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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신작시/심종록/폐차장이 보이는 성 나자로 요양병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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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심종록
폐차장이 보이는 성 나자로 요양병원
1
바디
뜨겁던 피를 식히던 라디에이터
오르가즘의 임계점에서 달라붙은 실린더와 피스톤
노을 지는 바닷가에서 멈춰버린 엔진
보행과 차단기를 짜증내던 광폭 또는 광란의 휠
중후하도록 낡았거나
험하게 들이받힌 탓에 흉터를 가진 것들을 싣고 기적을
울리던 화물열차도 전생에는
사거리 건널목 땡땡 종이었을 것이다
과꽃 흔들리던 차단기 앞 가을 햇살 튕겨내며 헛돌던
자전거 바큇살이었을 것이다
함박눈과 폭우를 고스란히 견디던 침목 위
폐쇄된 철길로 더는 달릴 수 없는 화물열차 같은
성 나자로 요양병원
2
개불알풀꽃들
눈치껏 무단 횡단하더니 오늘은
개나리가 활짝이다
폐 선로 굽어 도는 노란 덤불 아래 신발 한 짝
누군가의 내력인 듯 엎어져 있다
하늘엔 저승으로 통하는 통로 같은 태양구멍
문이 열리고 무릎담요를 덮은 나자로 휠체어
밀고 나오다 주름진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가린다
소갈머리 없는 개나리꽃만 유쾌한 성 나자로 요양원
사월의 치정
저승에도 피자가게가 있다면 취직해서
피자를 구우리라 피자가게는
하릴없는 날갯짓의 천사와 눈빛이
살아있는 약쟁이들이 바삐 오가는
위험한 뒷골목이어도 좋아라
당신의 눈빛에 따라 토핑한 피자도우
가스오븐에 넣고 익기를 기다리리라
치정의 인질극을 즐기리라 변심한 애인의 목에
칼을 대고 테이블 부수고 유리창을 깨고
고래고래 쉰내가 나도록 절규하는 당신
쓸쓸하고 황폐한 사월의 치정을 지켜보리라
좀 더 잘 보이라고 일제히 등을 내거는 꽃나무들
심종록_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 『쾌락의 분신자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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