황에 대해
다른 사람은 깨끗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상황에 대해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와 생각이 같다고 해서


나이어야만 다 된다는 생각에 대해
남은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에 대해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대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상황에 대해
하루하루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해
사람의 길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맥없는 나는 어쩌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통해






그가 아닌 그,



그가 아니다
새벽을 열고 있다
어제의 내일인 오늘의 새벽은 푸르다
밤새 밖을 서성이던 달도 푸른빛이다
그가 아닌 그의 낯빛도 푸르다


열심히 자리를 보전하는 그가 아닌 그와
매일 사표를 던지려고 하는 그가 아닌 그와
의욕이 넘치는 그가 아닌 그와
물 먹은 솜과 같은 몸인 그가 아닌 그와
넓은 아량의 미소를 가진 그가 아닌 그와
시기와 질투로 뭉쳐진 그가 아닌 그


그와 그가 아닌 그는 매일 싸우기도 하고 협상하기도 한다
그가 아닌 그는 수호신이고, 도깨비이고, 유령이다
그가 아닌 그는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아닌 그는 없기도 하고 같은 옷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우물과 두레박




깊은 밤 우물 안은 아우성이다
유유히 헤엄치던 개구리 꾹꾹 울고,
우물 안을 들락거리는 도깨비들은 동아줄을 타고 오른다
작년 여름 빠졌던 고무신이 둥둥 뜬다


밤새 시끄럽던 우물은 고요해지고
툭, 떨어지는 두레박 소리는 개구리들을 깨운다
두레박 속으로 물 속의 알 수 없는 깊이가 들어온다
두레박이 출렁거린다
우물 속 세상소리가 두레박에 걸린다
그녀의 얼굴과 구름의 그림자가 우물 속을 출렁거린다
두레박에 그녀가 걸린다
이리저리 휘저은 두레박줄이 팽팽해진다


우물 속의 세상이 끌려나온다
우물 밖의 세상이 와글와글하다






에에라




에에라디여
곱게 빗은 쪽진머리 저고리 치마가 둥둥 뜨네
에에라디여
시집가던 날 친정부모 눈에 눈물꽃 맺혔네
에에라디여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었네
에에라디여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시금치 색깔도 곱네
에에라디여
막내 시누이 시집 보냈더니 내가 가는 것이 나을 뻔 했네
에에라디여
바리바리 나르는 보따리에 허리 통증 도지네
에에라디여
아이고 어깨야 아이고 허리야 하루종일 움직여도 그날이 그날이네
에에라디여
시쿤등 코에 코풍선 부는 남편 머리통 잡아채고 싶네
에에라디여





시작메모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맞는 듯하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되돌아 과거로도 가지 못한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계절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의 오늘과 미래의 오늘이 같을 수는 없지만 현재의 오늘이 있는 까닭에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의미를 한 소쿰 쏟아 낼 수 있는 것이 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 시의 홍수 속에서도 옷매무새 잘 하고 있을 시를 위하여 퇴고에 퇴고를 열심으로 한다. 퇴고를 열심히 하다가 길을 잃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쓰여진 시를 보면 소리 없이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맞는 듯하다.


치맛자락 끝도 보이지 않는 봄날이 가고 있다.
시가 쓰이는 봄날이 가고 있다.






▶박하리_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계간 《리토피아》 편집장.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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